무너지지 않기 위해 하루를 쓴다
두 아이를 모두 원하던 학교에 보내고 나면
모든 것이 다 잘 풀릴 거라고 생각했다.
북경에 온 지 여섯 달쯤 되었을 무렵이었다.
시간은 문제없이 흐르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내 마음만은 그 자리에 멈춰 있는 듯했다.
아침에 눈을 떠도 개운하지 않았고
몸은 늘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하루의 시작부터 이미 지쳐 있었다.
나는 오랫동안 일을 하며 살아온 사람이었다.
대학 시절부터 일을 시작해
단 한 번도 멈추지 않고 사회 안에 머물러 있었다.
그런 내가 어느 순간,
타지에서 하루 종일 집 안에 머무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분명 소중했다.
하지만 그것이 하루의 전부가 되었을 때,
내 안에서는 설명하기 어려운 답답함이 고개를 들었다.
그 사이에서 남편과 아이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점점 제 몫을 찾아가고 있었다.
남편은 새로운 일에 몰두하며
눈에 띄게 단단해졌고,
아이들 역시 낯선 환경에 빠르게 적응해갔다.
모두가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나만
같은 자리에 멈춰 서 있는 느낌이었다.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막연한 불안과 설명할 수 없는 조급함이
하루 종일 나를 따라다녔다.
돌이켜보면 나는 늘
‘잘 해내는 사람’으로 살아왔다.
충분히 준비한 뒤
보기 좋게 결과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믿었고,
그 믿음은 자연스럽게 나를 몰아붙였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보다
무엇을 이루어야 하는가에
더 익숙해져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 지금의 나는
스스로에게 낯설고, 또 못마땅했다.
그 시기의 나는
끊임없이 나를 의심하고 있었다.
자신감은 점점 옅어졌고
나는 점점 더 작아졌다.
낯선 타국이라는 환경은
그 불안을 더 또렷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남편의 회사 분위기 역시
아내의 일을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편은 아니었다.
아이들과 남편이
자리를 잡아갈수록,
나는 오히려
설 자리를 잃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자꾸 나를 비교했다.
다른 사람들과,
심지어 가장 가까운 가족들과도.
사랑하는 사람들을 기준 삼아
나를 깎아내리는 모순을
멈추지 못했다.
분명 기쁜 시간이었는데,
내 마음에는 계속 비가 내리고 있었다.
북경이라는 거대한 도시 한가운데에서
나는 점점
혼자 남겨진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 감각을 자각한 이후로
나는 자주 멍해졌다.
가족은 더 이상
나를 붙잡아 주는 존재라기보다
나를 비추는 거울처럼 느껴졌고,
그 거울 속의 나는
유난히 초라해 보였다.
아이들은 언젠가 떠날 것이고,
남편의 성공이 곧 나의 삶을 설명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조용히 스며들었다.
그때 나는
깊은 고독 속으로 가라앉았다.
아마도 그 시기를
우울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이유 없이 슬펐고
이유 없이 두려웠다.
밤마다 악몽을 꾸었고
지워졌다고 믿었던 어린 시절의 장면들이
예고도 없이 떠올랐다.
나는 점점 더
바깥으로 나가지 않게 되었다.
석 달 가까이
집 안에서만 시간을 보냈다.
하루는 끝나지 않을 것처럼 길었지만,
돌아보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창문 너머로 흐린 하늘을 바라보며
그저 시간을 흘려보내는 날들이 이어졌다.
멀리서 들려오는 웃음소리가
낯설게 느껴질 때면,
나는 이불 속으로 더 깊이 숨어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문득 펜을 들었다.
처음에는 단 한 줄이었다.
“나는 왜 이렇게 힘들까.”
그 한 줄이
다음 문장을 불러왔다.
“나는 왜 이렇게 초라해졌을까.”
“아무 의미가 없는 것 같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말로 꺼내지 못했던 생각들이
종이 위에서는 조용히 흘러나왔다.
그날 이후,
나는 매일 조금씩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정리되지 않은 감정들을
그대로 두고, 그대로 적었다.
서툴렀지만
그만큼 솔직했다.
어쩌면 나를 무너뜨린 것은
환경이 아니라
비교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끝까지
지금의 나를 받아들이지 못한 채
더 나아져야 한다고, 더 잘해야 한다고
나 자신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아주 단순한 생각이 스쳤다.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계획이 아니라
하루를 버티는 일일지도 모른다고.
나는 그날
일기장 끝에 짧게 적었다.
“오늘 하루를 살아보자.”
그리고 시간을 잘게 나누어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씩 적기 시작했다.
아주 사소한 일들이었다.
하지만 그 사소함이
나를 다시 움직이게 했다.
그 어둡고 긴 터널 속에서
나는 그렇게
하루씩, 아주 조금씩
밖으로 걸어나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