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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우 에디터 Jun 21. 2022

데미안 허스트는 왜 '박제 상어'를 만들었을까

예술가의 셀프 브랜딩 전략

데미안 허스트, © Gagosian Gallery

오늘날의 예술가는 작품을 파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를 파는 사람이라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작품이 던지는 메시지가 곧 작품 가치로 직결되는 현대미술. 이 씬에서는 과거처럼 작가가 꽁꽁 숨겨져 있기보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매력을 어필해야 하죠. 그 점에서 가장 매력적인 작가는, 바로 이 남자입니다. 상어를 박제해 전시한 데미안 허스트.


데미안 허스트는 박제상어를 통해 현대미술씬의 독보적인 작가가 되었습니다. ‘데미안 허스트’ 이름은 그 자체로 오늘날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죠. 그렇다면 허스트는 어떻게 작품을 마케팅 했을까요?



01 제목부터 눈길을 끌어야 한다

© Lslington Gazette


그의 박제 상어는 미술시장에 충격을 선사했습니다. 거대한 상어가 거대한 탱크 안에 담겨있는 모습은, 비주얼 만으로도 파격적이었죠. 여기에 허스트는, 독특한 제목을 붙여 더 큰 의문을 던집니다. <살아있는 자의 마음 속에 존재하는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 길고도 철학적인 제목은 관객들로 하여금 작품의 의미를 고민하게 만들었습니다. 대중과 평단, 언론은 작품에 대해 한 마디씩 덧붙이게 되었죠.


만약 작품의 제목이 <Untitled (무제)> 나 <상어> 였다면 어땠을까요? 아마 작품은 지금 만큼의 파급력을 가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허스트가 이렇게 길고 심오해보이는 제목을 붙인 건 다분히 의도적이었습니다. 제목부터 눈길을 끌어야 현대미술 씬에서 주목받을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아무 제목이나 심오해보이는 걸 붙이진 않았습니다. 작품 제작 의도를 전달하면서, 자신의 예술세계를 매력적으로 포장할 수 있어야 했죠.


© The Times


그간 허스트는 사람들의 ''느낌"을 작품으로 승화하는 작업을 해왔습니다. 상어를 통해 허스트가 전하고 싶었던 느낌은 두려움, 공포감이었죠. 그리고 허스트는 이 공포감이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서 가장 커진다고 보았습니다. 미술관이라는 공간에서 상어를 마주한다면 그 공포감은 얼마나 클까요?


그래봤자 죽은 상어지만, 허스트는 그렇게 보지 않았습니다. "상어는 죽었을 때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고, 반대로 살아있을 때는 죽은 것처럼 보인다." 허스트가 남긴 말입니다. 그는 이런 모티브들을 엮어 내, 눈길을 끄는 제목을 만듭니다. 이를 통해 작품은 단순한 박제 상어가 아닌, 죽음에 대한 메시지를 던지는 작업이 되었죠.


© Time Out


허스트의 전략은 시장에 제대로 먹혔습니다. 테이트 모던의 큐레이터인 버지니아 버튼 Virginia Button은 이 작업을 들어 "잔인할 정도로 모순을 잘 보여주는 정직한 작품이다. 허스트는 우리 문화에 깊게 스며든 죽음에 대한 광적인 부정 현상을 보여주려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말했습니다. 허스트가 상어를 통해 공포감을 관객에게 선사했음은 물론, 죽음이라는 주제까지 관통했다는 걸 보여주는 비평이었죠.


반면, 비난 여론도 있었습니다. 일간지 더 선 The Sun에서는 '감자칩도 곁들이지 않은 생선이 5만 파운드!'라며 작품의 메시지보다 작품 자체의 난해함을 꼬집었어요. 하지만, 허스트는 이 마저도 마케팅에 적극 활용합니다. 언론이 떠들면 떠들수록 작품 가격은 오르기 때문이었죠.



