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초의 새로운 모습을 찾아서
토크쇼의 전설이라 불리는 미국 최고의 텔레비전 및 라디오 진행자 래리 킹(Larry King)은 어느 날 경찰국장 네 명을 만났습니다. “대마초(마리화나)를 피우는 일과 술 마시는 일이 모두 불법이고, 당신은 하나만 합법화할 수 있다고 가정해보죠. 그러면 무엇을 합법화 하시겠어요?”라는 그의 물음에 네 경찰국장은 모두 “대마초를 피우는 일” 이라고 답했습니다. 그들이 지금까지 경찰직을 수행하면서 대마초를 피우고 누군가를 죽인 사람은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지요. 그들이 수사했던 다양한 살인사건의 80퍼센트는 술과 관련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는 대마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눌 때, 사람들은 대마초로 인해 구설수에 오르던 유명인들부터 떠올립니다. 이렇게 지금은 마약으로만 생각되는 대마초이지만, 사실 대마는 기원전부터 중국이나 인도에서는 통증 조절의 목적으로 사용되어왔습니다. 우리나라는 물론 동양 곳곳에서 약 5천 년 동안 약재로 쓰일 정도로 대마는 인류가 이용해 온 가장 오래된 약용 식물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19세기 중반, 진통제의 개발로 인해 대마가 더 이상 치료용 약으로 쓸 필요가 없어지면서 지금과 같이 ‘대마초는 마약’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굳어지게 됩니다.
이와 같은 배경을 안고, 국내에서는 1976년 대마관리법이 제정되었고, 2000년부터는 마약류 관리법까지 제정하면서 대마의 유통이 엄격하게 제한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대마 줄기와 이를 활용한 극히 일부의 제품, 수의용 삼베 등 섬유 관련 농업 기업 외에서는 사용이 엄격하게 금지되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의료용 대마 합법화”를 외치는 목소리들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실제로 대마는 의료용으로 통증완화 뿐 아니라 알츠하이머 치매, 뇌전증(간질), 파킨슨병 등 뇌 인지 관련 질환, 암성 통증, 자폐증, 크론병 등에 효능이 있는 것으로 입증된 바 있습니다. 이렇게 대마초의 다양한 효능이 알려지면서 일부 국가에서는 대마초를 합법화하거나 규제를 완화해 나가는 추세입니다. 이를테면, 캐나다에서는 연방정부가 2018년 7월부터 오락용 마리화나의 사용을 합법화한다고 발표하면서, 대마초 관련 시장이 더 커지고 이에 대한 관심도 또한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미국 또한 2020년 4월을 기준으로 콜로라도, 워싱턴, 알래스카, 오리건, 네바다, 캘리포니아 6개주에서 의료용 대마초를 포함한 기호용 대마초까지 합법화하였으며, 의료용 대마초는 미국 내 과반수가 넘는 29개 주에서 허용된 상태입니다. 2020년 말에는 메사추세츠주와 뉴저지주에서도 기호용 대마초를 합법화할 예정이며, 대마초에 대한 미국내 합법화와 규제 완화는 점점 더 가속화 될 예정입니다.
캐나다는 이미 2001년부터 의료용 마리화나 사용을 합법화해온 나라입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 마리화나 재배를 전문으로 하는 많은 회사들이 생겨나고 시장이 형성되면서, 대마 재배 회사들은 성장을 거듭해왔지요. 덕분에 캐나다는 세계 마리화나 사업의 리더가 되었고, 그 중심에는 2013년에 설립된 캐노피그로스(Canopy Growth)라는 회사가 있습니다. 캐노피그로스는 2020년 회계연도 기준 3억 9천만 달러(한화 약 4,656억원)이상의 순수익을 거둔 캐나다 최대의 의료용 마리화나 제조 기업입니다.
