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버틴 자리들 [12장]
몸보다 마음이 먼저 흔들리기 시작하던 시절.
열한 살의 봄을 지나면서,
나는 조용히 변하고 있었다.
그 무렵부터
나는 조금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직 사춘기라고 부르기엔 이른 나이였지만,
분명 더 이상 예전의 아이는 아니었다.
말은 점점 줄었고
손은 더 바빠졌다.
교실 안에서도, 집 안에서도
나는 한 발짝 물러나
사람과 상황을 먼저 바라보는 쪽을 택했다.
누군가에게 기대기보다는
혼자 견디는 방법을 익히는 쪽이
마음이 편해졌고,
그 선택은 나를
사춘기의 문턱 앞으로
조용히 데려다 놓고 있었다.
사춘기가 오기 전,
내가 가장 먼저 흔들린 것은
몸이 아니라 마음이었다.
겉으로는 여전히
성실한 학생이었지만
내 안에서는
설명할 수 없는 흔들림이
소리 없이, 그러나 분명하게
번지고 있었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내가 알던 세계가
더 이상 그대로가 아니라는 사실을.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자
나는
친구들 사이에 있어도
혼자 떨어져 있는 듯했다.
아버지의 빈자리는
시간이 갈수록
무겁게 내려앉았고,
그 무게는 결국 아이였던
나에게 견디기 힘든 무게로 다가왔다.
나는 가끔 엄마에게 대들었다.
“왜 아빠를 지키지 않았냐고.”
“왜 우리를 아빠 없는 자식으로 만들었냐고.”
말끝마다 후회와 죄책감이
따라왔지만,
그때의 나는 감정이
어디로 흘러야 하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삼 남매는
같은 지붕 아래 살았지만
각자 다른 방식으로
외로움을 견뎠다.
어떤 아이는 말수가 적어졌고,
어떤 아이는 이유 없이 날이 섰으며,
또 다른 아이는 작은 일에도 쉽게 무너졌다.
무엇이 잘못된 건지는 알지 못했지만,
‘무언가가 계속 어긋나고 있다’는 감각만은 또렷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아무 설명 없이 준비도 없이 우리 가족은 갑자기 흩어져야 했다.
아이였던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가족은 생각보다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그렇게 나는 엄마와 떨어져 살게 되었다.
왕십리의 오래된 조용한 비탈길 뒷골목에
어둡지만 따뜻한 작은 방에 외할머니와 내가 살았다.
할머니의 존재는 이상할 만큼 편안했다.
많은 말을 하거나 애정을 드러내는 분은 아니었지만,
그 곁에 있으면 마음이 덜 아팠다.
할머니는 피난길에 남편을 잃고
세 아이를 혼자 키워낸 강인한 사람이었다.
집에 돈이 없어도
할머니는 있는 것 안에서
늘 따뜻한 맛을 만들어냈다.
감자밥, 시래깃국,
김치 몇 조각으로 만든 막동치미,
간장과 참기름이 한 번 스친 묵무침,
허술한 밀가루 반죽으로 만든
서걱한 냉국수.
누군가에게는
소박한 밥이었겠지만,
그 시절의 나에게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집의 맛’이었다.
할머니와 살게 되면서부터
나는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고
혼자 있는 시간이 편안해져 갔다.
창가에 앉아
좋아하는 문장을 베껴 쓰고,
그 안에 조용히 그림을 그리며
흐트러진 마음을 천천히 정리했다.
내 사춘기는 그렇게—
요란한 폭발이 아니라
소리 없이 내면이 깊어지는 방향으로
시작되었다.
할머니와의 그 낯선 시간은
내게 한 가지 진실을 가르쳐주었다.
세상이 흔들릴수록
사람을 붙잡는 것은
거창한 말도,
특별한 사랑도 아니라는 것.
그것은
날마다 반복되는
소박한 다정함이라는 것.
할머니가 무심한 듯
내 앞에 놓아주던 작은 밥그릇 하나는
내가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는 신호였다.
돌아보면,
그 시절, 나는 내 마음 안에 생긴 작은 동굴을 지나며
나는 전보다 조금 더 단단한 아이가 되어 있었다.
세상은 그대로였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달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나는 안다.
그 어린 날의 밥 한 그릇과 고요한 오후의 적막함,
그리고 작은 방의 따스함이
오늘의 나를 만든
가장 깊고 가장 조용한 뿌리였음을.
이 글은 가족이 흩어지고
외할머니의 집에서 지내던 시절,
제가 처음으로 마음의 균형을 되찾아가던 시간을 기록한 이야기입니다.
낯선 환경과 불안한 감정 속에서
할머니가 말없이 내어주던 한 끼의 밥상은
위로라는 말을 쓰지 않아도 위로가 무엇인지 알게 해 주었습니다.
그 시절의 음식은 배를 채우는 식사가 아니라
제가 여전히 보호받고 있다는 신호였고,
세상이 흔들려도 삶은 계속될 수 있다는 조용한 증거였습니다.
사춘기는 그렇게
격렬한 반항이나 소란이 아니라,
고요 속에서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방식으로
제 안에 스며들기 시작했습니다.
돌아보면,
그때의 작은 방과 소박한 밥상,
그리고 말없는 돌봄은
오늘의 제가 쉽게 무너지지 않고
삶을 견뎌낼 수 있게 한
가장 깊은 뿌리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