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야나기 주전자
갑자기 궁금해졌다.
어느 식당에서 이 물컵은 과연 깨끗할까 생각하다가 물통으로 관심이 옮아갔고 학교에서 사용하던 누런 양은 주전자를 떠올리게 되었다. 그러다 이것은 의식의 흐름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고 제임스 조이스를 기억해냈다. 제임스 조이스의 대표 소설 율리시즈를 생각하고 있자니 소설 세 권에 해설서까지 한 권 붙은 이 책을 끝내 다 읽지 못하고 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자연스레 뒤죽박죽 한 우리 집의 책장을 연상하다 보니 정신이 산만해져 다시 주전자로 생각을 옮겨왔다.
의식의 흐름은 심리학과 문학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취급되고 뭔가 그럴듯하게 들리는 경향이 있지만 학창 시절 내내 우리가 늘 하던 공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시공간을 초월한 자유로운 사고야말로 우리들의 특기였다. 의식의 흐름이 과도해 무의식의 경지에까지 이를 정도였다.
정작 궁금했던 것은 주전자였다. 초중고 십이 년을 다니는 동안 주전자를 씻는 장면을 목격한 적이 없다는 데 생각이 미쳤기 때문이다. 주번은 물을 떠 오고 컵을 헹구는 시늉은 했지만 주전자를 씻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누구도 주전자를 책임지지 않았고 주전자는 관리의 사각지대에서 물때를 켜켜이 쌓아갔다.
요즘도 학교에 주전자가 있는지 궁금했는데 중학교에 다니는 아이 말로는 주전자 대신 복도에 음수대가 있다고 한다. 물 맛이 이상해 가지고 간 물이 모자라도 음수대의 물은 마시지 않는다고 했다. 음수대에서 나오는 물은 아리수 즉, 수돗물인데 집에서도 먹지 않는 수돗물을 학교에서는 마실까 싶다.
주전자의 용도에도 흐름이라는 것이 있다.
주전자는 원래 술을 데우거나 담아 잔에 따르는 용도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름에 술 주자가 쓰이는 이유다. 그러다 세월이 지나고 차를 마시는 문화가 생겨나면서 차를 찻잔에 따르는 용도가 추가되었고 ‘차 주전자’ 혹은 ‘차관’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다음의 흐름은 물을 받아두거나 끓이는 용도였다. 우리가 익히 기억하는 커다란 양은 주전자는 술이나 차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도구였다. 보리차도 차라고 우기면 할 말이 없겠지만 그 큰 주전자를 두 손으로 들고 작은 찻잔이나 술잔에 조준하는 모습은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유행이 돌고 돌아 촌스럽다고 생각되었던 스타일이 최신 패션 아이템으로 각광받듯이 주전자의 쓰임새도 돌고 돌아 차 주전자라는 이름에 걸맞은 용도를 회복하게 된 것이 최근의 트렌드일 것이다. 모양에 크게 신경 쓰지 않던 주전자의 생김새가 중요해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 몸에서 코나 귀만 따로 떼놓고 보면 그 모양이 괴상하면서도 우스꽝스럽다. 주전자도 이와 닮은 면이 있다. 다른 주방용품에 비해 굴곡이 많고 구조가 복잡한 탓일 것이다. 이러한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삼각형이나 반원 등 파격적인 모양의 주전자들이 등장했고 이것들은 모던이라는 이름을 달고 시장으로 진출했다. 괴상하지 않은 주전자와 모던하지 않은 주전자를 찾다가 발견한 것이 소리야나기의 주전자였다.
상품을 구입할 때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애초에 차 주전자를 염두에 둔 디자인이 아니었을까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몇 번 일본을 여행하는 동안 주철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주전자들을 숱하게 볼 수 있었다. 우리의 전통 주전자가 대부분 세라믹 재질이라면 그들의 주전자는 주철이 대세다. 쇠와 쇠. 주전자와 주전자. 그 전통을 이으면서도 서로 경쟁해야 하는 제품을 만들어야 했을 디자이너의 고민이 느껴지는 듯도 하다. 그 고민 덕이었는지 이 주전자는 다기와 함께 늘여놓아도 그다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 정도라면 차관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괜찮지 않을까. 차관 소리야나기. 입에 딱 붙는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