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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비단 Feb 04. 2022

아이들에게 인사하지 마세요

교육봉사 후기

우리 학교는 졸업 요건 중에 교육봉사 60시간 수료가 있다. 4학년에는 임고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에 3학년 이전에 다 하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나는 4학년이 될 때까지 한 시간도 안 했다. 귀찮고 두려워서 전혀 손도 대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임고 준비하기 전에 해치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교육봉사는 학교에서 주관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거나, 모교 혹은 근처 학교에 가서 근무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나는 프로그램 신청을 놓쳤고, 기숙사에 유배된 상태이기 때문에 모교에 가는 것도 어려웠다. 게다가 근처 학교는 코로나 때문에 교육봉사를 잘 안 받는 모양이었다.


결국 내가 선택한 것은 지역아동센터였다. 비영리 교육기관에서 봉사활동을 하면 교육봉사로 인정된다고 한다. 이 센터는 거의 항상 봉사 신청이 가능해서 근처 대학교에서 교육봉사생이 많이 오는 곳이었다. 나는 별 고민 없이 패기롭게 하루에 6시간씩 10일, 총 60시간을 한꺼번에 신청했다. 그때의 나는 봉사를 다녀와서 밤에 공부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대체 뭔 자신감이었던 걸까. 스터디 펑크라도 안 낸 게 다행이다.


센터는 매우 작았다. 교회에서 운영하는 아동센터였다. 음악실 겸 식당 하나에 교실 2개, 놀이방 하나가 끝이었다. 이곳에 다니는 아이들은 유치원생 둘, 초등학생 열댓 명, 중학생 두세 명 정도였다. 중학생들은 마주친 적이 없고, 주로 상대하는 건 초등학 저학년 아이들이었다. 보통 수학 문제집을 풀고, 아동용 과학책을 노트에 받아쓰는 게 하루 공부 끝이다. 공부가 끝나면 자유롭게 논다.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공부하는 걸 도와주고, 같이 놀아주는 것이었다.


초등학생을 상대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공부를 시키려고 해도 1분만 지나면 자리에서 일어나 장난치기 일쑤고, 노예처럼 끌려다니며 여기 놀아주고 저기 놀아주고 하다 보면 하루가 다 간다. 특히나 애들이 밖에서 뛰어놀 때 함께하기가 너무 힘들다. 나도 어렸을 때는 자주 뛰놀았는데, 이젠 체력이 달린다…. 초등학교 선생님은 이 짓을 매일매일 한다는 말인가. 초등교육과에게 존경심이 저절로 생긴다.




둘째 날이었다. 어느 정도 아이들 이름을 외우고, 몇 명은 친해지기까지 한 상태였다. 집에 갈 시간이 되었다. 나는 떠나기 전 아이들에게 인사했다. 그런데 돌아가는 길에, 원장님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었다.


“아이들이랑 헤어질 때 안녕이라고 인사하지 말어. 이거 말해줘야 하는데 계속 까먹네.”


“네? 인사하지 말라고요?”


“안녕이라고 하면 애들 울고불고 난리 나. 인사하지 말어.”


순간 이해가 안 됐다. 애들한테 인사하지 말라는 게 말인가 방구인가? 만나면 반갑다고 뽀뽀뽀 헤어지면 또 만나요 뽀뽀뽀 하는 게 한국의 예의이자 정 아닌가? 갑작스럽게 내 상식과 반대되는 말을 들어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원장님께서 아이들에게 인사하지 말라고 하신 이유가 뭘까. 센터에서 만난 아이들은 어째선지 나를 좋아했다. 처음 보는 사이인데도 쫄랑쫄랑 따라오면서 계속 말을 걸고, 같이 놀아달라고 하고, 심지어는 품에 안기는 아이도 있었다. 이 아이들은 오래전부터 교육봉사 선생님들을 봐왔을 것이다. 그리고 그 선생님들이 모두 며칠이 지나면 다시는 오지 않는다는 사실도 경험으로 체득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보는 교육봉사 선생님에게 다시 다가가고, 정을 쌓고, 친해진다. 이별을 상정하지 않은, 오로지 순수한 마음에서 비롯된 행동이다. 그렇게나 친해진 교육봉사 선생님과 헤어져서 영영 만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깊은 슬픔에 잠기는 것이다.


이런 아이들의 순수함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차피 10일 뒤면 헤어질 사이인데, 왜 그렇게 천진하게 정을 쌓는 걸까. 왜 이별 하나하나에 그리도 슬퍼할까. 수없이 많은 교육봉사 선생님들을 만났을 텐데, 헤어짐에 익숙해지진 않는 걸까. 그러기에는 너무나도 어린 나이인 걸까.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고민하다가 결국 아이들에게 인사하지 않기로 했다. 집에 갈 시간이 되면 조용히 빠져나와 아이들 몰래 집에 갔다. 어제 왜 아무 말 없이 먼저 갔느냐는 질문에는 대충 얼버무렸다. 이게 정말 아이들을 위한 일이 맞을까, 아이들에게 헤어짐을 경험하고 충분히 슬퍼할 기회를 주는 게 더 옳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했지만, 그냥 원장님이 시키신 대로 했다.


언젠간 저 아이들도 이별에 눈물 흘리지 않는 어른이 되겠지. 내가 굳이 그 시간을 억지로 당길 필요는 없다. 슬픔에 무감각한 어른이 되도록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순수한 동심을 지켜주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센터에 사는 고양이. 손가락을 깨물고 핥는 걸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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