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덜어내며 살아가는 중이다
어느 날, 별 생각 없이 약속을 하나 잡았다.
크게 내키지 않았지만, 거절하기가 애매해서였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오늘, 시간을 쓴 게 아니라 나를 조금 소모하고 왔구나.
그날 이후로, 선택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살다 보니 알게 되었다.
삶은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사소한 선택들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나쁜 것과 좋은 것, 그리고 최선의 것 사이에서
우리는 늘 선택하며 살아간다.
그때는 별것 아닌 선택 같았지만,
돌아보면 결국 그 선택들이 지금의 나를 만든다.
예전에는 사람을 많이 만나는 것이 좋은 일이라 믿었다.
인연은 넓을수록 좋다고 여겼고, 가능하면 거절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알게 되었다.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단순히 시간을 쓰는 일이 아니라,
내 에너지와 마음을 함께 내어주는 일이라는 것을.
그래서 이제는 선택한다.
나를 소모시키는 관계보다,
함께 있을 때 편안해지고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관계를.
사람을 줄였더니, 오히려 삶의 방향은 분명해졌다.
일도 다르지 않았다.
한때는 버티는 것이 미덕이라고 믿었다.
힘들어도 끝까지 붙잡고 있는 것이 옳다고 여겼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그것은 끈기가 아니라
놓지 못한 마음에 가까운 경우가 더 많았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일은 내가 계속해야 할 일인가,
아니면 단지 놓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그 질문 하나로 많은 것들이 제자리를 찾았다.
그렇게 일에 대한 생각이 정리되자,
노력에 대한 기준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안 되는 상황이 억울했고,
조건이 부족한 것을 탓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을 꾸준히 해내는 것이,
결국 가장 현명한 길이라는 것을.
그래서 이제는 할 수 없는 이유보다 할 수 있는 쪽을 먼저 바라본다.
그 안에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시작한다.
예전에는 마음만 앞서고 손이 따라가지 않는 날이 많았다.
무엇을 해야 할지 알면서도 미루기만 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알게 되었다.
목적이 분명하면 시간은 만들어진다.
뚜렷한 이유 없이 시간을 보내던 날들은 쉽게 흩어졌고,
무언가를 이루겠다고 마음먹은 날들은 짧아도 오래 남았다.
흩어져 있던 짧은 순간들도 모이면,
삶을 바꾸는 시간이 된다.
아무도 깨지 않은 새벽,
잠깐의 여유가 스치는 순간,
하루가 끝난 뒤의 조용한 밤.
그 짧은 시간들이 모여 삶의 밀도를 바꾼다.
조금만 다르게 써도 충분했다.
책 몇 장을 읽고, 잠깐 생각을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하루는 이전보다 단단해졌다.
결국 내가 바라는 삶은 단순하다.
좋은 사람 몇 명 곁에 두고,
내가 선택한 일에 나의 시간과 정성을 들이며,
좋은 책을 가까이하고,
마음이 크게 흔들리지 않는 하루를 사는 것.
많이 가지는 삶이 아니라,
덜어내도 괜찮은 것들을 알아가는 삶.
삶의 지혜는 그 안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