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장. 나만의 자리를 처음 꿈꾸던 날

마음이 버틴 자리들 [15장]

by 이도화
"이모네 독서실에서 처음으로 ‘나만의 자리’를 상상하게 해 준 공간."

고등학생이 되자 공부는 더 이상 책상 위의 일이 아니었다.
시간도, 공간도, 집중력도 모두 ‘쟁취’ 해야 하는 것이 되었다.


우리 집은 방 한 칸짜리 집이었다.
그 안에서 ‘혼자’라는 말은 성립하지 않았다.
방은 늘 열려 있었고,
텔레비전 소리는 그림자처럼 따라다녔고,
누군가는 늘 내 공간을 가로질렀다.


공부를 하려고 책을 펴는 일 자체가
이 집에서는 하나의 눈치였고, 작은 저항 같았다.


나는 그때부터 막연히 생각했다.
내 얘기를 묻지 않아도 들어줄 것 같은 어른,
성적이 아니라 얼굴을 먼저 봐줄 것 같은 어른,
“괜찮니”라는 말을 조건 없이 건네 줄 어른이
내 인생 어딘가에는 한 명쯤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


하지만 그런 어른은
내가 크는 동안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나마 우리 집과 가장 자주 왕래하던 곳은 이모네 집이었다.


우리 집과는 다른 공기가 흐르던 곳.
바닥은 늘 정리돼 있었고,
명절이면 과일 상자가 마루 한쪽에 놓였고,
집 안에는 ‘살림이 굴러간다’는 느낌이 있었다.


그 풍경은 어린 나에게
‘안정’이라는 단어의 모양을 처음 가르쳐 준 장면으로 남아 있다.


이모는 억척스러운 사람이었다.
어릴 때부터 살림을 하며 뭐든 일구며 살았고, 지독하게 돈을 모았다.
집에 사람들을 불러 파마를 해 주고,
그 옆에서는 계란과 고구마를 삶아 팔았다.
마당 한쪽을 막아 방을 하나 만들면,
그 방을 또 세 놓았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이모는 결국 왕십리에 작은 건물을 샀다.


그 건물 한 층을 독서실로 꾸몄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이유 없이 마음 한쪽이 환해졌다.


거기엔 책상들이 있고, 칸막이가 있고,
사람들이 조용히 자기 자리에서 뭔가를 하고 있을 거라는 상상만으로도
그곳은 내게 ‘탈출구’처럼 느껴졌다.


집이 아닌 어딘가,
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는 장소.


사촌오빠가 카운터를 볼 때면
나는 살짝 눈치를 보며 독서실에 들어가
빈자리가 있으면 조용히 앉았다.


좁은 칸막이 책상.
다른 사람에겐 돈 내고 쓰는 그저 그런 자리였겠지만,
내게는 처음으로
‘나만의 공간’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자리였다.


그곳에 앉아 있으면
삶의 소음이 조금 멀어졌고,
책장을 넘기는 소리만으로도
내가 다른 세계와 연결돼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여기,
나만의 자리가 하나 있었으면.’


나는 그런 생각을 자주 했다.


하지만 독서실은 늘 만석이었고,
시험 기간이면 나는 더 빨리 밀려났다.
내가 머물 수 있는 자리는 없었다.
내 자리는 애초에 없다는 사실을
그곳에서도 계속 확인해야 했다.


이모는 한 번도
“공부하러 오너라”라고 말하지 않았다.
“자리 비면 써라”는 말도 없었다.


나는 늘 눈치로 들어갔고,
눈치로 나왔다.


어느 날은 자리가 없다고 쫓기듯 나왔고,
어느 날은 사촌이
“오늘 사람 많아”라며
문 앞에서부터 막기도 했다.


그 말투에는 악의도, 배려도 없었다.
그저
‘너는 여기 사람이 아니다’라는 구분만 있었다.


그때 나는 알았다.
이모네에서도
나는 식구가 아니라
‘구경 온 조카’라는 걸.


이모네 막내아들은 나와 동갑이었다.
같은 나이였지만 우리는 전혀 다른 자리에 서 있었다.


그 아이에게 공부는 준비된 일이었고,
내게 공부는
빼앗기지 않기 위해 붙잡는 일이었다.


나는 그 아이의 문제집을 몰래 펼쳐
내 노트에 그대로 옮겨 적었다.


“나도 하나 사 줘”라는 말을
나는 끝내 하지 못했다.
그 말이 우리 집 사정 위에
또 하나의 부담으로 떨어질 걸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남의 책으로 내 공부를 만들었다.


문제를 베껴 쓰고,
답을 적고,
다시 가리고 풀었다.


그 시절의 공부는
배움이라기보다
생존에 가까웠다.


그때 나는 아주 일찍 알게 되었다.


세상에는
주어지는 자리와,
끝까지 버텨야 남는 자리가 있다는 것을.


돈도, 인맥도, 기댈 어른도 없는 집에서
실패는 다시 시작이 아니라
돌아갈 곳이 없어진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나는
성공보다 먼저
실패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공부는 꿈이기보다
가장 덜 위험한 선택이었고,
가장 오래 버틸 수 있는 방법 같았다.


잘하고 싶어서라기보다
떨어지지 않기 위해,
밀리지 않기 위해
나는 오래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그 독서실은
끝내 내 자리가 되지 못했지만
내 안에 하나를 남겼다.


버틸 자리는
언젠가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아주 조용히,
나는 나에게 말했다.


“이제,
내가 나를 키워야 한다.”


그 말은
크게 울리지도, 눈에 띄지도 않았지만
그날 이후
내 삶의 방향은
조금씩, 분명히,
바깥을 향해 나가기 시작했다.

✍️ 작가 노트

이 글은 ‘자리’라는 단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고등학생이 되며 저는 처음으로, 공부가 내용이 아니라 환경의 문제라는 것을 또렷하게 느꼈습니다. 방 한 칸짜리 집에서 ‘혼자’라는 말은 성립하지 않았고, 조용히 앉아 있는 일조차 눈치가 필요한 시간이었습니다.


이모네 독서실은 그런 제게 처음으로 ‘나만의 자리’를 상상하게 만든 공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곳 역시 끝내 머물 수 있는 자리는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 경험을 통해, 세상에는 주어지는 자리와 끝까지 붙잡아야 남는 자리가 있다는 사실을 아주 이른 나이에 배우게 되었습니다.


이 시절의 공부는 꿈을 향한 준비라기보다, 실패하지 않기 위해 선택한 생존의 방식에 가까웠습니다. 남의 문제집을 베껴 쓰며 공부를 만들던 시간들은, 누군가에게 기대지 못하는 조건 속에서 스스로를 유지하는 훈련이기도 했습니다.


이 글은 가난이나 불행을 증명하기 위한 기록이 아니라, 한 사람이 어떤 조건 속에서 자기 자신을 키우기 시작했는지를 돌아보는 이야기입니다. 자리가 없던 시절, 저는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버틸 수 있는 자리는 언젠가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깨달음이 이후의 제 삶을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움직이기 시작했음을 이 글에 남기고자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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