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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비단 Jan 20. 2022

엄마, 나는 비관적인 사람이야

비관적인 나


너는 네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중학생 2학년이었던 때로 기억한다. 거실에 누워서 핸드폰으로 유튜브를 보고 있는 중이었다. 엄마가 티비를 보다가 내게 물었다. 무심한 듯 툭 던지는 질문이었다. 나는 3초 정도 고민하다가 이어폰을 빼지도 않은 채 대답했다.


나는 비관적인 사람 같아.


엄마가 고개를 홱 돌리더니 나를 노려보았다. 엄마가 화를 냈다. 다시는 그딴 소리 하지 말라고. 평소에 화내는 일이 거의 없는 엄마가 갑자기 큰소리를 쳐서 놀랐다. 얼떨결에 혼난 나는 알겠다는 말도 하지 못했다. 내 방에 들어갔다. 그날 엄마와 나 사이의 대화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때 당시에는 자각하지 못했지만, 나는 이미 우울증에 걸린 상태였다. 우울증은 사람의 정신을 좀먹는다. 그리고는 사람이 가장 방심할 때 부정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내가 나를 비관적인 사람이라고 답했던 것도 무심코 나온 대답이었다. 실수였다. 유튜브에 정신을 뺏긴 상태였고, 엄마가 갑작스럽게 질문해서 신중하지 못했다. 어린 아들의 입에서 ‘나는 비관적인 사람이다’라는 말을 들은 엄마가 얼마나 놀랐을까. 엄마가 화를 낸 것도 이해 간다.


하지만 억울했다. 내가 어떤 사람인 것 같냐고 물어봐서 솔직하게 답했을 뿐인데, 왜 혼난 거지? 순간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기에는 너무 어렸다.


그와 별개로 중요한 사실 하나를 학습했다. ‘나 자신을 비관적인 사람이라고 말하지 말 것’. 어쨌거나 저쨌거나 나는 나 스스로를 비관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 사실을 입 밖으로 내는 건 부모에게 크게 혼이 날만큼 나쁜 짓이라는 것을 배웠다.


그날 이후로 나는 ‘비관적인 나’를 숨기기 시작했다. 부정적인 면모를 숨기고 사람들에게 밝은 모습만 보여주었다. 어두운 면을 들키면 이상한 사람 취급당할까 봐, 사람들이 나를 거부하고 떠나갈까 봐, 내면 깊은 곳에 내 본모습을 꽁꽁 숨겨두었다.


중학생 때 나는 장난기 많은 아이였다. 움직이는 걸 원체 싫어하는지라 운동장에서 뛰놀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여자애들을 놀리고 도망가다 잡혀서 등짝 맞는 게 일상이었다. 쉬는 시간에는 친구들과 모여 다니며 농담과 장난을 나누면서 놀았다. 친구들에게 부정적인 모습은 한 번도 내보이지 않았다.


고등학생 때는 기숙사에 들어갔다. 집이 싫어서 기숙사가 있는 학교에 입학했다. 생각치 못한 문제는 밝은 척해야 하는 시간이 배로 는다는 점이었다. 밤에 잘 때도 친구들과 같은 방에서 자다 보니, 당연하게도 본모습을 더 깊이 숨겨야 했다. 밤에 울 때도 이불을 뒤집어쓰고 소리를 죽여 울었다. 혹여나 울음소리를 룸메이트들이 들을까 불안에 떨었다.


나 자신을 숨기는 건 매우 편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는 ‘비관적인 나’는 숨기고 ‘밝은 나’를 꺼내 보였다. 사람들은 ‘밝은 나’를 보았고 그것을 나라는 사람의 전부인 것처럼 받아들였다. 날 꾸짖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혼란스러워졌다. 학교에서 활발한 내 모습과, 혼자 있을 때 내 모습이 너무나도 달랐다. 학교에서 즐겁게 친구들과 놀고 왔는데도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우면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을 하며 잠들었다. 그리고는 아침에 일어나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갔다. 어제와 다를 바 없이 웃는 표정으로.


어느 게 진짜 내 모습일까. 두 모습은 같은 사람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달랐다. 사람들과 같이 있을 때 나와 혼자 있을 때 나 사이의 괴리를 이해할 수 없었다. 사춘기가 겹치면서 감정의 널뛰기가 더욱 심했다. 낮에는 높은 텐션으로 밝게 지내다가, 밤이 되면 그 반작용으로 더 가라앉았다. 사람들 앞에 나와 혼자 있을 때 나 사이에서 나는 혼란스러웠했다.




두 모습 모두 진짜 나라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사람의 자아는 원래 여러 개고, 상황마다 알맞은 페르소나를 내보이는 게 당연하다.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는 억지로라도 밝은 척하며, 혼자 있을 때는 외롭고 우울한 감정이 몰려오는 것은 정도의 차이일 뿐 누구나 그럴 것이다. 가뜩이나 우울은 전염이 쉬운 감정이다. 나는 내 우울을 주위 사람에게 주고 싶지 않다. 그렇기에 앞으로도 더더욱 비관적인 면모를 숨길 것이다. 우울을 감당하는 것은 나 하나로 족하다.


다만 후회하는 점은 이 사실을 조금만 일찍 알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점이다. 어린 나는 비관적인 내가 싫어서 나 자신을 부정했다. 내면을 받아들이지 않고 도망쳤다. 조금만 일찍 나 자신과 대면했다면, 그리고 위로해주었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부정적인 생각을 가져도 괜찮아, 그건 전혀 잘못된 게 아니야, 너는 나쁘지 않아, 혼란스러워해도 괜찮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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