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버틴 자리들 [14장]
중학교 3학년이 되자
나는 처음으로
‘선택’이라는 단어 앞에 서게 되었다.
그전까지의 삶은
주어진 하루를 살아내고
정해진 길을 따라가면
되는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그해부터
학교에 가면 내게 묻기 시작했다.
“어디로 갈 거니?”
“어떤 고등학교에 갈 생각이야?”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니?”
그 질문들은
진학 상담이 아니라
앞으로의 삶 전체를
한꺼번에 요구하는 말처럼 들렸다.
집 안에서는
아무도 내 선택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묻는 사람도 없었다.
대신
집안 어른들은
나의 희생을 기대했다.
“장녀니까 집에 도움이 되어야지.”
“빨리 취직해서
엄마와 동생들을 도와야지.”
아직 열세 살이 막 지난 아이에게
그 말들은
너무 무거웠다.
가난한 집 아이에게
‘선택’은
허락되지 않는 단어였다.
가난은 사람을
선택하는 존재가 아니라,
이미 정해진 자리에
놓이는 존재로 만들었다.
그런데도
그 시절의 내 마음 한편에서는
아주 작은 속삭임이
계속해서 들려왔다.
적어도 한 번은,
나를 기준으로 선택해도 된다는.
나는 그림이 좋았다.
선을 따라가고,
색을 고르고,
경계 밖으로 번지는 색을
바라보는 시간이 좋았다.
나는 글이 좋았다.
교과서 여백과
노트 귀퉁이에 적어 두던 문장들이
잠시나마
숨을 쉬게 해 주었다.
그리고
외국어가 좋았다.
한국어보다 한 박자 늦게 생각하게 만드는
그 느린 속도가
이상하게도 나를 편안하게 했다.
나는
그 어느 것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인문계 고등학교에
가기로 결심했다.
엄마는
아무 말 없이
내 선택을 지켜보았다.
마음속으로는
다른 바람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내 앞을 막지는 않았다.
곁에 살던 이모는 달랐다.
“대학?
집안 형편은 생각해 봤니?”
“빨리 취직해서
집안부터 살려야지.”
그 말이
꾸짖음인지, 걱정인지, 경고인지는
끝내 알 수 없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요구한 적이 없었다.
다만 그 순간만큼은
누구의 계산도 아닌
나 자신의 선택을
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오래 고민했다.
책상 앞에서,
언덕길을 걸으며,
빈 교실에 스며드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그 과정에서
조금씩 깨달았다.
어린 시절의 선택은
용기보다
현실이 먼저라는 것.
그러나
현실만으로는
마음이 끝까지
버텨내지 못한다는 것.
그때
마음 깊은 곳에서
아주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를 살리는 길을 택해라.”
그 말의 뜻을
정확히 알지는 못했지만,
나는
외면하지 않았다.
그 선택이
옳았는지도,
무모했는지도
그때의 나는 몰랐다.
다만
선택을 피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나는 인문계 고등학생이 되었다.
공부만 열심히 하면
길이 열릴 거라 믿었고,
그 길이
가난한 집 아이가
현실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처럼 보였다.
그것이
얼마나 긴 싸움의 시작인지도
모른 채.
정답은 없었지만,
회피도 없었다.
그 시절의 나는
어른의 문턱을 향해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걸어가고 있었다.
✍️ 작가 노트
이 글은 선택이라는 말 앞에 처음 서게 되었던 시절의 기록입니다.
가난과 가족의 기대 속에서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묻지 못했던 아이가
그럼에도 마음의 방향을 놓지 않으려 했던 시간을 담고자 했습니다.
그림과 글, 외국어는
저에게 재능이라기보다
삶을 버텨내기 위한 작은 통로였습니다.
노트에 적힌 문장들은
결정을 대신해 주지는 않았지만,
어디로 가고 싶은지
스스로 묻고 확인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 기록들은
도망치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흔들리지 않기 위해
붙잡아 두었던 기준이었습니다.
이 글은
옳은 선택을 증명하기 위한 이야기가 아니라,
선택을 피하지 않았던 한 시절을
조용히 돌아보는 기록입니다.
그 시절의 망설임과 방황이
오늘의 저를 지탱하는 뿌리가 되었음을
이제야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