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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비단 Jan 01. 2022

일 월 일 일의 기록

아주 어렸을 때부터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를 싫어했다. 생일, 명절, 크리스마스 등도 마찬가지였다. 평소엔 살아 있는지 관심도 없던 사람들이 서로 희망적인 덕담을 나누는 게, 마치 그것을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희망을 강요하는 게 얼마나 잔인한 행위인지 사람들은 모른다. 어차피 모두 부질없을 텐데. 그냥 오늘따라 쌓인 카톡을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감정에 취약하다.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모르고, 이런 감정을 왜 느끼는지도 모르고, 감정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도 모른다. 최근에도 비슷했다. 종강을 한 지 한 달 정도가 되었다. 공부도 책도 글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유튜브와 게임으로 하루를 보냈다. 매일 새벽 세네 시, 심하면 다섯 시가 넘어서 잠들었다. 또 번아웃인 걸까. 번아웃이 오는 역치는 낮은데 세기는 강하고 시간은 길다. 분명 예전에는 꽤나 성실한 인간이었는데. 이젠 구제불능 쓰레기가 되었다.


이따금씩 불안해진다. 그 무엇도 나를 편안하게 해주는 게 없다.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유튜브로 도망치지만, 늦은 새벽이 되면 두통과 함께 허탈감과 패배감이 찾아온다. 아, 오늘도 나는 해야 할 일은 전혀 하지 않은 채 하루를 죽였구나. 이 때문에 더 가라앉고, 악순환이다.


저번 주에 병원에 갔어야 했는데 안 갔다. 의사가 수면일기를 써오라고 했는데 하나도 안 썼다. 그거 가지고 뭐라 할 것을 생각하니 짜증이 확 나서 가지 않았다. 약도 제대로 안 챙겨 먹었다. 이거 때문에 내 수면패턴이 엉망이 된 걸까. 수면패턴이 엉망이어서 불면증에 걸린 걸까, 불면증 때문에 수면패턴이 엉망이 된 걸까. 원인과 결과를 제대로 파악하는 건 언제나 중요하다.


나는 새벽 세 시에 왜 갑자기 이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까. 한 달이 넘도록 아무 글도 안 쓰다가, 이 타이밍에 어째서. 누군가 글을 쓰는 것은 자식을 낳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자식은 대부분 사생아가 된다고 덧붙였다. 맞는 말이다. 애초에 인간의 삶이란 것도 대부분 실수로부터 부여받는 것 아닌가.


스물셋. 나이 세기는 참 편하다. 현재 연도에 일만 더하면 되니 말이다. 나는 언제쯤 제대로 된 인간이 될 수 있을까. 나는 가끔씩 나 자신을 일회용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왜인지 설명할 수는 없다.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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