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하다. 정말 황당해.
이 생각만 내 뇌리에 스쳐갔다.
내일 회사에 가고 싶지 않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다이어리에 쓰여있는 미래를 그대로 따라가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김성...이라는 그 사람..
그 사람의 확신을 무너뜨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이어리를 가방에 넣어두고 거실로 나와 남편 재훈에게
말을 걸었다.
“내일 오랜만에 여행이라도 같이 가지 않을래?”
“회사는?”
정말 한결같이 무심한 남편의 물음에 단어 하나하나에 감정을 눌러 담으며 나는 대답했다.
“연차 써야지.. 당신도! 가능하면 연차 쓰고 같이 가줬으면 좋겠어. 같이 여행 안 간 지 벌써 2년도 넘었고.. ”
“그래. 그러자. 급한감이 없진 않지만. 장소는 내가 정해도 될까? “
예상하지 못한 남편의 대답에 좋으면서도 왠지 모를 의심이 들었지만 얼굴에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같이 가줄 거라고는 생각 못했는데, 고마워. 내일은 정말 회사 가기 싫었는데 잘됐다. 짐은 내가 다 준비할게“
“그래”
다시 돌아온 남편의 짧은 대답과
다시 티비 화면만 바라보는 그의 모습에 내 옅은 미소는 티비 화면 뒤로 사라졌다.
다시 옷방으로 들어왔다.
바닥에 널 부러져 있는 이불
그 위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남편과 각방을 쓴 지도 2년이 지났다.
어쩌다 우리 사이가 이렇게 됐을까..
8년 전 신촌, 그곳에서 남편을 처음 만났다.
친구를 따라 다문화 봉사활동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고, 그날은 봉사자들 간에 소통 모임을 진행하는 날이었다.
어딘가 신비롭고 싱그러운 그의 모습에 자꾸 눈길이 가는 나에게 그는 무표정으로 화답했다.
그날 저녁 뒤풀이자리에서 우리는 우연히 옆자리 앉게 되었고, 잠시 나가서 같이 담배라도 태우자는 그의 말에 단둘이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가게 옆 골목으로 나와 그는 불을 붙이고,
나에게 담배하나를 권했다.
평소 담배를 피우지 않는 나였지만 나도 모르게 그 담배를 받아 입에 물었다.
“그냥 입에 물고만 있을게요.” 하고 내가 말하자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그가 쳐다보더니 얘기했다.
“제가 비행기표 하나가 생겼는데 내일 같이 갈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