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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우 에디터 Jul 17. 2022

사우디아라비아의 미술품 쇼핑

그들은 왜 큰 땅에 작품 다섯 개만 계약했을까

© Pace Gallery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의 행보가 심상치 않습니다. 문화예술 랜드마크를 세우기 위해, 어마어마한 미술품들을 사들이고 있죠. 현재 알려진 바에 따르면, 사우디의 북서부, 알울라 사막지대에 블록버스터급 작품을 볼 수 있는 미술관을 세운다고 하는데요. 이 사막지대는 여의도의 13배 넓이로 매우 큽니다. 이곳에 수조 원을 들여 미술관 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시설을 설계할 예정이라고 해요.


그리고 이 사업에는 현대미술계에서는 꽤나 유명한 작가 두 명이 참여합니다. 바로, '제임스 터렐'과 '마이클 하이저'. 이 두 작가의 작품 다섯 점이 공간을 채운다고 하는데요. 여러 의문이 뒤를 잇고 있습니다. '그 넓은 공간에 왜 작가 두 명만 쓸까?' '사우디 정도면 더 유명세 있는 작가의 작품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어떤 기준으로 작가를 선정한 걸까?'


한국에서는 '털보 아저씨'라고도 불리는 제임스 터렐 © James Turrell


우선, 이번 사업에 함께하기로 한 첫번째 작가인 제임스 터렐부터 알아볼게요. 터렐은 한국과 매우 친숙한 작가입니다. 한국에는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미술관이 지방 곳곳에 있고, 한국인 이경림 작가와 결혼하기도 했죠.


터렐의 작품세계는 독특합니다. 빛을 가지고 작품을 선보이는데요. 사실 미술의 역사에서 빛은 중요한 요소였지만, 주연보다는 조연으로 많이 다뤄져 왔어요. 그런 빛을 터렐은 과감하게 주연의 자리로 끌고 옵니다. 그가 활용하는 빛은 자연광, 인공광 모두 아우르는데요. 두 빛 모두 작품 감상을 위해서는 철저하게 통제된 상황이 필요합니다. 작품 외 다른 빛을 차단하기 위해 공간부터 설계해 나가죠. 더불어 작품 감상할 때에도 통제할 것은 많습니다. 관객 인원, 관람 시간, 관람 가능 날씨까지도 고려 대상이죠. 이중 하나라도 충족되지 않으면, 작품을 볼 수 없습니다.


터렐 작품의 전시 공간, © James Turrell


Artsy에 따르면 터렐의 작품 평균 가격은 2억 7천만 원 - 5억 원 선이라고 해요. 사우디가 사들인 것 치고는 별로 안 비싼데? 할 수도 있지만, 사실 정확한 터렐의 작품 가격은 우리가 알 수 없습니다. 터렐의 작품은 빛을 통한 경험이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공간을 크게 쓰거나 건축부터 설계해야 하는 작업이 많기 때문이죠. 정확한 설계 견적은, 작품 가격보다도 더 비쌀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터렐의 작품을 우리가 미술관에서 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회화나 페인팅 작업은 작품 한 점만 사면 보관이나 전시가 용이한데요. 반면, 터렐의 작품은 감상 환경 조성도 해야하고, 이를 위한 관리가 매우 까다롭습니다. 하지만 철저히 통제된 상황에서 빛을 온전히 마주하는 경험은, 터렐만이 줄 수 있다는 평가를 받으며 많은 아트러버들의 관심을 끌고 있죠.


마이클 하이저, 부유하는 돌 © Highlike


한편, 터렐과 함께 이번 사업에 참여하는 작가인 '마이클 하이저'도 주목할 만한 작가입니다. 하이저는 대지미술가로, 흙, 돌, 그리고 대지를 활용해 거대한 작품을 탄생시키죠.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부유하는 돌>이 있습니다. 이 작업은 말 그대로 공중에 떠있는 돌을 의미해요. 그런데, 그 돌의 규모가 어마어마합니다. 340톤의, 높이 약 7미터 거대한 돌이죠.