캐노피스로스의 현 CEO 이자 창업자인 브루스 린튼(Bruce Linton)은 어린시절 농가에서 자랐습니다. 부모님은 농장을 운영하였고, 남동생과 함께 농장에서 돼지, 닭, 거위, 오리 등의 가축들과 뛰노는 것이 그의 일상이었지요. 그는 어릴 때부터 아침저녁으로 농장 일을 도왔고, 성인이 된 후 칼튼(Carleton)대학에 입학했습니다. 대학시절,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었던 그는 학생회장으로서 전교생을 이끌고, 학교 이사회에서도 2년 동안 활동하였습니다. 그러던 중에 현재 그의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된 매튜스(Matthews)를 만나게 됩니다. 매튜스는 100개가 넘는 회사를 설립하고 자금을 지원하며 수많은 일자리를 창출해낸 뛰어난 기술자이자 사업가였습니다. 매튜스는 항상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일단 하고 보는 성격의 린튼을 눈여겨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갓 대학을 졸업한 신참내기 사회인 린튼에게 자신의 회사에서 일하기를 생각해 보라며, 면접을 보라고 제안하였습니다. 그 길로 린튼은 통신 소프트웨어 산업에 뛰어들어 마텔로 테크놀로지(Martello Technologies)라는 회사의 CEO까지 맡게 됩니다.
어느 날, 린튼은 마리화나에 대한 기사를 우연히 읽게 되었습니다. 기사는 캐나다 경찰청장이 마리화나(대마) 관련 법을 집행해서는 안 된다고 발언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었습니다. 기사를 읽은 후 브루스는 마리화나 사업에 뛰어들기로 결심합니다. 그는 대마가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약재라면, 지금의 대마가 갖고 있는 부정적인 이미지는 걸림돌이 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재빨리 마음이 맞는 동료를 찾기 시작하였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브루스의 기대와는 달랐습니다. 처음에 마리화나 사업을 하자는 그의 말에 사람 들은 “너 제정신이니?”(Are you crazy)?”라는 대답만 돌아올 정도였지요. 하지만 그는 주변의 반대를 아랑곳하지 않고 확신과 함께 새로운 사업을 밀어붙였습니다. 마침내 그는 동료 몇 명을 설득하여 캐노피그로스(Canopy Growth)를 설립하였습니다. 동시에 허쉬 초콜릿 공장을 의료용 마리화나 제조 공장으로 개조해서 대마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현재 캐노피그로스는 50만 평방 피트(약 15만평)에 달하는 마리화나 재배 시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초대형 온실속에서 최첨단 자동화 시설과 직원들의 세심한 관리 하에 마리화나가 생산되고 있습니다. 또한 자신들의 새 브랜드인 트위드(Tweed), 스펙트럼 캐너비스(Spectrum Cannabis), 베드로칸(Bedrocan)을 만들고 있으며, 이중에서 트위드는 유명 래퍼 스눕독(Snoopdog)과 협업한 마리화나 브랜드로 지금의 캐노피그로스가 유니콘 기업으로 자리잡은 데 혁혁한 공을 세운 브랜드이기도 합니다.
캐노피그로스는 2018년 5월 NYSE(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최초의 마리화나 종목의 기업입니다. 한편 트위드 등 여러 브랜드를 필두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품질도 가장 뛰어난 글로벌 브랜드로 자리잡고자 대마 재배와 고객 관리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습니다. 트위드 브랜드의 트위드팜스(Tweed Farms)라는 마리화나 온실(캐나다 온타리오 위치)은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마리화나 재배 시설로, 이 온실에서는 자연광과 재활용된 빗물로 마리화나가 생산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역량을 바탕으로 트위드팜스 농장 생산량을 포함하여, 2019년 한 해 137,000kg(2018년 46,927kg)의 마리화나를 수확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캐노피그로스는 2017년 캐나다 정부가 오락용 마리화나의 합법화를 선언하면서, 소매점을 통한 판매 채널을 오픈해 일반 소비자들이 마리화나를 즐길 수 있도록 사업 다각화에 힘쓰고 있습니다. 현재 캐노피그로스는 2019년 12월 기준 아프리카 전역에 3,500만 평방 피트 규모 부지에서 마리화나 재배 및 유통을 위해 글로벌 유통망과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있으며, 캐노피그로스의 현금, 현금 등가물, 시장성 유가증권은 총 45억달러(한화 약 5조 3,753억)에 이르고 있습니다.
