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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비단 Sep 06. 2021

노력만 하면 뭐든 할 수 있다는 거짓말

노력을 찬양하는 나라

공부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돼?


고등학생 때 기숙사 같은 방을 쓰던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이전에도 여러 친구한테 몇 번 받아본 적 있는 질문이었다. 나는 늘 그래 왔던 것처럼 대답했다. 자신에게 맞는 공부법을 찾아라, 내가 해봤더니 이 방법도 좋더라, 일단 교과서는 마스터해라…. 사실 별 내용 없었다. 교과서 위주로 공부하라는 수준의 뻔한 조언이었다. 친구는 조용히 내 말을 듣다가 갑자기 말했다. 난독증이 있다고.


순간 말이 막혔다. 난독증? 그 글을 읽지 못한다는 그거? 생각도 못 한 복병이었다. 친구는 이어서 말했다. 어떻게 해야 성적이 오를지 선생님과 많이 상담했다. 선생님이 말씀해주신 방법을 다 해봤다. 선생님은 모두 하나같이 열심히 노력하면 성적은 무조건 오른다고 말했다. 하지만 성적은 오르지 않았다. 정말 노력했지만, 결과는 그대로였다.


나는 친구가 공부를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알고 있었다. 항상 12시에 칼같이 잠드는 나에 비해(그때 당시 나는 불면증을 고치겠답시고 매일 12시에 잠들었었다. 효과는 없었다.) 그 친구는 새벽 2, 3시까지 공부를 하다 밤늦게 방에 들어왔다. 자습시간마다 항상 딴짓하는 법 없이 인강을 보며 공부했다. 하지만 그 엄청난 노력으로도 난독증의 벽 넘을 수 없었다. 나는 더 이상 입을 열지 못했다. 신나게 떠들어대던 몇 분 전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노력을 찬양하는 나라, 한국


한국은 유난히 노력을 강조한다. “노력하면 뭐든지 다 할 수 있다.” 선생님들의 단골 멘트다. ‘지금 잠을 자면 꿈을 꾸지만, 지금 잠을 자지 않으면 꿈을 이룬다.’라는 잠도 자지 말고 공부하라는 살벌한 교훈도 버젓이 존재하는 나라다. 노력, 그놈의 노력이 뭐길래 사람들이 이토록 노력을 찬양하는 걸까. 정말 노력만 한다면 뭐든지 이룰 수 있는 걸까.


1만 시간의 법칙.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말콤 글래드웰의 책 <아웃라이어>를 통해서 널리 알려진 용어이다. 한국에서는 ‘1만 시간을 투자하면 그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다’하는 식으로 노력을 강조하는 명언으로 왜곡되어 알려졌다. 하지만 글래드웰은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다. 1만 시간의 법칙이란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1만 시간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1만 시간이 충분조건이 아니라 필요조건이다. 우리가 알던 뜻과 180도 다르다.


일단 헤어스타일은 확실히 아웃라이어


말콤 글래드웰은 1만 시간의 법칙과 함께 환경과 운의 중요성도 역설했다. 성공은 노력뿐만 아니라 환경과 운에 의해서도 크게 좌우된다. 실은 모두가 다 아는 불편한 진실이다. 노력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성공하기 위한 환경이 받쳐주어야 한다. 한 아이가 피아노 연주가가 되고 싶어 해도 집이 찢어지게 가난하여 피아노 학원 보낼 돈이 없다면 그 아이가 피아노로 성공할 가능성 거의 없다.




노력만으로 뭐든지 다 할 수 있다는 말은 거짓이다. 모두가 다 알고 있다. 그런데 왜 한국 사람들은 그렇게 노력을 좋아하는 걸까? 왜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거짓말을 하는 걸까?


 이유는 책임을 묻기 편하기 때문이다. ‘노력하면 뭐든지 다 할 수 있다.’라는 말은 곧 ‘어떤 일을 실패했을 때 그 원인은 개인의 노력 부족이다.’라는 뜻과 같다. 네가 실패한 원인은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야. 더 노력했어야지. 이런 말들로 실패를 단순한 개인의 노력 부족으로 치부한다. 노력을 충분히 했으나 환경이 안 따라줘서 실패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돌아오는 말은 항상 ‘그것보다 더 노력했으면 성공했어’다.


뭐가 됐든 결론은 노력 부족


학교 교육도 마찬가지다.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노력하면 공부 잘할 수 있다고 자꾸 말한다. 아이들은 곧이곧대로 믿는다. 성적이 오르지 않는 까닭을 자신의 노력 부족 때문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공부에 무지막지한 시간을 쏟는다. 공부는 엉덩이로 하는 것이라는 괴상한 명언을 믿고, 새벽 세네 시까지 문제집을 풀다가 잠에 든다.


노력을 하면 성적을 올릴 수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한계가 있다. 노력은 수십만 원의 과외나 학원, 또는 타고난 유전자를 이길 수 없다. 어떤 학생이 자신이 공부를 못하는 이유를 학원을 못 다녀서, 부모님이 공부를 못해서라고 말하면 핑계 대지 말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정말 그게 사실일지도 모른대도 말이다.




우리 교육은 노력을 과도하게 강조하고, 개인의 실패를 노력 부족으로 몰아가는 짓을 그만두어야 한다. 노력을 하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거짓말을 그만두어야 한다.


난독증이 있다던 그 친구는 어떻게 되었냐. 친구는 수시로 대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동안 만든 앱들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합격했다고 한다. 그 후 올 A+를 받으며 과탑을 먹었다. 다행히 내 조언은 딱히 도움이 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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