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진 농업정보를 모으고 나누다
최근 1차 베이비 부머(1955-63년생)들의 본격적인 은퇴가 시작되고 도시인들의 전원생활을 위한 이주가 늘면서 귀농귀촌인구가 증가하고 있어요. 이들 중 많은 수는 이촌향도를 주도했던 세대이기 때문에 귀향이라는 회귀 본능도 있지만, 도로망 및 정보통신망의 발달로 도시 농촌간 정보 격차도 많이 해소되었고 낮은 생활비와 상대적으로 건강한 생활이 가능했기 때문이죠. 이들은 오랜 도시생활과 기업근무의 경험으로 전자상거래, 마케팅 등 시장접근력이 높고 새로운 관점으로 농촌을 혁신할 수 있어서 침체된 지방경제를 살릴 수도 있는 긍정적 측면도 많다고 할 수 있어요. 또한, 일본에서 유행하는 ‘반농반저’의 삶처럼 작은 농업을 통해 건강한 식량을 지속가능하게 자급하고 값싼 생활비로 저술, 디자인, 프로그래밍 등 자신의 타고난 재주를 세상을 위해 활용함으로써 인생은 물론 사회를 더 행복하게 만드는 대안적 삶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농사를 짓는 일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의지는 있는데, 어디서,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지, 누가 조금이라도 나에게 꼭 맞는 정보를 알려준다면 큰 도움이 될텐데 말이죠. 마음과 각오는 준비가 되어 있으니 마중물이 되어줄 정보나 사례들만 있다면 너무 좋을 것 같습니다. 정보의 홍수 시대에 검색을 하기 시작해 봅니다. 그런데 내 질문에 딱 맞는 답을 찾기가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정보 공유라며 올려진 단답식의 의견들이 과연 믿을 만한 정보인지 그 근거를 찾기도 어려워 시간만 낭비하는 꼴이 부지기수 일 때가 많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농작물의 가격 책정 방법이나, 토양의 상태 등 정확한 조언을 줄 수 있는 전문가를 찾고 싶어해도, 인터넷에서 찾아 내기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어쩐지 농업 분야는 다른 분야에 비해 더 어려운 것 같다는 이야기도 덧붙이면서요. 하지만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소비자의 불편함을 해결하려는 시도에서 혁신적인 서비스와 상품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요. 네, 파머스 비즈니스 네트워크(Farmers Business Network, FBN)의 이야기입니다. FBN은 농장들 간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어, 농업에 관심 있는 초심자에서부터 농업 시장에 관해 전반적인 정보를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까지, 이들의 호기심과 궁금증을 해결하고 있습니다. 즉, 정보의 홍수 속에서 내가 원하는 정보,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으로 차별화를 꾀했습니다
구글의 프로그램 리더였던 찰스 배런(Charles Baron)은 촉망받는 직장인이었습니다. 그런 찰스 배런에게는 미국 네브래스카 주에서 옥수수와 밀 농장을 운영하는 처남이 있었습니다. 처남을 통해서 농장의 수확물을 거두기까지 예측하기 어려운 변수들이 많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종종 전해 들을 때가 많았습니다. 그는 처남의 농장 일을 도울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그 변수의 요소들이 무엇인지 고민하면서 농업에 점차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농장일을 돕던 중에, 배런은 날씨와 토양상태 등 농사를 하기 위해 알아야 하는 정보가 많이 있지만, 정작 농부들이 원하는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직접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열심히 한다고 해서 알짜배기 정보들을 빨리 습득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농업의 특성상 한 번의 농사가 진행되는 데에는 약 1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정보 부족 현상으로 같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도 농부들의 생산량은 균일하지 않았고, 기업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정보 부족으로 잘 대응하기가 어렵다는 문제점도 발견해 내기도 했습니다.