02 욕 먹는 작품이 잘 팔린다

데미안 허스트, © Newsweek


1991년 내놓은 박제 상어, <살아있는 자의 마음 속에 존재하는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은 많은 비난과 관심을 먹고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여러 미술관과 갤러리를 돌며 전시되었고, 가격은 계속 올랐죠. 그러던 중 2005년, 작품 속 상어가 썩기 시작했습니다. 당황한 관계자들은 상어가 담겨있는 포름알데히드 용액을 더 투입했습니다. 용액의 농도를 높이면 조금 썩었을 지라도 그 상태는 보존이 될테니까요. 하지만 상어는 계속 썩어갔습니다. 상어 껍질은 말려들어가고, 살점들은 부패하고 있었죠.


결국 작품을 전시하고 있던 갤러리 측 관계자들은 상어를 탱크에서 꺼내, 말린 껍질을 펴는 작업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미 너무 늦어버린 후였죠. 이 썩은 상어로 허스트는 두 번의 욕을 더 먹게 됩니다.

© Damian Hirst


첫 비난은 상어 교체 때문이었습니다.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썩은 상어는 처음 작가의 의도와 맞지 않기에, 결국 교체가 결정되는데요. 이에 많은 미술사학자들은 '동일한 작품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상어 교체를 두고 찬반 논란이 치열해지자, 작품을 가지고 있던 가고시안 gagosian 갤러리 측은 반박문을 냅니다. 그리고 미국의 설치미술가 댄 플레빈 Dan Flavin의 사례를 제시했죠.


형광등으로 만든 플레빈의 조각작품은, 전시 중에 형광등이 나갔을 때 빠르게 교체 되는데요. 이를 교체한다고 해서, 예술로서 작품이 본래 의미를 상실했다고 본 사람은 없었습니다. 허스트의 상어도 형광등처럼 재료로 사용된 것이기에, 문제가 있다면 바꿀 수 있는 셈이었죠.


결국 상어는 다른 것으로 교체되었습니다. 허스트는 작품 제작 당시 상어를 잡아준 어부에게 '전에 사용했던 것과 같은 상어'를 잡아달라고 요청했죠. 총 다섯 마리의 상어가 도착했고, 이중 이전 작업과 가장 비슷한 상어가 사용되었습니다. 또 상어가 담긴 포름알데히드 용액은 이전보다 10배 더 진한 농도로 투입됐죠. 이렇게 첫 번째 비난은 마무리 되는 듯 했습니다.

스티브 코헨, © NBC News


하지만 이후, 박제 상어는 또 한번 욕을 먹게 됩니다. 논란의 상어가 1,200만 달러(한화 약 155억 원)에 판매되었기 때문이죠. 등장부터 파격 그 자체였던 상어, 썩어가며 논란을 일으키다 결국 교체된 그 상어 작품이 100억 원이 넘는 금액에 팔렸다는 사실은 많은 이들에게 또 한번 충격을 주었습니다. 구매자는 엄청난 재산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금융계 종사자, 스티브 코헨이었는데요. 코헨은 전부터 현대미술을 초고가 시장으로 몰아가는데 일조한다는 비난을 받은 인물입니다. 이에 많은 루머가 생겨났죠. 이번 박제 상어 구매도 사실은 104억 원 정도에 구매했는데, 언론 플레이를 위해 구매 가격을 부풀렸다는 등 다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작품을 산 스티브 코헨도, 작품을 판 데미안 허스트도, 중개를 맡은 가고시안 갤러리도, 그 어떤 당사자도 코멘트를 남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언론에서 많은 추측 기사를 내보낸 덕분에, 박제 상어는 광고 효과를 톡톡히 보게 되었죠. 이 거래로 허스트의 작품 가격은 현저히 오르게 되었습니다.



03 예술성을 놓지 마라

© flaunt magazine


비범한 작품 설계, 이목을 끄는 제목, 작품의 구설수를 마케팅으로 역이용하는 실력. 허스트는 현대미술씬에서 예술가가 갖춰야 할 모든 재능을 다 갖춘 작가입니다. 한편, 이런 질문도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작품 자체는 얼마나 예술성이 있는데?'


박제 상어는 '탱크 시리즈' 중 하나입니다. 허스트는 이 시리즈를 '자연사 Natural History'라고 칭하는데요. 이 시리즈를 통해 그는 살아있는 사람들이 죽음 속에서 정지된 모습을 감상하며, 인생의 즐거움과 죽음의 필연성을 느끼길 바란다고 언급했습니다. 이는 허스트가 대학 시절, 장례식장에서 아르바이트 하며 느낀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진 주제인데요. 산 자와 죽은 자가 공존하는 장례식장에서 그는 삶과 죽음의 세계를 묘사한 작품을 만들겠다 결정했죠.

