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균, 쇠'를 읽은 지리학 변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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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쓴 글에서 언급했지만, 나는 대학교 4년간 '국제개발' 관련 동아리에서 활동했다. 국제개발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항상 가지고 있는 의문이 있다.
선진국은 왜 계속 잘 살고, 개발도상국은 항상 가난에 시달릴까?
최근에 이 의문에 대한 적합한 답을 책에서 찾았다. 세상에 완벽한 답은 없지만, 강한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책은 '총, 균 쇠'였다. 구매한지 꽤 됐지만 800쪽이 넘는 분량이라 읽다가 중간에 포기한 적이 있었는데, 최근에 나눠서 읽으며 완독했다. 결론은 한 문장으로 정리된다.
지리때문이다.
무슨 의미일까? 지리적 차이는 그 지역의 환경요소를 바꾼다. 예를 들어 북반구와 남반구는 계절이 반대다. 책은 인류의 기원부터 지구 상 모든 대륙에 인류가 흔적을 남기는 과정을 따라가는데, 현재의 불균형은 이미 이때부터 시작됐다고 설명한다. 특정 인종이 더 우월하고, 덜 우월하다는 인종차별적 사상은 이 책으로 인해 완전히 부정된다.
위도와 경도가 모든걸 갈라놓았다.
위도와 경도라는 말은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위도 38도 선을 기준으로 남한과 북한을 나누고 있다. 즉, 위도는 동서로 이어지는 선이고 경도는 남북으로 이어지는 선이다. 위도가 같으면 기후가 비슷하다는 걸 의미한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 쌀이 많이 생산되는 지역과 비슷한 위도에 있는 다른 나라에서도 쌀이 생산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반대로 경도는 더욱 이해하기 쉽다. 북반구 국가들의 크리스마스는 겨울이지만, 호주는 여름에 크리스마스를 맞이한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한창 쌀을 재배할 때 남반구 국가는 추운 겨울이라 쌀재배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다.
인류가 모든 대륙에 정착했을 때 이런 지리환경이 결정적인 차이를 만들었다. 중동 지역은 '비옥한 초승달 지대'라고 불린다. 우리가 현재 먹고 있는 많은 농산물과 가축은 중동에 기원을 두고 있다. 이들은 중동을 중심으로 동서 방향 유라시아 전역에 퍼졌다. 물론 남북으로도 전해졌을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말했듯이 다른 경도는 다른 기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중동에서 가져온 종자나 가축이 살아남기에는 어려움이 컸다. 그래서 남북으로의 전파는 동서로의 전파보다 시간이 더 걸렸다.
역사를 뒤져보면 과거 세계를 점령했던 제국 국가들이 중동지역과 유럽에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중동과 동서로 가까운 지역이 문명이 빨리 발달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다. 수렵채집 생활에서 정착 농경시대가 오면서 부양할 수 있는 인구가 증가하고 그 안에서 전문분야(장군, 점술가, 대장장이 등)가 생겼다.
'병원균'은 얻어걸렸다.
인간이 가축화에 성공한 동물은 소, 말, 양, 돼지, 염소 5종뿐이다. 농경 사회가 되면서 잉여생산물이 생겼고, 이를 통해 인류는 가축화에 성공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의도치 않게 얻은 것(?)이 있었으니, 바로 '병원균'이었다. 야생동물을 집단 가축화하면서 인간은 한 번도 접하지 않은 병원균에 노출됐다.
사실 그 병원균들도 인간을 숙주로 삼는 것은 처음이었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병원균도 생존과 번식이 가장 우선순위라는 것이다. 따라서 가축 몸에 맞춰 살아오다가 인간이라는 새로운 숙주가 등장했고, 그 몸에 맞춘 진화는 필수였다. 이렇게 서로 원치 않는 만남을 계기로 인간은 병원균에 대한 항체를 생성해야 했고, 병원균은 야생동물과 다른 숙주인 인간의 몸에 맞춰 진화해야 했다. 두 개체 모두 '생존'과 '번식'을 위한 의도하지 않은 선택이었다.
위처럼 중동지역 또는 그와 가까운 지역에서 생활한 인류는 '운'이 좋았다. 먼저 수많은 잉여생산물을 얻을 수 있었고, 가축화와 동시에 병원균까지 친구로 만들었다. 그리고 새로운 대륙으로 진출했다. 남아메리카는 잉카, 아즈텍, 마야 문명으로 유명한 지역이다. 그러나 스페인에서 온 600명 ~ 700명 남짓의 군대에 의해 사라졌다. 이때 활약한 것은 총포가 아니었다. 사실 인해전술로 밀어붙였으면 스페인은 남미를 지배하지 못했을 것이다. 총포보다 더 강력한 무기는 병원균이었다. 남미에는 당시에 가축화된 동물이 없었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첫 만남에 대비할 시간적 여유는 존재하지 않았다. 콜럼버스가 북미대륙에 처음 도착했을 당시에도 활약한 것은 병원균이었다.
'총, 균, 쇠'를 읽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아,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차이는 지리빨이구나'였다. 그리고 일본이 한반도를 통해 선진 문물을 받은 이유, 그 일본에 우리나라가 식민지배를 당한 이유가 정리됐다. 만약 일본 시민들이 모두 '총, 균, 쇠'를 읽으면 현재 일본 정부의 역사 왜곡은 더는 불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그리고 과거 독일의 '우생학', 일본의 '내선일체'나 '황국신민화'가 얼마나 끔찍하고 잔인한 정책이었는지 다시금 느꼈다.
우생학은 종의 개량을 목적으로 인간의 선발육종을 찬성하는 생각이다. 인류를 유전학적으로 개량할 것을 목적으로 하여 여러 가지 조건과 인자 등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1883년 영국의 프랜시스 골턴이 처음으로 창시했는데, 가를 꾀하고 열악한 유전소질을 가진 인구의 증가를 방지하는 것이 목적이다.
황국신민화는 일제 강점기에, 우리 국민을 일본 천황의 충실한 백성으로 만들려는 정책. 일본이 우리 민족의 말살을 위하여 내세운 구호이다.
이렇게 '총, 균, 쇠'의 내용은 지난 역사뿐 아니라 지금도 국내 정치, 국가 간 외교 그리고 기업 생태계 모든 분야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설명하고 이해하는데 많은 참고사항을 주는 책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