배런은 마침 세상 모든 정보의 중심, 바로 ‘구글’에서 일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으로서 농부들이 농업에 관련된 여러 정보와 지식에 체계적으로 접근할 수 없다는 현실을 안타깝게 여겼습니다. 이에 세계의 모든 정보를 종합하는 구글처럼 농업에 관한 데이터를 일괄적으로 투명하게 제공하는 플랫폼을 만든다면, 농부들이 농업을 보다 원활하게 이어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배런은 이 아이디어를 대형 벤처캐피털 투자사인 클라이너 퍼킨스(Kleiner Perkins)의 파트너였던 에멀 데슈판데에게 전했습니다. 그리고 배런은 전국의 모든 농부들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듣기 시작하였습니. 그리고 마침내 2014년, 배런은 구글을 퇴직하고 에멀과 함께 FBN을 시작합니다.
2014년 FBN의 초기 단계에서 배런은 농부들이 수천 년동안 서로에게 조언을 해주면서 농업을 발전시켜 왔다는 것에 착안해 플랫폼의 기본 형태를 만들었습니다. 네, 바로 ‘네트워킹’입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세계 최대의 소셜 네트워크 사이트 페이스북(facebook)에서는 친구를 맺게 되면 내 페이스북 친구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를 알 수 있고, 공유하는 정보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와 비슷한 원리로 FBN에서도 옆 농가에서 씨를 뿌리는 정보를 네트워킹 플랫폼을 통해서 공유하는 것입니다. 내 농장의 바로 옆 농가의 정보를 알 수 있다면 더 유익할 것이고, 유사한 농가의 환경에 대한 경험을 공유한다면 자신의 농사 상태를 개선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경험이나 지식의 정도가 비슷한 농부들끼리 정보가 공유된다면, 결과적으로 양질의 정보를 찾기 어려운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배런은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 관심사나 업종이 비슷한 농부들로 구성된 팀의 데이터를 농업전문가가 직접 분석, 관리할 수 있도록 하면서 정보를 공유하도록 설계하였습니다.
또한 FBN은 농부들이 토양에 적합한 씨앗을 찾기 힘들어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2015년 3월, ‘FBN 씨드파인더’(FBN seed finder)를 출시했습니다. 씨앗은 전문적으로 공급하는 회사가 따로 있었고 공급사 마다 각 씨앗의 종류도 천차만별이었으며, 토양의 성질에 따라 적합한 씨앗 정보도 전부 달랐습니다. 따라서 기업으로부터 씨앗에 대한 정보를 제공받는다고 하더라도, 그것마저도 제한적이었기에 농부들이 몇 안 되는 주변의 조언이나 직관에 의지해 씨앗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농부들에게 매우 도전적인 장벽이었습니다. 자신만의 농법을 터득하기 전까지는 낮은 생산성으로 농업에 임해야 했고, 생산량 또한 들쑥날쑥하는 일이 많았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FBN 씨드파인더는 플랫폼에 축적된 다른 농부들의 기록들과 비교해 나가며, 해당 농부와 유사한 토양을 찾아 어떤 씨앗이 가장 효과적인지 알려 주었습니다. 이제 농부들은 500달러(한화 약 61만원)의 서비스 이용료만 지불하면 자신의 토양에 적합한 씨앗 추천은 물론, 씨앗과 토양에 관한 정보 등 커스터마이즈(customized)된 알짜 콘텐츠를 마음 놓고 제공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한편 FBN의 직원들은 농가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어 농업 시장에도 상당한 신뢰를 줄 수 있었습니다. 또 FBN 직원들은 농부들이 기업을 상대로 농업 물품을 구입할 때,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농업 물품들의 가격은 일반적인 상품들의 소비자 희망 가격처럼 고정되어 있지 않아서, 농부들은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에 구매해야 할 때도 있었는데, 그러한 일들을 사전에 예방하고 있는 셈이지요. 또 FBN은 시장의 평균적인 가격과 유사한 제품들을 비교하고, 그 결과를 담은 데이터를 제공하고 있어 거래의 투명성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는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거래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2020년 FBN은 여전히 농부들의 네트워킹을 지속해 나가며, 발전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기존 서비스 만족도에 그치지 않고, 더 나은, 더 발전된, 더 개선된 기능을 추가해 나가고 있습니다. FBN 커뮤니티(Community)가 대표적입니다. 이로 하여금 농부들끼리 농사일지를 공유해 나가면서 더욱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도록, FBN 커뮤니티에 소셜 플랫폼이 갖춘 필수적인 기능들을 꾸준히 업데이트해 나가며, 농부들 간의 정보 교류와 소통이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또 해당 어플은 미국과 캐나다 전역의 농부들을 이어주고 만날 수 있게 해주어 정보 교류에 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소셜 플랫폼 부문 이외에도, FBN은 다양한 솔루션을 농부들에게 제공하고 있습니다. 초창기 플랫폼인 F2F 제네틱스 네트워크(Genetics Network) 이커머스(e-commerce) 서비스인 FBN 다이렉트(Direct)로 진일보하여 2019년에 새롭게 선보였습니다. 또 재무서비스를 제공하는 FBN 파이낸스(Finance)와 농작물 유통에 특화된 FBN 크롭 마케팅(Crop Marketing)까지, FBN는 농부들을 위한 진정성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며 경쟁력과 이익 창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있는 중입니다.