작품을 구상하고 돌을 찾는 데에만 38년이 소모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돌을 옮길 차를 제작하는 데 또 5년이 걸렸고요. 작품이 설치될 미술관에서는 340톤의 돌을 띄우기 위한 특수한 공간 설계도 진행했습니다. 돌 하나를 공중에 띄워 관객에게 선보이는데 얼마가 들었을까요? 120억 원 입니다. 아마 그 어떤 현대미술도 제작비에만 120억을 태우진 않을 것 같아요.


이중 부정 © Michael heizer


사실 대지미술의 특징엔 흙이나 돌, 대지를 활용하는 것 뿐만 아니라,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는 점도 있습니다. 흔히 '블록버스터급 규모'라 일컫죠. 부유하는 돌 역시 큰 규모이지만, 하이저의 작품 중에서는 작은 편에 속해요. 그의 작업에는 거대한 협곡을 인위적으로 만든 작품도 있습니다. 제목은 <이중부정>으로, 언뜻 보아서는 미술작품이라 보기 어려운데요. 하이저는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24만 톤의 흙을 옮겼다고 해요.


이 작업을 보기 위해서는 헬기를 타거나 경비행기를 이용해야만 합니다. 관람 자체가 어려운 데다가, 이 작품은 사고 팔 수도 없어요. 대지미술 자체가 상업적인 예술에 반발해서 팔 수 없는 예술을 선보이겠다는 목적으로 시작됐기 때문이죠. 때문에 사우디가 이번 사업을 위해, 하이저에게 얼마를 주고 고용했는 지도 알 수 없어요.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진행된 터렐의 전시 © Clear Magazine


이름도 낯선 데다가, 작품도 쉽게 볼 수 없는 두 작가. 제임스 터렐과 마이클 하이저. 사우디아라비아는 왜 이들 작가를 선택했을까요? 그 이유는, 우리가 이들을 잘 몰랐던 이유와도 맞닿아 있어요.


이 작가들의 작품은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하는 조각 혹은 설치작품이라는 공통점을 갖습니다. 그런데, 사실 미술시장에서 조각 작품이나 설치 작품은 그닥 인기가 없어요. 판매량 역시 회화 작품에 비하면 현저히 적은 편이구요. 이건 조각, 설치 작품의 특징 때문에 그렇습니다.


마이클 하이저, Le Bourget © Gagosian Gallery


조각, 설치 작품은 대부분 면적을 많이 차지하고, 때로는 작품만을 위한 특별한 공간을 제작해야 하기도 합니다. 관리 또한 어렵고, 보관 역시 까다롭죠. 이런 이유로 작품은 잘 팔리지 않습니다. 소비가 적은 장르다 보니,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얻기도 쉽지 않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우디가 이런 초대형 조각, 설치 작가들을 공식적으로 선발한 건, 규모 면에서 압도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기존의 미술관이 수십, 수백년간 쌓아온 명성을 이기기 위해선, 그들이 쉽게 갖지 못하는 작품을 선보여야 하고, 이걸 사우디가 가진 방대한 땅과 거대한 자본으로 해결하려는 것이죠.


© Highlike


현재 사우디아라비아에는 여러 이슈가 있습니다. 자국 반체제 언론인 살해 지시 의혹, 예멘 내전 개입 등 논란이 있죠. 아직 이런 이슈가 해결되지 않은 시점에 사우디의 예술 사업 확장은 비난을 받기도 합니다.


한편, 사우디가 이런 이슈를 해결만 하면, 이번 문화 공간은 아마도 아트러버들의 '꼭 가보아야 할 아트스팟' 중 하나가 될 것이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보기 힘든, 블록버스터급 작품을 한 곳에서 만나볼 수 있을테니까요.




뉴스 요약

① 사우디아라비아가 미술품을 대거 사들이며, 새로운 문화 관광 사업을 추진 중이다.

② 이 사업에는 현대미술 작가 '제임스 터렐'과 '마이클 하이저'가 참여한다.

③ 이들은 모두 방대한 규모의 조각, 혹은 설치 작품을 선보이는 작가들이다.

④ 그간 그들의 작품은 그 규모 때문에 쉽게 볼 수 없었으나, 사우디의 방대한 자본과 대지로 이들 작품을 한 곳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⑤ 한편, 사우디에는 해결되지 않은 여러 이슈가 있다. 이와 별개로 문화 공간이 완성되면, 많은 이들이 찾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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