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는' 싫다더니 응팔은 왜 좋아함?

경험한 적 없는 과거를 그리워하는 MZ세대

by 천비단



AI는 날이 갈수록 발전하고 있다. AI가 그림을 그려주고, 노래를 만들고, 심지어 이제는 영상까지 만들어준다. 유튜브 쇼츠를 볼 때면 진짜 영상일지 AI로 만든 영상일지 분간이 안 된다.


그와 동시에 유행하는 것이 있다. 바로 레트로다. 현상까지 며칠씩 걸리는 필름 카메라를 찍지 않나, 카세트테이프로 음악을 듣지 않나, 시티팝이 유행하기도 한다.


모든 게 즉시 해결되는 세상에서, 현상되는 데 3일이나 걸리는 필름 카메라를 찍는다. 빨리빨리를 강요받는 현실에서, 자발적으로 불편함과 기다림을 선택하며 사치스러운 여유를 부린다.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폰을 가졌던 MZ들 사이에 레트로 유행이 도는 이유가 대체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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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도 복고풍 유행은 돌았다. 패션은 10년 주기로 돌아온다고 하지 않는가. 부모 세대 때 유행하던 것이 자식 세대에서 새롭게 유행하는 것은 놀라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MZ세대의 레트로 유행은 이전과 다르다. 지금까지의 레트로 열풍은 그들이 과거에 즐겼던 문화를 다시 소비하는 것이라면, MZ세대의 레트로 유행은 그들이 경험한 적 없는 과거를 향유한다.


이를 가르키는 단어가 있다. ‘아네모이아(Anemoia)’는 미국의 작가 존 코닉(John Koenig)이 자신의 저서 ⌜The Dictionary of Obscure Sorrows⌟에서 제시한 용어다. ‘바람’을 뜻하는 그리스어 anemos에서 유래했다. 그 의미는 ‘본인이 경험한 적 없는 시절의 분위기나 문화 따위를 그리워하는 감정’이다.






과거에는 희망이 있었다. 유래 없는 고도성장기, 열심히 노력하면 그 노력이 보상받으리라는 믿음이 사회 전반에 깔려 있었다. 희망찬 젊은이들은 열심히 노력하여 사회에 자리를 잡아갔다.


이 시기에 많은 사람들이 성공했다. 지금 우리나라에 이름 꽤나 알리는 기업 대부분은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 부모님 세대는 한국의 역사상 최고 성장기의 수혜를 톡톡히 누리며 살았다.


이때 성공한 사람들을 토대로 이른바 ‘성공 법칙’이 만들어졌다. 학생 때 공부를 하고, 명문 대학교에 입학한 다음, 졸업 후 번듯한 직장에 취직하기. 대학 졸업장이 곧 취업 프리 패스 티켓이었던 시절이었다. 대학에 간 사람과 대학에 가지 못한 사람의 극명한 차이가 드러났고, 이로 인해 부모님 세대가 공유하는 대학에 대한 갈망이 형성되었다.


그러나 한국은 1997년 IMF 사태를 겪으면서 저성장 시대에 접어들었다. 성장률을 10%를 넘기던 과거와 다르게, 2000년 이후로 성장률은 점점 떨어지더니 2010년대에 이르러선 2%에 머무르게 되었다. 지금의 MZ세대는 태어날 때부터 저성장 시대였던 것이다.


부모들은 자식에게 ‘성공법칙’을 강요했다. 공부해라, 죽도록 노력해서 명문대에 들어가라, 그렇다면 그 무엇도 너를 흔들 수 없을 정도로 성공할 테다. 나라의 경제가 흔들리자 성공법칙을 향한 맹목적인 믿음은 더더욱 굳건해졌다.