FBN의 플랫폼은 실로 많은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농부들의 정보 교류는 개인에 꼭 필요한 콘텐츠를 쉽게 찾아낼 수 있다는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전체적으로 농업 비용의 절감으로 이어졌고 농부들 또한 이익을 창출할 수 있었습니다. FBN은 설립된 지 1년 만에 890만달러(한화 약 109억원)을 투자 받았으며, 4백만 에이커(16,187km2)의 농지를 관리하는 네트워크로 성장하였습니다. 이러한 투자금을 바탕으로 FBN은 2015년에 좀 더 효과적으로 농지를 관리할 수 있는 ‘FBN 서비스’를 출시할 수 있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큰 호응을 끌게 되면서 구글 벤처스(Ventures)로부터도 투자를 받아 2차 펀딩 성공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펀딩 직후에는 사업 규모도 더욱 커지게 되어 17개의 주를 관리하게 되었고, 2016년에는 관리하는 농지가 무려 32개 주에 걸쳐 9백만 에이커(36,421km2)를 넘어서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해 2017년에는 더욱 주목할만한 성과를 이루어냈습니다. 대형 벤처 투자사로부터 1억 5천만 달러(한화 약 1,840억)의 투자 유치에 성공하였고, 창립 시점에서부터 4년이 지난 2018년 1월까지 총 투자 금액 1 억 9천만 달러(한화 약 2,330억원) 가 넘어간 성과를 거두게 된 셈입니다. 이후에 FBN은 바로 아마존과의 파트너십 체결에 성공하여 농업은 물론, 기술 산업에서도 성공적인 성과를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FBN이 처음 시작 된 계기는 농부들의 불편함 이었습니다. 농업에 관한 일반적인 정보들은 인터넷 세상에서 넘쳐나고 있었지만, 농사를 지어야 할 때 정작 필요한 정보들, 예를 들어 품질 좋고 저렴한 농기구의 구매, 자신의 토양에 잘 맞는 씨앗 종자들에 관한 정보들은 누구로부터 어디에서 추천 받을 수 있을지 어려운 상황이었지요. 배런은 이 상황을 두고 처음에는 구글에서의 경험을 십분 활용해 정보 조직화와 공유 네트워크의 수준에서 농부들의 불편함을 해소하는 시도로 FBN을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틈새에서 파생되는 전망과 수익을 기업가정신으로 새로운 비즈니스의 기회로 만들어 내고 시장의 상황에 따라 최적화해 혁신적 제품을 계속해서 출시하였습니다. 비록 배런이 처음부터 예측한 바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말이지요. FBN은 바로 이러한 점에서 다른 기업과 두드러지게 차별화되고 있습니다. 시장(market)과 상품(product)의 적합성(fit)을 고려하며 기존의 BM(Business Model)을 업그레이드 해나가는 일, 즉 ‘BM의 구조화된 코스 수정’(Ries, 2011)이라 정의할 수 있는 ‘피보팅(pivoting)’의 진화를 계속해 나갔던 것입니다.
