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비는 자유예요
나는 지난주에 전역했다. 훈련 기간인지라, 부대에 남아 있는 간부나 후임이 거의 없었다. 조용히 전역했다. 위병소를 나오자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했다. 긴 숨을 내쉬자 옅은 입김이 허공으로 흩어졌다.
집에 돌아오는 택시에서 내가 느낀 것은 허무함이었다. 1년 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그 시간 동안 나는 무엇을 이뤘을까. 무엇을 배웠을까. 아무리 떠올려봐도 생각나는 게 없다. 지난 18개월이 거대한 시간 낭비가 아니었을까 두려운 마음이 엄습한다.
군대는 병사의 모든 것을 통제한다. 전투와 관련된 것부터, 일상의 사소한 것 하나하나까지 다. 머리를 규정대로 잘라도 지 눈에 길어 보인다며 더 자르라고 하는 건 예삿일이다. 병사의 자살 충동을 막기 위해 창문을 15센티미터만 열도록 창틀에 나사를 박은 건 내 상식을 벗어난 일이었다. 만약 사단장이 이 글을 읽는다면, 제발 본인께서 얼마나 멍청하고 비논리적인 일을 고집하고 있는지 깨달으시길 바란다. 병사의 자살의 원인은 활짝 열린 창문 따위가 아니다.
우리 부대는 환경도 열악했다. 천장에서 비가 새는 경험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천장 판넬이 물 젖은 휴지처럼 눅눅해져서 하나 둘 뜯어내더니, 이제 샤워실 앞 천장은 배관이 다 드러났다. 병사의 자기계발을 적극 권장한다면서, 사지방 컴퓨터는 군 e-러닝 강의조차 안 돌아갔다. 휴게실에는 심심하면 쥐가 쏘다녔고, 잠을 자려고 누우면 천장에서 쥐가 기어다니는 요란한 소리가 났다.
간부들이 왜 병사들이 부사관 지원을 안 하는지 이해를 못 하는 꼴이 우습다. 간부 눈에는 문제점이 안 보이는 걸까? 평생을 모범생으로 살아온 나조차 불만이 이렇게 쌓이는데. ‘우리의 주적은 간부’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병사들이 부사관 지원을 왜 안 하는지 정말로 이해 못 하겠는가? 그걸 이해 못 하는 당신들이 바로 그 원인이다.
군대에서는 하고 싶은 일도 못했다. 순수하게 환경이 안 되어서 말이다. 컴퓨터는 네이버 들어가는 것조차 버벅였다. 자격증 공부나 코딩 연습 따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포기하고 말년에 들어서야 노트에 글이라도 쓰기 시작했지만, 손으로 글 쓰는 게 여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나마 목표했던 곳까지 쓰는 데 성공해서 다행이었다.
어찌 됐든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1년 6개월이라는 긴 시간을 버티고 견뎌 겨우 돌아왔다. 그래서 나는 이제 뭘 해야 하는가. 그걸 모르겠다.
전역하고 일주일 동안 나는 유튜브만 보았다. 또다시 무기력의 순환에 빠져버렸다. 자유로워지니 어찌나 글을 쓰기 싫던지. 옛날 사람들이 유배지에서 글을 많이 쓴 이유가 있다. 몸이 편하면 글을 안 쓰게 된다.
자유와 동시에 허무함과 막막함이 찾아왔다.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이 어지러이 늘어지면서 나를 혼란스럽게 한다. 글을 쓰려고 하면 괜히 가슴이 답답해지고 겁이 난다. 취업 생각만 하면 아무것도 하기 싫어진다. 그래서 나는 유튜브와 게임으로 도망간다. 즉각적인 보상. 도파민의 함정. 무기력증. 우울증.
사회에서 실패만 겪어온 나였다. 20대 후반에 들어서는 지금 내겐 스펙도 뭐도 없다. 이런 내가 어딘가에 취업해서 돈을 벌 수가 있을까? 이런 현실적인 불안감이 매일 나를 찾아온다. 아직도 나는 방황하고 있다.
전역 후에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드는 게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모두가 다 겪는 경험일 것이다. 나는 망가진 내 일상을 회복하고, 감정을 정리하고, 삶을 구체화하고 싶다. 그러려고 노력 중이다.
노트북이 완전히 맛이 갔다. 이젠 켜지지도 않는다. 맥북과 게이밍노트북을 샀다. 드디어 스크리브너를 제대로 쓸 수 있게 되었다. 이 글도 맥북으로 쓰고 있다. 이걸로 올해 안에 소설 초안을 다 쓰는 게 당장의 목표다. 글도 쓰고, 책도 읽고, 게임도 하고. 하고 싶은 거 다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