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바뀌는 자리에서
3월의 끝자락, 겨울의 숨결이 완전히 가시기도 전에 봄은 조용히 우리 곁으로 스며들었다. 그 계절의 문턱을 지나기 위해, 우리 부부는 길을 나섰다.
금요일 오전, 서둘러 집을 나섰다. 이번 학기 강의가 오전에만 잡힌 덕분에 가능해진 일정이었다. 시간의 여유가 더 큰 남편이 내 일정에 맞춰 준 덕에, 우리는 한 박자 빠르게 봄을 만나러 갈 수 있었다. 이번 여정은 부소담악 둘레길에서 시작해 계룡산 정상에 이르는 길이었다.
서울에서 세 시간 남짓 달려 부소담악에 도착했다. 본래 하나의 산이었던 곳이 대청댐 건설로 일부가 물에 잠기며, 물 위에 바위 병풍을 둘러놓은 듯한 풍경이 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추소정에 올라 그 풍경을 마주했다.
날카롭게 솟은 바위와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호수가 어우러진 풍경은 수천 년의 시간을 고요히 품고 있는 듯했다. 설명으로는 다 담기지 않는 자연의 결이 그곳에 있었다. 부소담악 둘레길을 걷는 시간은 느리고 부드러웠다. 산은 말없이 새봄을 준비하고 있었고, 우리는 그 고요 속에서 서두르지 않는 법을 배웠다. 함께 걷는다는 것은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일이 아니라, 서로의 시간을 받아들이는 일이라는 것도.
우리는 천천히 걸었다. 목적지보다 ‘함께 걷는 시간’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 길이 조용히 일러주고 있었다.
걷다 보니 허기가 졌고, 그때 만난 봉이 호떡은 그날의 작은 축제였다. 따끈한 반죽 속에서 번져 나오는 달콤함은 하루의 온기를 한입에 담은 듯했다. 이어 들른 추부면의 추어탕은 또 다른 위로였다. 깊고 구수한 국물 한 숟갈에 몸과 마음이 동시에 풀렸다. 여행에서의 음식은 단순한 끼니가 아니라, 그날의 기억을 완성하는 마지막 조각이라는 사실을 다시 느꼈다.
해 질 무렵 도착한 만인산 자연휴양림은 고요했다. 나무들은 저마다의 자리에서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었고, 우리는 그 사이에 조용히 스며들었다. 도시에서는 좀처럼 들을 수 없던 소리들—바람이 잎을 스치는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이름 모를 새의 울음—그 모든 것이 밤을 채웠다. 그렇게 우리는 하루를 내려놓고, 자연 속에 몸을 맡겼다.
다음 날 아침, 이른 시간에 계룡산으로 향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동학사의 고요한 풍경이 먼저 우리를 맞이했다. 오래된 전각 사이로 스며드는 아침 공기는 맑고 단정했다. 계절의 끝과 시작이 맞닿은 초봄, 아직 터지지 않은 꽃망울과 겨울의 흔적을 간직한 나무들이 묘하게 어우러져 있었다. 화려하지 않기에 더 깊이 스며드는 풍경이었다. 우리는 잠시 걸음을 늦추고, 그 고요를 통과하듯 산으로 들어섰다.
계룡산은 동학사와 갑사를 품은 산이다. 그래서인지 산 전체에 오래된 시간의 결이 배어 있었다. 고목들은 제 몸에 새겨진 시간을 드러내며 묵묵히 서 있었고, 그 사이를 지나는 길은 어딘가 신비로웠다. 정상인 관음봉까지의 길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이어지는 나무 계단과 경사진 바위길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계룡산의 초봄은 아직 완전히 풀리지 않은 계절이었다. 그늘진 곳에는 겨울의 냉기가 남아 있었고, 볕이 드는 길목마다 연둣빛 기운이 조심스럽게 올라오고 있었다. 숨은 점점 가빠졌고, 발걸음은 무거워졌다. 그러나 오를수록 생각은 오히려 단순해졌다.
우리는 산에 오를 때마다 묻는다. 무엇을 더 가져갈 것인가보다, 무엇을 덜어낼 것인가를. 가벼워질수록 더 멀리 갈 수 있다는 사실을, 몸으로 배워왔기 때문이다. 문득, 삶도 그러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이제는 무엇을 더 쌓기보다, 무엇을 내려놓아야 할지 고민해야 할 시간인지도 모른다.
정상에 섰을 때, 우리는 잠시 말을 잃었다. 봄 햇살이 환하게 내려앉아 있었고, 시야는 멀리까지 열려 있었다. 아직 짙어지지 않은 산빛들이 겹겹이 이어지며, 계절이 막 건너가고 있었다. 우리가 지나온 길과 아직 가지 않은 길이 한눈에 들어오는 그 자리에서, 한 가지 질문이 조용히 떠올랐다.
나는 왜 산에 오르는 걸까.
해외에서의 20년을 뒤로하고 한국에 돌아온 이후, 우리는 100대 명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어느덧 쉰 개가 넘는 정상을 지나왔다. 산은 저마다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정상에 서면 늘 비슷한 감정에 닿았다.
성취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부족하고, 행복이라고 단정하기에는 어딘가 여백이 남는 감정. 어쩌면 그것은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에 더 가까운 것일지 모른다.
우리는 정상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잠시 숨을 고르고, 풍경을 눈에 담은 뒤 다시 내려온다. 삶도 이와 닮아 있다.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 오르고, 그 끝에 도달하면 잠시 머문 뒤 다시 내려와 또 다른 길을 향한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어디에 도달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걸어왔는가, 그리고 누구와 함께였는가라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산을 오르며 우리는 서로를 다시 알아간다. 힘겨운 순간, 말없이 건네는 물 한 모금, 먼저 내미는 손길. 그런 사소한 장면들이 쌓여 ‘우리’라는 이름을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든다.
계룡산에서 내려오는 길, 우리는 많은 말을 나누지 않았다. 대신 같은 풍경을 바라보며 같은 방향으로 걸었다. 그 침묵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봄은 늘 그렇게 온다. 거창하지 않게, 그러나 분명하게. 그리고 우리는 그 봄 속에서 또 하나의 산을 지나며, 조금 더 무르익고 깊어진다.
아마도 우리는,
계절의 문턱을 지나듯
삶의 어느 문턱을 조용히 건너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