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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비단 Apr 21. 2024

불효자 새끼

효(孝)라는 폭력


 한국 사람은 K-유교 문화 아래에서 자란다. 학교 선생님이며 TV 같은 미디어에서 효를 그렇게나 강조한다. 낳아주고 길러주신 은혜를 보답해야 한다는 논리다. 내가 낳아주고 길러달라고 부탁한 적도 없는데 왜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건지 이해가 안 갔다. 나는 생각했다. 효(孝)라는 건, 일종의 폭력이라고.




 초등학생 때는 어버이날마다 꼭 편지를 썼다. 알록달록한 편지지에 부모님을 향한 사랑을 담아 편지를 쓰라고 했다. 담임 선생님은 이 편지는 우편으로 부쳐질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10줄을 채우지 못하면 집에 보내주지 않았다.


 항상 이 시간이 곤욕이었다. 할 말이 없었다. 한두 줄 끄적이고 나면 더이상 무엇을 써야 할지 막막했다. 대체 무슨 수로 10줄을 채워야 할까. 나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써내려갔다.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길러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사랑합니다, 앞으로 꼭 효도할게요…. 각종 미사여구와 상투적인 표현과 아부와 거짓을 섞어 겨우 10줄을 채우고 난 뒤 선생님께 가져가면 선생님은 내가 쓴 편지를 쭉 읽더니 다시 써오라고 했다. 부모님을 향한 사랑이 부족하댄다. 왜 부모님을 향한 내 사랑을 지가 정하는지.


 어버이날이 되면 엄마 아빠가 오기 전에 재빨리 집에 와서 우편함에 편지를 찢어버릴까 생각도 했지만, 센터 선생님은 7시가 되기 전에는 나를 집에 보내줄 생각이 없었다. 결국 엄마 아빠는 내가 쓴 편지를 읽었고, 그걸 자랑스럽다는 듯이 눈에 잘 보이는 곳에 카네이션과 함께 걸어두었다. 색연필로 조잡하게 그린 웃는 표정이 날 조롱하는 것 같았다.


 중학생이 되자 어버이날 편지 쓰기 같은 유치한 짓은 더이상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한시름 놓았다. 진심을 꾸며내는 고문을 당하지 않아도 괜찮으니. 부모님도 내가 적당히 컸으니 유치한 편지 따위를 바라는 눈치는 없었다. 하지만 나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한방 먹었다.




 고등학교 수학 시간이었다. 수학 시간은 모둠 학습으로 진행했었다. 4명이 한 모둠이 되어 친구들을 바로 마주 보고 앉는 식이었다. 수업 시작 전, 한 여자애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다 어쩌다가 부모님 관련 얘기가 나왔고,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말을 뱉었다. 그러자 그 여자애가 의문스럽다는 눈빛을 띠며 내게 물었다.


 “너는 부모님 안 사랑하니?”


 정확한 대화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이 질문 때문에 크게 당황했다는 것은 확실하게 기억난다. 정곡을 찔렸던 걸까. 나는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못하고 얼버무렸다. 멍청하게도. 그냥 ‘당연히 사랑하지’라고 맞받아치면 됐는데.


 이 일은 내게 있어 적잖은 충격이었다. 그래도 아슬아슬하게 정상인 범주에 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남이 보기에 나는 부모님을 사랑하지 않는 듯한 말을 지껄이는 인간이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부모님을 사랑하지 않는 불효자가 되어 있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효자 효녀가 되라고 배웠다. 부모님에게 효도하라고, 그렇지 않으면 너는 부모님 은혜도 모르는 불효자 새끼라고 했다. 선생님은 무섭게 으름장을 놓고, 어린 아이들은 선생님에게 혼나지 않기 위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부모님의 발을 씻겨주고 사랑한다고 말한다.


 선생님이 효에 대해 떠들 때마다 나는 죄인이 되었다. 수학여행에서 캠프파이어를 할 때도, 국어 시간에 심청전을 배울 때도, 나는 변함없이 죄인이 되었고 속죄할 길은 보이지 않았다. 도덕 선생님이 ‘부모보다 먼저 죽는 것은 무엇보다 가장 큰 불효’라고 말했을 때, 나는 자살이라는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불효를 매일 고민하는 최악의 대역죄인이 되었다.


 이해할 수 없다. 어떻게 부모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야만 하는지. 나는 도저히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이 뭔지 모르겠는데. 특히나 자식 앞에서 욕지거리를 지르며 아내를 죽이려고 한 인간을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세상은 언제나 어디서나 부모를 사랑하라고만 강요했다. 부모를 사랑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감히 주장한다. 부모에게 꼭 효도할 필요는 없다고. 특히나 그자가 내게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존재라면 더더욱. 인간에게는 효를 거부할 권리가 있고, 무조건적인 효를 강요하는 건 폭력이라고.




 아무래도 나는 평생 불효자 딱지를 떼긴 힘들 것 같다. 아마 누군가는 나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고, 내게 욕을 뱉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절대 사랑할 수 없는 인간을 억지로 사랑하려고 노력하다 좌절하는 것보단, 차라리 불효자 새끼로 사는 게 더 나아 보인다. 부모를 꼭 사랑할 필요 없다. 부모를 사랑하지 못해 죄책감을 느끼기보다는, 당당한 불효자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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