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이 Jan 31. 2021

모순

약국노동자의 모순

하루에 스무명 남짓한 사람들에게 다이어트 약을 건넨다. 그것이 약국에서 일하는 나의 주된 업무이다.


"다이어트 약 오래 드시면 약에 의존할 수 있어요. 약 드시면서 운동하는 거 잊지 마세요."


"그거 알면 약 안먹죠. 운동을 못하니까 약먹고 빼려구요."


다이어트 약을 먹는 것은 환자 본인의 선택이겠지만 약을 건네는 나는 매번 마음이 복잡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난 이 약을 주고 싶지 않다. 비만을 치료의 수준으로 여기는 기준이 있다. BMI 수치가 30이상이거나, 27이상이면서 혈압, 당뇨, 고지혈증 등의 질병을 갖고 있는지. 치료의 수준에 해당하는 사람은 약으로 조절이 필요한 사람이지만 그 외에 비만의 영역이 아님에도 본인의 선택에 의해 약을 먹는 사람들은 약이 가져오는 부작용을 간과하는 것 같다.


비만치료제의 핵심은 식욕억제제다. 식욕을 억제시키는 약은 향정신성 의약품에 속해있는데, 이는 오래 복용 시 중독될 우려가 있는 의약품이다. 그래서 첫 복용은 4주 이내로 장기 복용시 3달 이내로 권장하고 있는 약이다. 하지만 대체로 잘 지켜지지 않는다. 식욕억제제는 중추신경을 계속 깨우기 때문에 불면, 떨림 등의 부작용이 나타난다. 실제로 이 약을 먹고 숨을 못 쉴 정도로 힘들어한 환자도 있었다. 불면과 떨림 같은 부작용 떄문에 이를 진정시키는 진정제, 수면제인 또 다른 향정신성 의약품을 복용하기도 한다. 약이 약을 부르는 상황이다. 그렇게라도 다이어트를 할 수 만 있다면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약으로 뺀 살은 약 먹는걸 중단하면 다시 돌아온다. 결국 약 먹는 걸 멈출 수 없게 된다.


다이어트 약을 건네면서 그들에게 부작용에 대해 설명한다. 하지만 그것이 본인에게 일어날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환자는 드물다. 확률은 항상 나를 피해간다고 믿으니까. 부작용을 이야기하는 게 괜한 공포를 조장해 약을 먹는걸 방해하지 않을까 고민한 적이 있다. 우리는 언제나 확률의 대상이 될수 있다. 이 상황이 부작용인지 알고 모르고의 차이는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하느냐를 결정하는 중요한 문제이다. 환자에게 약물의 부작용을 인지시키는 것은 나의 중요한 역할이다.


다이어트 약을 받아가는 사람의 대부분은 여성이였다. 여성에게 적용되는 적절한 몸무게의 기준은 왜 이렇게 타이트한지. 보고있으면 억울하다. 새다리를 가진 환자에게 다이어트 약을 건넬 때, 혼자 탄식을 하지만 그의 사생활을 물을 수 없는 것이다. 비만은 게으름, 자기 관리 부족의 결과라고, 사회는 자꾸 말한다. 타인의 몸을 하나의 잣대로 규정하는 사회. 그 잣대에 자유롭고 싶어 약을 먹지만 이 방법은 진짜 자유가 아님을 안다.


다이어트 약은 비급여 약이여서 비싸다. 그러니 마진도 많이 남을 수 밖에. 병원과 약국의 돈벌이 수단이 되기 딱 좋은 타겟이다.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 진료가 잠시 허락된 상황이라면 더욱 더. 전화만으로 진료를 볼 수 있단다. 택배로 약을 보낸단다. 정말 편리하겠지만 약이 전달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다면 그 책임은 누가 지는 것일까. 비대면은 정말 위중하고 필요한 상황에 대해서 선택적으로 적용되야 하지 않을까. 아직은 말이다. 이 상황이 보편화되면 가장 이익을 보는 건 의원이고, 약국일테다.


나는 환자들이 지불한 비용으로 운영되는 약국에서 일하는 약사이고 그 수입의 일부를 월급으로 받는 노동자다. 아픈 사람에게 약을 주는 것은 내 일이지만 아픈사람이 많을 수록 돈을 벌 수 있다는 것도 맞는 말이여서 가끔 씁쓸해질 때가 있다.







작가의 이전글 동네약국 생활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