피보팅은 스타트업의 비즈니스 모델 혁신과 기업가정신의 매우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더욱이 높은 불확실성과 희박한 자원 보유로 BM이 안정화된 기업보다 몇 곱절 도전적 과제를 요구 받는 스타트업의 기업가적 과정(entrepreneurship process)(Stinchcombe, 1965)에서는 시장에서의 성장과 자원 확보를 위한 정당성(legitimacy)를 견인하는 데 피보팅은 선택이 아닌, 필수이지요. 그것은 스타트업이 가진 원천적인 한계에 기인합니다. 경험과 사업 데이터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스타트업은 제품 출시 이전에는 소비자의 반응을 예측만 할 뿐, 또한 그 마저도 예측의 성공률을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시장에 깊이 뛰어들기(deep-dive) 이전에 만들어진 BM은 살아 움직이는 시장에 적응하다 보면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통상 많은 성공 창업가들 중에서 창업초기 BM으로 성공하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피보팅 하다가 진정한 BM을 만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창업기업가의 성공 자질 중 가장 중요한 역량은 변화하는 기술, 시장, 고객 환경에 능동적으로 변신하고 적응해가는 순발력과 변화 역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피보팅은 혁신과 스타트업, 기업가 정신에서는 빠질 수 없는 매우 중요한 주제입니다. 특유의 민첩성(agile)으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재빨리 구현하는 데는 상대적으로 스타트업이 유리하지만, 자원이 매우 한정적인 관계로 피보팅의 기회는 생각보다 많이 갖기 어렵습니다. 실무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혁신 연구나 기업가 연구에서는 피보팅은 창업자의 역할, BM의 지속가능성, 현금 흐름, 시장 상황, 금융 자본과 인적 자본, 신기술의 측면과 관련해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아직 피보팅의 근간을 이루는 비즈니스 모델, 비즈니스 모델 이노베이션(Business Model Innovation, BMI)에 대한 연구는 아직 일치된 개념 및 정의가 희박하다는 측면(i.e. Zott, Amit, Massa, 2011)에서 기업가, 스타트업 연구에서 더욱 활성화되어야 할 연구 토픽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아래 표는 피보팅의 10가지 타입(Ries, 2011)입니다. 피보팅은 복수의 타입으로 일어날 수 있으며, 기준에 따라서는 그 경계가 겹치어 나타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FBN의 경우, 어느 타입에 가까운 피보팅을 실현해 나가고 있을까요?
Where? 미국, 샌 카를로스
When? 2014 년
What? 농업 기업 간 거래 및 정보공유 플랫폼 구축 운영
Who? Charles Baron
Why? 농사에 필요한 실용적 데이터 부족 현상 해소 및 정보표준화를 통한 생산성 제고
How? 농장들 간의 정보 공유를 위한 플랫폼 제공과 데이터 분석을 통한 운영정보 제공
식량 개발에 AI 활용한다면?, the science times, 2018/04/15
포춘 테크 | 클라우드 농업, 서울경제, 2016/11/18
Farmers Business Network (FBN), fbn.com
Farmers Business Network, Crunchbase
Farmers Business Network Raises $110 Million To Help Squeezed Farmers Cut Costs, Increase Profits, Forbes, 2017/11/30
Farmers Business Network Raises $15M From Google Ventures. TechCrunch, 2015/05/19
Farmers Business Network a "game changer" in ag data revolution, NTV, 2018/12/14
FBN Kicks Off Fifth Annual Farmer2Farmer Conference, Business Wire, 2019/12/12
How This Startup Is Helping Farmers Do Better Business, Fortune, 2016/08/29
Now You Can Build Even Deeper Connections with FBN℠ Community, fbn.com, 2020/01/02
Ries, E. (2011). The lean startup: How today's entrepreneurs use continuous innovation to create radically successful businesses. Currency.
Stinchcombe, A. L. (1965). Social structure and organizations. Handbook of organizations, 7, 142-193.
Zott, C., Amit, R., & Massa, L. (2011). The business model: recent developments and future research. Journal of management, 37(4), 1019-10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