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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비단 Mar 11. 2022

평생 술을 마시지 않기로 했다

술과 우울증

나는 태어나서 술을 마셔본 적이 없다. 이 말을 하면 사람들이 놀란다. 아니, 어떻게 한 번도 술을 안 마실 수가 있냐고. 하지만 사실이다. 스물세 살이 된 지금도 술을 입에 대본 적도 없다. 대학교 신입생 때 몇 번 간 술자리에서도 콜라만 주구장창 마셨고, 그 이후로는 혹시라도 술을 마시게 될까 술자리는 모두 안 갔다.


사람들은 내가 술을 마시지 않는 이유를 궁금해했다. 누군가는 어떠한 신념 때문에 술을 안 마시냐고 물었다. 나는 대답했다. 그런 신념 같은  없다고. 그냥 술이 싫어서, 그래서 안 마신다. 대부분 내 말을 이해하지 못다. 특별한 이유 없이 그냥 술이 싫다니. 근데 뭐 싫다는데 어쩔 수 있나. 그들은 이내 곧 관심을 거뒀다.


그런데 사실 ‘술이 싫어서 안 마신다’라는 건 핑계다. 술을 싫어하는 건 사실이긴 하다. 그러나 술을 마시지 않는 명백한 이유가 따로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내 우울과 관련 있다.




고등학생 이 학년 때였다. 금요일 아니면 토요일이었을 것이다. 밤 열한 시쯤 되는 늦은 시각이었다. 엄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받은 엄마가 당황한 듯 말했다.


예? 경찰이요?”


경찰이었다. 나는 무슨 일인지 바로 알아챘다. 아빠가 술에 잔뜩 취해 뭔가 사고를 친 것이다. 전에도 종종 있던 일이다. 엄마는 나보고 옷을 챙겨 입으라고 했다. 지금 느이 아버지가 길거리에 누워 계시니 같이 데려오자고. 술에 취한 아빠를 구조하러 직접 나서는 건 처음이었다. 가기 싫었다.


놀이터 가로등이 농구 골대를 쓸쓸히 밝히고 있었다. 그 옆에는 정자가 있었다. 가로등 빛이 전혀 닿지 않아 어두웠다. 그곳에 누군가 누워 있었다. 엄마와 나는 그 누군가에게 다가갔다. 누군가는 어둠 속에서도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얼굴이 붉었다. 엄마가 누군가를 일으켜 세웠다. 그러나 누군가는 몸부림치면서 일어나길 거부했다. 엄마가 말을 걸었다. 여기서 뭐하는 짓이냐고. 누군가가 뭐라고 웅얼거렸다. 알아들을 수 없었다. 엄마는 한숨을 쉬면서 신용카드를 나한테 건넸다.


“편의점 가서 숙취해소제나 헛개차 같은 거 사와라. 뭐라도 먹여야겠다.”


“그거 내가 살 수 있어?”


“살 수 있을 거야. 빨리 갔다 와줘.”


편의점 매대에는 온갖 숙취해소음료가 가득했다. 미성년자였던 나는 뭐가 뭔지 구분할 수 없었다. 결국 헛개차를 집었다. 오백 밀리 짜리 페트병 두 개를 점퍼 주머니에 찔러 넣고 놀이터로 돌아갔다.


놀이터에 돌아가자 누군가가 일어나서 앉아 있었다. 엄마는 헛개차를 신경질적으로 열고는 누군가의 입에 들이부었다. 누군가는 끊임없이 웅얼거렸다. 여전히 알아들을 수 없었다. 나는 그 웅얼거리는 소리가 짜증 났다. 제 몸도 못 가누고 언어가 퇴화한 것 마냥 웅얼거리는 누군가의 모습이 혐오스러웠다.




술 취한 부모님의 싸움


엄마와 아빠는 가끔 술을 같이 마셨다. 꼭 막걸리를 마셨다. 김치나 김 같은 걸 안주로 두고서, 작은 그릇에 막걸리를 따르며 마셨다. 얘기를 나누고, 가끔씩 웃기도 하고, 산책을 하거나 담배를 피우러 밖에 나가기도 했다. 하지만 술자리의 끝은 대부분 싸움이었다. 어느 순간 점점 언성이 높아지더니, 술에 취한 채 서로 욕을 하며 싸웠다. 결국엔 싸울 거면서 왜 함께 술을 마시는 건지 이해가 안 됐다.


엄마와 아빠가 술을 마시고 싸울 때면 방에 처박혀서 이어폰으로 귀를 틀어막고 죽은 듯 있었다. 마치 이곳에 내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러나 소용없었다. 아무리 무시하려고 해도 이따금씩 소음이 이어폰을 비집고 들어왔다. 그럴 때마다 가슴이 쿵쿵거리고 먹먹해서 미칠 것만 같았다.


부모님이 술을 마시고 싸울 때는 두려움을 느꼈다. 아빠가 술에 취한 채 거리에 널브러졌을 때는 혐오감을 느꼈다. 술에 대한 부정적인 기억이 쌓이고 쌓여 지금의 내가 되었다. 내가 술을 싫어하고 거부감을 느끼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털어놓은 것은 술에 대한 거부감이 형성된 과정이었다. 이제부터 말할 것은 술을 절대 마시지 않겠다고 결심한 계기에 대한 기억이다.


