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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비단 Feb 03. 2023

낙방여행 | 오키나와 여행기 (完)

방황은 엿 같은 일이다

 9시 30분에 일어났다. 간단히 씻고 짐을 쌌다. 무거운 호텔 이불도 이제야 적응되나 싶었는데. 떠날 때가 되었다. 프론트에서 체크아웃을 하고 짐을 맡긴 뒤 점심을 먹으러 갔다.


 얏빠리 스테이크. 유명한 스테이크 집이다. 키오스크로 이것저것 선택한 뒤 인쇄된 주문표를 직원에게 줬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직원이 요리를 들고 왔다. 특이하게 돌판 위에 스테이크가 올려져 있다. 국밥집 뚝배기보다 뜨거워 보였다. 돌판 위에 스테이크가 지글지글 거리며 위협적으로 기름을 튀겨댔다. 앞치마가 없었다면 옷이 엉망이 되었을 것이다. 사이드로 시킨 마늘버터볶음밥이 매우 맛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미노우에 해수욕장을 향해 걸었다. 인공해변이라고 한다. 인간은 땅을 개발하고 건물을 짓더니 기어코 해변까지 만들어낸다. 인공적으로 만든 것치고 멋없었다. 일본 아재들이 윗통을 깐 채로 돌아다녔다. 해변에 자주 오는지 살갗이 까맸다. 해수욕장 한편에 푸드트럭이 커피를 팔고 있었다. 자판기가 이렇게 많은데 커피 장사가 잘 될까. 2분 정도 바다를 바라보다가 돌아왔다.



 호텔에서 짐을 찾았다. 3시 50분 비행기를 타기 위해선 이제 공항으로 가야 했다. 공항으로 가는 길은 오키나와에 온 첫날 호텔에 걸어가는 길과 다름없었다. 4일 사이에 변하기도 힘들지. 나는 어떤가. 4일간의 여행 동안 변한 게 있나? 4년 간의 대학 생활 동안 변한 게 있나? 변한 것도, 배운 것도 없다. 애초에 무언가 배우려고 떠난 여행도 아니었다.


 사람은 살면서 방황하는 순간이 찾아온다고 한다. 누군가는 방황을 낭만적인 일이라고 착각한다. 전혀 아니다. 방황은 엿 같은 일이다. 방향도 목적도 잃은 채 방황하는 것은 네비게이션 없는 자율주행 자동차에 몸을 맡기는 것과 같다. 어느 순간 정신 차려보면 내가 원하지도 않은 곳에 와 있다. 삶에 휩쓸리고 휘둘리게 된다. 방황하는 인간은 최선을 다해 엿 같은 방황에서 벗어나야 한다.


 나는 학창 시절 모범생이었고, 교사가 되고 싶다는 희미한 꿈을 따라 사범대에 갔고, 4년 동안 시나브로 꿈을 잃고 방황했다. 그 결과 임용고시에 떨어졌다. 나는 방황하는 중이다. 어디로 가는지도,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국 땅에서 이 사실을 깨달았다.



나하 공항은 첫날보다 사람이 많았다. 국제선 쪽으로 걸어갔다. 탑승수속은 30분 만에 끝났다. 맨 끝자리 좌석이었다. 유튜브를 보다 보니 어느새 인천에 도착해 있었다. 인천은 내가 떠날 때와 변함없었다. 해가 저물어 날이 꽤나 추웠다. 버스표를 뽑았다. 출발지와 도착지가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희멀건 붉은색 직육면체에 몸을 실었다. 고속도로 위에서 나는 눈을 감았다. 눈을 뜨면 도착해 있을 것이다. 도착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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