2017년 11월 세계보건기구(WHO)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Expert Committee on Drug Dependence’에서 의료용 대마에 함유된 4000여 종의 귀한 물질은 희귀 난치성 질환과 뇌전증의 완화 및 치료에 유용한 약재이며, 중독 위험이 없다고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캐나다를 비롯한 대마 합법화 국가들의 사례처럼 약국에서 의료용 대마를 처방하는 것이 가능한 시대가 온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2017년 6월부터 ‘의료용 대마 합법화 운동 본부’가 설립되어 의료용 대마 합법화는 희귀질환 환자들에게 생존의 문제인 동시에 모두를 위한 것임을 알리는 시민운동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대마 합법화를 목적으로 하는 한국 최초의 상설 시민단체로, 현행법이 아편, 모르핀, 코카인 등 중독성이 강한 마약류는 의류 목적의 사용을 허용하면서 대마는 예외로 하고 있다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에 정부는 2018년 11월, 마약류관리법을 일부 개정되면서 대마를 의료용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합법화하였습니다. 그 결과, 2019년 3월 7일부터 우리나라에서도 의료용으로 대마 사용이 허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대마를 의료목적으로 활용하기는 쉽지않은 현실입니다. 법은 개정되었으나 구체적인 정부시행령이 여전히 엄격하기 때문인데, 대마 성분 의약품은 정부 산하의 희귀필수의약품센터를 통해서만 구매가 가능하며, 이외의 경로를 통해 입수한 대마는 모두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의사들의 처방 거부와 지나치게 높은 가격으로 인해 환자들이 대마에 접근하기가 매우 어려운 실정에 놓여있습니다. 한정된 경로를 통해 급하게 들여온 대마 제품에 익숙하지 않은 의료진들이 충분한 국내 연구와 가이드 없이 대마를 사용해야하는 처지이지요. 설상가상으로 대마 제품은 의료보험도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도 소비자들에게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내에 대마를 활용한 사업이 전무한 것은 아닙니다. 미국에 본사를 둔 뉴프라이드는 현재 코스닥에 상장하며 한국에 진출하였고, 현지에서 생산된 다양한 브랜드와 제품들을 유통하고 있습니다. 또한 바이오빌은 자회사 ‘바이오빌USA’를 통해 국내 의료용 대마 사업을 개시하였으며, 오성첨단소재도 카이스트와 산학협력을 통해 대마 연구에 나섰습니다. 마지막으로 세미콘라이트는 미국 CMS센트럴과 의료용 대마 자판기 사업을 공동으로 진행하면서 국내 진출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2020년 7월 8일부로 경상북도가 산업용 헴프 규제자유특구가 되면서 그중 안동시가 대마초 재배가 가능한 지역으로 선정되었습니다. 헴프란(HEMP), 마리화나와는 다른 저마약성 품종으로, 의료용 제품과 일반 식품의 원재료로 활발히 이용되는 대마의 일종입니다. 이번 안동시 헴프 특구 선정을 통해 국내에서는 70여년 만에 대마와 관련된 바이오산업의 지평을 열수 있다는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2019년 기준 우리나라의 치매 환자는 70만 5천 명 정도이며, 뇌전증 환자는 약 40만 명에 이릅니다. 또한 치매 환자의 경우 연간 2조 1천억 원의 치료 비용이 들며 그 의료 시장 또한 점점 커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더 나아가 해외에서는 일부 서구권 지역을 중심으로 대마 합법화 국가가 증가하고 있으며, 음지에서만 생산되던 기존의 대마 생산량이 양지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대마초에 관한 편견 속에서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대마를 그저 없애야 할 ‘악’으로만 취급하는 과거의 시각에서 벗어나, 연구하고 적극 활용하는 ‘온고지신’의 자세로 연구와 사업화를 꾀할 때입니다.
세계적인 흐름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빗장을 푸는 규제 위주의 피동적 행정은 산업의 성장을 저해할 뿐입니다. 의료용 대마의 생산, 가공, 제품화를 통한 산업발전을 위해서는 전통용 삼베 생산만을 국한하는 소극적 정책은 재고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의료용 대마의 세계적 선도 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해 국내 창업자들뿐만 아니라 정부 관계자들의 의식전환과 벤처 마인드가 필요한 때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의료용 대마와 오락용 대마를 생산, 가공하여 판매한다는 일은 아직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캐노피그로스 등 해외 사례와 같이, 국내 시장에서의 소비자 니즈가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적어도 질병 치료를 위한 의료용 대마를 보다 양성화하고 제도화해야 하는 시점은 언젠가 오지 않을까요?
