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장. 버틴다는 말로는 부족했던 겨울

마음이 버틴 자리들 [17장]

by 이도화
"버티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시절."

할머니를 떠나보낸 뒤,
상실과 공허가 가시기도 전에
나는 고등학교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과와 문과를 선택해야 했다.


고등학교 1학년 말,
할머니를 떠나보낸 뒤
공부에 마음을 두지 못한 채 지내고 있었지만,
성적은 아직 상위권을 벗어나지 않고 있었다.


수학과 과학 점수가 유난히 높았고,
그 점수들은 말없이
나를 이과 쪽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거슬러야 할 이유도,
거스를 용기도
떠오르지 않았다.


우리 학교에는 문과가 열 개 반, 이과는 세 개 반뿐이었다.
여학교에서 이과는 늘 소수였고
그 소수라는 사실만으로도
미래가 조금 더 또렷해 보이던 자리였다.
나는 분명 문과적인 성향이 강했지만
‘이과도 노력하면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근거 없는 낙관으로 이과반을 선택했다.
그 결정이 내 성향보다
성적과 그 시절의 시대적 흐름을 더 믿은 선택이었다는 걸
나는 고2가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문제집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는 점점 숫자가 아니라 시간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난해한 문제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 아니라,
이 시간을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를 계산했다.
친구들이 공식의 의미를 이야기할 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내가 공부를 하고 있는 게 아니라
그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게.
나는 이과 머리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나는
맞지 않는 자리에 묵묵히 앉아 있었다.


바꾸고 싶었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선택을 되돌릴 힘도,
그 선택을 다시 말할 자격도
내게는 없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누군가의 도움이 간절했지만
내가 다니던 공립 고등학교에는
그 ‘누군가’가 존재하지 않았다.


한 학년에 열세 개 반,
한 반에 예순 명 가까운 학생들.
교실은 늘 가득 찼고
그 안에는 이름보다 번호가 먼저 불리던 아이들이 있었다.
나는 그중 한 명이었다.


친구들은 고등학교에 들어서자마자
막 생기기 시작한 학원에 다니고,
집으로 선생님을 부르는
과외를 받기 시작했다.
시험 기간이 되면
독서실로 모여들었다.
하지만 내게 그 세계는 없었다.
등록금만 내는 것도 기적 같던 형편에서
학원비는 처음부터
선택지에 존재하지 않는 항목이었다.


모두가 같은 속도로 달릴 때는
노력만으로도 따라갈 수 있었다.
그러나 친구들이
하나둘 도움을 받기 시작하자
그때부터는
다른 아이들이 먼저 앞으로 나아갔다.
혼자 하는 공부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걸
그 무렵에서야 알았다.


그때부터
공부 대신 숨 쉴 수 있는 곳을 찾았고, 그 끝에는 늘 책이 있었다.


이과를 선택해 놓고
문학책을 곁에 두고 살았다.
수필을 읽고, 전기를 읽고,
현실과는 거리가 먼 하이틴 로맨스를 읽었다.
숫자는 끝내 내 것이 되지 않았지만,
글은 나를 잠시 다른 곳으로 데려가 주었다.
책을 읽는 그 순간만큼은
내가 부족한 인간이 아니라는 기분이 들었다.


역방향으로 한없이 달리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그 사이 성적은
조금씩, 그러나 분명하게
떨어지고 있었다.
이과반 학생 수가 적었던 탓에
내신은 더 가파르게
하락 곡선을 그렸다.


고등학교 내내
학교 뒤 산동네에서 살았다.
내 방은 겨울이면
물컵이 얼만큼 추웠고
문틈으로 스며든 바람은
살갗이 아니라
뼛속을 파고들었다.
교복은 선배에게 얻어 입은
단 한 벌 뿐이었고
운동화는 터져
제 형태를 잃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고2,
교복 자율화가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자유라고 말했지만
가난한 집 아이에게
교복 자율화는
선택이 아니라
가난의 노출이었다.
갈아입을 옷이 없다는 사실이
매일 아침 나를 작게 만들었다.
한창 예민한 시기에
나는 그 제도가
너무 싫었다.
너무 버거웠다.


그래도 나는
모든 것을 애써 외면하며
괜찮은 척
공부를 하려고 애썼다.
다 잘되기를 바라서가 아니라
더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정말 무서웠던 것은
돈의 부족이 아니라
마음의 고갈이었다.
자존감은 바닥을 쳤고
그 결핍은 결국
몸으로 번졌다.
스트레스와 고립,
끝없는 불안 속에서
몸 곳곳에 종기가 올라왔고
고름은 얼굴 전체로 퍼졌다.


나는 마스크를 쓰고
학교에 다녔다.
그리고 그 얼굴로,
그 마음으로
고3 학력고사를 치렀다.


그 시절의 나는
아주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삶의 어떤 구간에서는
버티고 견디는 것 자체가
유일한 성취가 된다는 것을.


그 혹독한 시간을 지나며
나는
내 안의 가장 깊은 상처와
가장 깊은 의지를
동시에 보았다.


지금 돌아보면
그 절망 같은 시간을
어떻게 온몸으로 견뎌냈는지
스스로도 놀랍다.


아무도 밝혀주지 않던 길 위에서
무너지지 않기 위해
끝까지 자리를 지켜낸 아이.
그 작고 고단한 아이가
바로 나였다.

✍️ 작가 노트

이 글은 선택처럼 보였으나 사실은 선택이 아니었던 시간, 그리고 그 안에서 무너지지 않기 위해 버텼던 한 아이의 기록을 남기고자 했습니다.


고등학생이 되던 해, 외할머니의 죽음으로 시작된 상실은 삶 전반에 조용한 균열을 만들었습니다. 공부는 여전히 중요했지만, 공부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현실이 분명히 존재했습니다. 가난과 돌봄의 부재, 사교육의 격차와 과밀한 교실 속에서 개인은 쉽게 투명해졌고, 저는 그 투명함 속에 오래 머물러야 했습니다.


이 글을 쓰며 저는 그 시절을 가능한 한 그대로 옮기고자 했습니다.
당시의 호흡과 감각, 말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던 상태까지도 판단 없이 남기려 했습니다.
버틴다는 것은 의지가 강해서라기보다, 떠날 힘조차 없었던 상황의 다른 이름이었다는 점 또한 기록하고 싶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시간은 상처로만 남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밝혀주지 않던 길 위에서 끝까지 자리를 지켰던 경험은, 이후의 삶을 버텨낼 수 있는 최소한의 근력이 되었습니다. 이 글은 그 근력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스스로에게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이 기록이 누군가에게는 지나간 시절을 떠올리는 계기가 되기를,
또 누군가에게는 지금 견디고 있는 시간이 헛되지 않다는 작은 증거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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