A Thousand Years, Damian Hirst © The Guardian


'삶과 죽음'은 예술계의 해묵은 주제입니다. 언제나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했고, 이는 예술의 시작부터 현재까지 유효한 이야깃거리죠. 하지만 허스트는 이런 주제를 처음으로 파격적으로 제시했습니다. 1990년, 허스트는 창고에서 전시를 열고 <A Thousand Years> 라는 작품을 내놓습니다. 유리 탱크 안에 썩어가는 소 머리가 있고, 그 안에는 수 많은 파리가 알을 까고 있었죠. 전시 기간이 지남에 따라 소 머리는 작아지고, 파리는 늘어났습니다.


그간의 죽음은 성스럽게 묘사되거나, 아예 끔찍한 전쟁의 참상을 담거나, 사랑하는 이가 떠나 슬퍼하며 그려지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이런 죽음을 허스트는 노골적이고 혐오스럽게 전시해, 예술이 선보이는 죽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것이죠.

약장 시리즈, © Bastian

여전히 이를 예술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는 시선도 존재합니다. 예술작품스럽긴 한데, 예술성은 알아채기 힘들다는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스트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의 작업은 탱크 시리즈만 있는 것이 아니거든요. '의학'을 오늘날 인간의 새로운 종교로 해석하거나 (약장 시리즈), 색깔에 의미를 담아 언어처럼 제시하거나 (스폿 페인팅), 사진과 같이 선명한 그림을 선보이거나 (포토리얼리스트), 나비의 날개를 얹어 패턴화 된 그림을 그려내거나 (나비 시리즈), 조각작품, 스핀 페인팅 작품 등 다양한 작품을 내놓으며 자신의 예술세계를 확장해나가고 있습니다.



데미안 허스트 작품 가치 알아보기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살아있는 예술가, 데미안 허스트. 이전에 그와 비슷한 수준으로 주목을 받은 앤디워홀과 살바도르 달리는, 돈이 인생의 주요 관심사가 되면서 천재적인 창의성의 일부를 상실했다 평가받습니다. 데미안 허스트는 그들과 비교할 만한 재산을 가지고 있습니다. 40대 초반의 나이에 이미 그 어떤 생존작가보다 돈이 많고, 유명하며, 엄청난 명예를 쥐고 있기도 하죠.

스폿페인팅, © Gessato

허스트는 2008년, 스폿페인팅, 스핀페인팅, 그리고 나비그림 제작을 중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 작업들은 대부분 데미안 허스트의 조수가 작업하는데요. 그런 작품이 계속 팔려나가 돈을 많이 버는 것은 좋지만, 이 과정에서 창의성 개발에 문제가 생겼다고 보았습니다. 본인은 지시하고, 조수들은 수행할 뿐. 이런 작업 방식에서 새로운 크리에이티브가 나오긴 어려웠기 때문인데요. 창의성에 집중하기 위해 정기적인 수입원이 되는 작품을 포기하는 건, 그의 행보에서 돈이 중요치 않음을 시사하기도 합니다.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 그리고 타고난 마케팅과 브랜딩 능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허스트 브랜드는 평범한 사람들의 수많은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그의 작품은 허스트가 아니면 한 번도 현대미술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사람들을 갤러리로 불러모았다. 또, 허스트의 작품이 발표될 때 마다 신문들은 악평과 함께 그 내용을 헤드라인 기사로 싣는다.

갈리는 반응에 대해 제리 살츠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허스트, 그의 딜러들, 그리고 그의 컬렉터들에 대해 취향이나 가치관이 정말 이상한 인간들이라고 비웃는다. 그런데 그들 역시 우리를 향해 구닥다리에다 돈이 없어 매일 징징거리며 사는 한심한 인간들이라고 비웃는다. 이처럼 우리는 자기중심적인데, 그중 누가 궤도를 벗어나 새로운 게임을 즐기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

시장이 창출해내는 취향을 비난할 필요는 없다.

은밀한 갤러리, 도널드 톰슨, 리더스북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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