기업의 성장과 발전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새로운 제품을 도입하는 능력에 달려 있습니다(Dougherty & Hardy, 1996).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기술적 투입물을 새로운 구성에 조화시켜야 하며, 이러한 새로운 제품들이 시장의 니즈를 효과적으로 충족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Fleming, 2002). 기업가 정신을 기반으로 한 스타트업의 성공은 그러한 발명과 혁신, 그리고 상품과 시장 적합성에 따른 마케팅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Fleming(2002) 등 다수의 연구자들에 따르면, 많은 기업들이 위대한 기술력과 상품 잠재력을 갖고 있더라도 실패하는 이유는, 바로 상품과 시장 유형의 적합성을 바탕으로 한 상용화에는 한계를 보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 어느 때보다 역동적인 시장 환경의 오늘날, 기업은 고객의 니즈에 맞는 제품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시장에 맞는 유형으로 설계해 나갈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시장 적합성을 평가할 수 있는 여러 프레임워크의 개발과 활용 역시, 산업계와 학계가 검토해야 보아야 할 중요한 지점이 될 것입니다. 비교적 최근에 개발된 Dennehy et al.,(2016)의 VFUD(Viability, Feasibility, Usability & Desirability) 프레임워크는 좋은 예시가 되겠습니다. 비록 VFUD 프레임워크는 IT 산업에 기초하여 구성되었지만, 소비재 및 기타 유형의 제품들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IT 제품과 같이 R&D를 기반으로 한 혁신과 상용화 과정 역시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점에서, VFUD 프레임워크는 여러모로 유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직은 우리나라에서 캐노피그로스와 같은 기업을 기대하기가 당장은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시장 잠재력이 확인되고 있으면서도, 제도와 문화 등의 요인이 성숙해 지면서 제품과 시장 적합성의 임계점(critical mass)에 당도하게 된다면, 해당 제품에 대한 선견지명은 곧바로 상용화로 이어지게 될 것입니다. 한국의 캐노피그로스는 시간 문제가 아닐까요?
Where 캐나다, 온타리오
When 2013년
What 의료용 대마
Who Bruce Linton
Why 의료용 대마의 효과를 입증하고 일반인들도 이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해
How 의료용 대마 상품화와 소비자 접근성 높은 브랜드 마케팅
국내서 의료용 대마 재배 길 열렸다, 노컷뉴스, 2020/07/06
국내서도 의료·산업용 대마 재배 가능해진다는데 …, 중앙일보, 2020/07/06
대마의 반란, 보그코리아, 2020/06/25
대마합법화로 불어오는 그린러쉬…시총 10억불 넘는 북미상장사 12곳 달해, 메디게이트 뉴스, 2019/03/18
안동시 의료용 대마 합법화 추진…"한방바이오 등 산업 발전", 연합뉴스, 2017/10/04
커지는 의료용 대마 합법화 목소리, 매일경제, 2018/01/17
한발 앞으로 다가온 ‘의료용 대마’ 시장, 더벨코리아, 2019/01/10
‘헴프특구' 지정...경북도, 대마산업 역사 새로 쓴다, 뉴시스, 2020/07/07
Bruce Linton_ 'I've Secured More Investment Capital Than Greece', BusinessCann, 2020/03/17
Canopy Growth applies to become first pot producer listed on the NYSE, Financial Post, 2018/05/14
How Canopy Growth became the Jolly Green Giant of cannabis, Fast Company, 2019/01/24
Dennehy, D., Kasraian, L., O’Raghallaigh, P., & Conboy, K. (2016). Product market fit frameworks for lean product development.
Dougherty, D., & Hardy, C. (1996). Sustained product innovation in large, mature organizations: Overcoming innovation-to-organization problems. Academy of management journal, 39(5), 1120-1153.
Fleming L. 2002. Finding the organizational sources of technological breakthroughs: the story of Hewlett- Packard’s thermal ink-jet. Industrial and Corporate Change 11: 1059–10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