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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비단 Feb 21. 2024

임용고시에 또 떨어지다



지난 12월 말, 임용고시 1차 합격 발표가 나왔다. 나는 이번에도 떨어졌다. 사실 진작에 예감했다. 시험을 치고 나올 때, 이번에도 떨어지겠구나 생각했다. 작년에 비해 시험을 훨씬 못 봤다. 합격은 어림도 없는 처참한 점수를 받았다.



왜 시험을 망쳤을까. 이런 질문도 더는 의미 없다. 노력 부족으로 귀결될 게 뻔하다. 이런 질문으로 안 그래도 복잡한 내 머리를 어지럽히고 싶지 않다. 그리고 한 가지 확신했다. 나는 더이상 교사가 되고 싶은 마음이 없다.



교사가 되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어릴 적 치기 어린 꿈으로 영락했다. 나는 이 사실을 대학에 다니던 도중 어렴풋이 느꼈다. 하지만 도중에 그만둘 용기가 없었다. 고집을 부려 간 대학이었다. 도저히 교사가 될 마음이 사라졌다고 자퇴하겠다고 말할 용기가 없었다. 타성에 젖어 대학생활을 계속 이어갔다. 그리고 그 결과가 이것이다. 두 번의 실패.



나는 모범생이었다. 항상 공부를 잘했고, 시험을 망친 적이 없었다. 실패를 경험해본 적이 없다. 그런 내가, 임용고시에 두 번이나 떨어지고 임용고시를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비참하다. 나는 실패를 극복하는 법을 배운 적 없다. 실패를 대하는 법, 실패를 딛고 일어나는 법, 그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저 실패를 껴안고 침잠하는 수밖에 없다.



부모님은 다음 임용고시 얘기를 꺼냈다. 내가 당연히 임용고시를 한 번 더 볼 것처럼. 나는 그 태도에 무척이나 화가 났다. 숨이 턱턱 막히고, 두통과 함께 머리가 들끓었다. 당장이라도 무언가 부수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그럴 수 없다면 내 양팔이라도 부수고 싶었다. 책상을 내려쳐서 책상이든 내 팔이든 어느 쪽이라도 산산이 조각났으면 싶은 심정이었다.



둘 사이에 대화가 오갔다. 엄마가 울면서 말했다. 네가 나처럼 밑바닥 인생을 살까 두렵다고. 나는 묻고 싶었다. 그러면 공장에 다니는 내 친구들은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는 중이냐고. 어떻게든 살아보겠다며 아득바득 돈을 벌고 있는 사람들은 다 밑바닥 인생을 살고 있는 거냐고. 대체 엄마가 생각하는 제대로 된 인생은 무엇이냐고.



‘꿈’이란 대체 뭘까. 나는 학생 때 ‘꿈’이라는 것에 속아 대학에 갔다. 대학에 가니 ‘꿈’이라는 녀석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의욕과 열정을 잃은 우울증 환자만 남았다. 어른들은 그렇게 ‘꿈’을 가지라고, ‘꿈’을 이루어야 한다고 강조했으면서, 정작 ‘꿈‘이라는 건 아무 이유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질 수 있다는 중요한 사실은 경고하지 않았다. 사기를 당한 기분이다.



지난 5년의 시간이 거대한 낭비가 아니었을까 하는 불안감이 솟구친다. 사범대에 들어가 4년 동안 공부하고, 시험에 떨어지고 1년 동안 재수했다. 임용고시를 포기한다면, 대체 이 5년은 무엇인가. 아무 의미 없는 시간 낭비가 되는 걸까.



차라리 내게 꿈이라는 걸 알려주지 말지. 그냥 돈을 왕창 벌라고, 어떻게든 돈을 벌어서 성공한 삶을 살라고 하지. 갈피 없는 원망이 온몸을 좀먹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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