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더현대서울에서 다가올 5월, 2주년 기념전을 진행합니다. 현재는 포스터만 공개된 상황인데요. 포스터엔 프랑스 국립현대미술관, 퐁피두의 정식 명칭이 적혀있습니다. 퐁피두는 루브르, 오르세와 더불어 프랑스 3대 미술관의 하나로 손꼽히죠. 아직 보도된 바는 많지 않습니다. 남들보다 한 발 앞서 이번 전시, 어떤 포인트들이 있을지 살펴볼게요.
퐁피두 센터는 1984년, 프랑스 파리에 지어진 복합문화공간입니다. 현대미술관 뿐만 아니라 다양한 공간들이 함께 있죠. 도서관, 음악연구소, 서점, 레스토랑, 영화관 등이 있습니다. 퐁피두 센터 4층과 5층에 가면 미술관에 들어갈 수 있는데요. 4층은 현대미술 작품, 5층은 근대미술 작품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소장 작가 리스트업도 화려합니다. 뒤샹, 마크 로스코, 앤디 워홀, 마티스, 피카소, 칸딘스키, 샤갈 등이 잘 알려져 있죠. 소장 작품도 13만 점으로 매우 많은 편이고요. 현재는 전 세계 미술관 방문객 순위 15위의 미술관으로 자리 잡았지만, 지어진 초기에는 논란이 많았습니다.
퐁피두의 외관을 보면 마치 공장 같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주변을 둘러싼 건물들은 고풍스러운 옛 디자인을 유지하고 있어, 더 이질적으로 보이죠. 건물이 지어진 당시, 프랑스 일간지 ‘르피가로'에서는 “네스호에 괴물이 있다면, 파리에는 퐁피두 센터가 있다"라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 리처드 로저스는 자서전에 퐁피두 센터의 완공 후 에피소드를 털어놨습니다.
퐁피두 센터 개관을 며칠 앞둔 상황에서,
비 오는 날 우산을 챙기지 못해 서성이던 중
한 여인이 우산을 씌워주었다.
함께 길을 걷다 여인이 퐁피두 센터에 대해 말을 꺼냈고,
내가 그 건물의 설계자라고 말하는 순간
여인은 우산으로 내 머리를 내리쳤다.
이처럼 당시에는 많은 비난을 받았지만, 오늘날엔 이런 노출형 구조가 ‘하이테크 건축'이라 불리며 성행하고 있습니다. 하이테크 건축이란, 금속과 유리를 이용해 첨단 기술이 접목된 기능적 이미지가 느껴지는 건축물을 의미하는데요. 퐁피두 센터 이후 이런 건축물들이 많이 지어졌습니다. 오늘날 이런 건물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만큼, 퐁피두의 건축가 리처드 로저스는 현대 건축의 미적 기준을 바꾸었다 평가받죠.
퐁피두 센터는 다양한 국가에 분관을 내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현재 스페인(2015년 완공)과 중국(2017년 완공), 벨기에(2018년 완공)에 해외 분관을 운영 중에 있죠. 올해인 2023년, 퐁피두 센터 프랑스 본관은 4년 간의 긴 리모델링에 들어갈 예정인데요. 그 기간 동안 작품들이 분관으로 이동해 전시될 거란 전망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일환 중 하나로 이번 더현대 전시도 진행되는 것으로 보이고요.
아마 미술에 관심있는 분이라면 이 소식, 종종 접했을 겁니다. 퐁피두 센터가 한국에 분관을 유치한다는 것. 2021년 4월, 인천국제공항에 퐁피두 센터가 들어선다는 내용이 처음 전해졌습니다. 당시의 계획은 매우 디테일했어요. 2024년 12월쯤, 인천공항 제2 여객터미널에 지어진다는 것이었죠. 하지만 인천공항 측의 용역 조사 결과, 수천억 대 비용이 들 것으로 판정 나면서 자체 미술관 조성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하반기, 부산시가 퐁피두센터와 회의를 통해 부산 분관 설립을 논의했고, 그 결과로 부산 북항 지역이 유력하게 떠올랐죠.
당시엔 부산 시장까지 나서 적극적인 모습을 취했습니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부산 분관 설립에 대해 원칙적 합의를 이뤘다'며 매년 부산 분관과 프랑스 본관의 교류 전시를 열 것이고, 완공 전 부산에서 퐁피두 전시를 열 것이라 언급하기도 했죠. 마티스와 피카소 전시가 열릴 거란 보도도 있었는데요. 이후 갑자기 인천시가 유치전에 뛰어들었습니다. 2022년 11월, 인천시장이 직접 퐁피두센터 관장을 만나 인천에 분관 설치를 요청하기도 했죠.
이어지는 인천시와 부산시의 유치 경쟁. 이때문에 되려 ‘퐁피두의 몸값만 부풀려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또 ‘정작 퐁피두는 생각도 않고, 전담 부서도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윗선만 경쟁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비판도 나왔고요. 문화예술을 놓고 정치적으로 선언하는 구호주의의 전형이라는 비판도 있었습니다. 여러 비판과 비난이 이어지는 상황 속, 한국의 퐁피두센터 분관 설립은 미지수로 남은 상황에 머물러 있고요.
그런 가운데 올해 5월 퐁피두가 소장한 작가 중, 라울 뒤피의 작품이 서울을 찾을 예정입니다. 이번 협업은 시리즈 전시로 진행될 것 같은데요. 그 첫 번째 전시로 선보이는 건, 라울 뒤피입니다. 전시 제목도 <뒤피: 행복의 멜로디>죠.
라울 뒤피(1877-1953)는 프랑스의 화가로, 밝고 따뜻하며 아기자기한 색감이 인상적인 야수파 화풍이 특징입니다. 그의 그림을 보면 다소 거칠게 사용된 붓터치를 볼 수 있는데요. 그의 그림을 본 시인 아폴리네르는 ‘도대체 눈을 감고 그린 그림이냐'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라울 뒤피는 “맞아요. 추한 세상은 보기 싫어서 눈을 감고 그렸습니다"라고 대답했고요.
이처럼 뒤피의 그림은 현실의 추함은 덜어내고, 따뜻하고 섬세하게 그려졌습니다. 전시 제목에서 볼 수 있듯, 어딘가에서 행복의 멜로디가 들려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그림들이죠. 코로나 걱정이 잊혀지고 처음 맞는 봄, 다가올 5월에 더현대와 퐁피두센터 협업 전시가 기대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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