대학생 1학년 때였다. 개강하자마자 2학년 선배들과 대면식을 가졌다. 술집에 가는 것은 처음이었다. 선배들이 테이블에 미리 자리 잡고 앉아 있으면 1학년들이 로테이션으로 테이블을 돌아다니는 방식이었다. 술집 안은 어두컴컴하고 시끄러웠다. 아직 저녁이었는데 벌써 취한 사람이 즐비했다. 다른 과에서도 대면식을 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어쩐지 떠들썩한 분위기에 위압감을 느끼며 어색하게 테이블에 앉았다.


내가 새로운 테이블에 앉을 때마다 ‘술을 안 마시는 신입생’에 선배들은 호기심을 가졌다. 술을 안 마시는 1학년은 나 말고도 몇 명 더 있었으나, 살면서 한 번도 술을 안 마셔봤다는 사람은 드물었다. 술을 강요하는 선배는 없었지만, 왜 술을 안 마시냐며, 진짜 한 번도 술을 마셔본 적 없냐며 질문을 퍼부었다. 그때 나의 실수는 왜 술을 안 마시냐는 질문에 댈 핑계를 생각하지 않고 간 것이었다. 나는 술을 왜 안 마시냐는 질문에, ‘그냥 술이 싫어서요’라고 대답했다. 대부분의 선배는 적당히 웃어넘겼다. 어떤 선배는 핑계를 너무 건성으로 대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술자리는 즐거웠지만, 견디기 힘들었다. 어둡고 꿉꿉하고 시끄러운 그곳은 나 같은 내향인에게는 버거웠다. 로테이션이 모두 끝나고, 사람들이 이 테이블 저 테이블 자유롭게 돌아다닐 때쯤 술집에서 도망치듯 나왔다.


출입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세찬 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시간 가까이 술집의 후끈한 공기에 덥혀지던 차에, 차가운 바람이 내 온몸을 휘감아 열기를 빼앗아갔다. 황홀한 기분이 들었다. 알 수 없는 생기가 내 혈관을 타고 돌았다. 술집을 탈출한 것만으로 이렇게나 기분이 격양될 수 있는 건가? 눈앞에 바로 차도가 펼쳐졌다. 색색의 헤드라이트들이 직선을 그리며 쌩쌩 달리고 있었다. 순간 차도로 몸을 내던지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곧바로 퍼뜩 정신이 들어 겨우 참았다. 그리고 확신했다. 내가 술에 취한 채로 문을 나섰더라면 그대로 차도를 향해 뛰쳐나갔을 것이라고.




죽지 않기 위해 술을 마시지 않기로 다짐하다


나는 평소에도 자주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단순히 ‘힘들다’라는 뜻으로 하는 생각이 아니다. 정말로 이 비루한 삶을 그만두고 편해지고 싶다, 나를 옭아매는 의무와 책임으로부터 벗어나 영원한 안식에 들고 싶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고통을 끝내고 싶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죽을지 계획을 세워보기도 한다. 계획이 성공해서 죽어가는 내 모습을 자주 상상해본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살고 싶다. 죽고 싶은 마음과 살고 싶은 마음이 어떻게 공존하냐 따지고 싶겠지만, 양가감정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양가감정은 자살에 대해서도 적용되는 개념이다. 나는 진심으로 죽고 싶으며, 진심으로 살고 싶다. 그래서 죽고 싶은 마음이 나를 지배하지 않도록 경계한다. 우울증이 심해지면 내 방에서 칼이나 가위를 모두 치운다. 혹시나 내가 돌변해서 나를 죽일까 봐, 내 주위의 잠재적인 위험을 최대한 없앤다.


맨 정신에도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 술에 취하면 어떨까. 술에 취하면 전두엽의 기능이 떨어진다. 안 그래도 우울증 때문에 저하된 뇌 기능이 더욱 나빠져 판단력, 자제력을 잃게 될 것이다. 그런 상황이 온다면 아마도 나는 나를 지킬 새도 없이 자살시도를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 내가 술을 안 마시는 가장 큰 이유는 술김에 자살할까 두려워서이다. 술에 취해 생긴 용기가 평생 상상만 해오던 짓을 저지를까 봐 두렵다.


누구는 종교적 신념을 위해서, 누구는 건강을 위해서 금주하는데, 나는 ‘자살할까 무서워서’라는 황당무계한 이유로 술을 안 마신다. 어찌나 이토록 한심할까.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우울증이란 내가 나를 죽일 수 있는 병이고, 우울증 환자는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술을 마시지 않기로 결심한 것도,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다.




가끔 술을 마시지 않는 걸 후회한다. 그냥 눈 딱 감고 마셔볼걸 하는 생각도 많이 했다. 술을 마시는 즐거움을 포기한 게 억울했다. 사실 술을 마신다는, 완전히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게 두려워서 마시는 걸 거부하는 건 아니었을까. 우울증이라는 핑계를 갖다 붙이면서까지. 나는 우울증이라는 이유로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해왔나. 행복해지려는 노력도 일찌감치 접어버린 건 아닌가. 괜스레 슬퍼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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