우리는 희망보단 경쟁을 배웠다. 무엇이든 이룰 수 있는 희망찬 미래가 아닌, 피를 튀기며 발버둥쳐야만 생존할 수 있으리란 현실을 배웠다. 어릴 때부터 무한경쟁에 시달리며 더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더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그러나 경쟁의 끝에 기다리고 있는 건 또 다른 경쟁뿐이었다. 경쟁은 끝이 없었고, 우리는 지쳤다. 젊은 세대는 희망을 잃었다. 열심히 노력하면 행복한 미래를 가질 수 있으리란 바람을 버렸다. 앞으로 내게 주어진 것은 끝도 없는 경쟁뿐이다.






tempImage3bmj97.heic <응답하라 1988>


그러던 와중에 젊은 세대는 과거를 목격하게 된다. 미디어를 통해서 말이다. 스마트폰 하나 없던 시절의 이야기를 드라마, 유튜브 등으로 본다. ‘응답하라 1988’, ‘폭싹 속았수다’ 같은 드라마들이 MZ세대 사이에서 히트를 친다.


젊은 세대는 과거의 모습에서 찬란을 발견한다. 강박적이고 불안한 현재를 살아가는 젊은 MZ들은, 아날로그적이고 불완전한 과거를 바라보며 위로를 찾는다.


MZ는 현재와 미래에서 불안을 느낀다. 앞을 봐도, 옆을 봐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스스로 행복한지 확신할 수 없고, 무한 경쟁에 시달려 에너지드링크를 입에 달고만 산다. 희망, 그것은 아무 의미 없는 두 음절이다. 유일하게 과거만이 아름답고 평화로워 보인다.


한국의 경제 성장률은 이제 2%가 되었다. 부동산 가격은 미친듯이 올라갔다. MZ세대는 성장의 희망을 거세당했다. 옛날 배경의 드라마 속 온 가족이 도란도란 모여 밥을 먹는 장면을 보면, ‘노력한 만큼 보상받을 수 있는 희망’을 엿볼 수 있다. 그것이 우리의 가장 큰 결핍이다.


tempImagekfwo8p.heic <응답하라 1988> 중


왜 MZ들이 과거를 ‘낭만의 시대’라고 부를까.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희망찬 내일이 있을 거란 희망을 품고 있기 때문 아닐까 생각한다. 그것이 바로 ‘낭만’의 정체다. 우리가 잃어버린 낭만은 미래를 향한 기대다.


누군가는 과거도 살기 힘들었다고 반박하고 싶을지 모른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자라 고기 반찬 한 번 먹지도 못하고, 인권의 개념도 없어서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죽도록 맞고, 매일매일 회사에서 살다시피 야근하고, 독재와 민주화 운동, 혼란스러운 정치 상황은 말해 뭐하는가. 객관적으로 따지자면 옛날보단 지금이 훨씬 젊은이들이 편하게 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우리도 안다. 과거에도 살기 힘들었다는 거. 20대에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려, 어린 자식을 책임지기 위해 이 악물고 견디고 버텼다는 거. 너무나도 잘 안다. 우리는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그 사실을 애써 외면하며 과거를 그리워한다.


심리학에서 인간은 실존적 불안을 느낄 때 향수를 불러일으킨다고 한다. 일종의 심리적 면역 체계다. 현재의 결핍이 선명해질수록 과거의 환상이 강해진다. 즉 MZ들이 과거를 그리워하는 것은, 바꾸어 말하면 그만큼 지금의 현실이 힘들고 희망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가짜 향수’의 본질이다.


MZ세대는 과거를 필터를 씌운다. 과거의 아름다운 면만 쏙쏙 뽑아 미화하고 편집하여 판타지처럼 소비한다. 현재의 삶이 불행하니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낭만적으로 묘사된 과거를 향유하는 것이다.






tempImager9Hqbo.heic <폭싹 속았수다> 중


살민 살아져. 살다보면 더 독한 날도 와. 살다가 똑 죽겠는 날이 오거든 가만 누워 있지 말고 죽어라 발버둥을 쳐. 죽어라 팔다리를 흔들면 검은 바당 다 지나고 반드시 하늘 보여. 반드시 숨통 트여.

- <폭싹 속았수다> 6화 중


우리는 과거를 그린 드라마 속에서 현재를 살아갈 희망을 찾는다. 아무리 희망을 잃은 세대라고 불리지만, 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해 발버둥친다. 살면 살아진다. 이 한마디를 가슴속에 품으며 오늘 하루도 묵묵히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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