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정치 얘기만 하면 싸울까
어릴 때부터 정치 얘기가 재밌었다. 집에 오면 매일 틀려있는 19번, 티비조선 뉴스가 큰 역할을 했다. 역시 자극적이어야 관심이 가는 건지, 결국 나는 그 자극적인 정치라는 것에 초등학생 때부터 빠지게 됐다.
잠시 오해를 살까 봐 하는 얘기지만, 부모님 두 분 모두 충청도 분이시고 19번이 틀려있던 이유도 그때쯤 아버지가 잠시 티비조선을 보셨기 때문이지, 우리 집안 자체는 애초에 정치성향에 줏대가 있는 편은 아니다.
중학생이 되고 주변에서 정치에 관심이 있는 친구도 없고, 어쩌다 정치 비슷한 얘기가 나올 때마다 친구들은 "엄마가 어디 가서 정치 얘기하는 거 아니랬어"라며 반사적으로 반응했다. 집에 가서 "왜 하면 안 돼?"라고 물은 내 질문에 엄마는 "거의 대부분 싸우게 되니까 그래"라고 답해줬던 기억이 난다.
왜 정치 얘기를 하면 싸우게 될까? 그게 어린 시절 나에겐 꽤나 큰 의문이었다. 그러다 2016년, 평생 기억에 지워지지 않을 엄청난 사건이 터졌다. 많은 사람들이 광화문 광장에 갔고, 평소 정치에 아예 관심이 없던 친구들까지 광화문에서 사진 찍은 걸 페이스북에 올리기 시작했다. 정말 모든 사람이 같이 분노했고, 같은 걸 원했다.
그때 내가 든 생각은, '정치 얘기해도 안 싸우네?'였다. 소수의 사람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비슷한 입장이었고 식당 모든 테이블에서 그 얘기를 하면서도 아무도 싸우지 않았다. 결국 '싸우게 된다'는 문제는 정치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뭔가 다른 원인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흔히 말하는 좌파인지, 혹은 우파인지도 모른 채로 고등학교 내내 2개의 정치 관련 동아리에서 활동했다. 우리 학교 기숙사에서는 아침에 수많은 일간지 중 조선일보를 들고 가는 학생이 거의 없었고, 그 덕분인지 정치 동아리에선 의견 충돌도 잘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역시 정치성향이 같아야 토론이라도 되는가 보다'라고 생각하더 있던 중, '정치와 법' 수업을 듣게 됐다. 수업 중 선생님께선 투표는 반드시 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며 후보자들의 공약을 잘 살펴보고,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제시하는 사람에게 투표하라고 강조하셨다. 그때 딱 깨달았다. 정치는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는 행위일 뿐'이라고.
사실 너무나 당연한 얘기다.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후보자를 뽑는 행위, 그것이 민주정치의 꽃 선거 아닌가. 근데 그렇게 뽑은 국회의원이나 지자체장, 크게는 대통령이 당연하게도 우리가 회피하는 '정치'를 하는 주체들이다. 결국 내가 좌파냐 우파냐에 관련된 정체성은 불변의 진리도 아니고, 종교와 같이 인생의 동반자이기도 쉽지 않다.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떤 정당 혹은 이념이 나에게 이익이 되는가. 그것만이 내가 주장할만한, 따를만한 정치적 입장인 셈이다. 사실 이보다 더 가변적인 만큼 손쉬운 결정도 없다.
학교에서 냉전 시기를 배우면서 항상 가졌던 의문이 있다. '이념 차이로 왜 저렇게 사람을 죽이고 전쟁까지 할까?'. 사람을 죽일 정도로 이념이 중요한 것인가요, 라는 내 질문에 당시 역사 선생님은 "먹고사는 문제가 달려 있으면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중학생이던 내 눈높이에 맞는 답변을 주셨다. 너무 간결하지만 당시 나도 한 번에 이해된 간단한 이유였다. 물론 다른 복잡한 상황적 이유도 있었겠지만, 결국 먹고사는 문제, 그 최후의 이익 앞에서는 전쟁까지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적 입장'이란 자신의 경제적, 사회적 상황 등에 따라 자신의 본질적 욕망에 근거한다. 다르게 말하면 결국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합한 입장을 고르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 얘기를 하면 싸우는' 거다. 모두의 욕망이 항상 공통될 수 없다는 건 너무 당연하고, 욕망을 내놓는다는 건 자신의 근본과도 같은 걸 꺼내 보이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이유로 정치 얘기는 여유 있는 상황에서나 가능한 건전한 의견교환보다는 조급한 싸움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정치를 '자신의 욕망에 온전히 따르는 추악해질 수밖에 없는 판'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욕망에 솔직해야 한다는 근본적인 원리를 놓치는 순간 남을 '틀리다'라고 규정하는 오류를 범한다. 본인의 정치성향은 본인의 현재 욕망을 반영한 결과라는 걸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것을 '숭고한 이유' 또는 '사회적 선' 등으로 일반화시키는 것도 문제다. 그건 못된 선동에 불과할 뿐이다. 욕망에 솔직한 것만이 정치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옳은'정치 성향이란 없다. 불편함은 '틀려서'가 아니라 '나와 이해관계가 다르다'는 그 간단한, 그리고 매우 불가피한 원인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