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상사 링 수세미
식품 속 이물질 혼입 사고는 숱하게 목격하고 들어왔다. 머리카락이 나온다든가 하는 사소한 사고는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었고 심각한 혼입 사고는 뉴스를 통해서나 접하게 되었다. 음식에서 돌멩이나 금속 볼트 같은 것들이 발견되는 것만 해도 충격적이었는데 치아의 일부와 잘린 손가락 등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음식 속에서 출몰하면서 이물질도 점점 진화하는 느낌이다. 이렇다 보니 곤충이나 개구리 정도는 이제 약과라고 생각이 될 정도다. 그러나 이야기를 듣는 것과 직접 보는 것은 충격의 강도가 다르기는 하다.
현역으로 복무 중이던 어느 날 취사장에서 작은 소동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 김장 배추가 떨어지는 시기가 되면 부대에서는 양배추 김치를 반찬으로 내는데 이 양배추 김치에서 작은 개구리가 튀어나왔다. 군인들은 개구리도 거뜬히 씹어먹을 것 같지만 그들은 겨우 이십 대 초반의 청년들일뿐이었다. 사고의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은 이물질 혼입 사고에 대해 항의조차 하지 못했고 어떤 이슈도 되지 않은 채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이슈가 되지 않았다고 해서 아예 없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라서 병사들은 한동안 양배추 김치를 멀리하는 후유증에 시달리게 되었다.
쇠수세미도 음식물에서 흔히 발견되는 이물질 중 하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집에서도 쇠수세미를 사용하다 보면 조각들이 떨어져 나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 조각이 음식물에 들어가는 것은 그것과 별개의 문제일 것이다. 타거나 심하게 눌어붙은 냄비를 닦는데 이만한 것이 없어 종종 사용을 하곤 했지만 쇠수세미는 단점이 많은 물건이었다. 쇠수세미의 조각이 떨어져 나가다 못해 아예 여러 조각으로 분리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수세미 안에 음식물이 끼는 것은 더 큰 문제였다. 쇠수세미의 내부가 미로라도 되는 듯 안으로 한번 침투한 음식물 찌꺼기를 빼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한 번 사용하고 나서 쇠수세미를 버릴 수도 없고 그대로 두자니 찜찜했다. 꺼끌꺼끌한 초록 수세미도 사용해 봤지만 쇠수세미만큼 강력한 효과를 볼 수는 없었다. 결국 심각한 오염은 쇠수세미에 의존해야 했는데 쇠수세미의 상태도 덩달아 심각해지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에 직면하게 되었다.
쇠수세미가 녹이 슬지 않는 것을 보면 스테인리스로 만들어졌을 것이라 짐작되며 실제 상품 정보에서도 스테인리스 재질인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스테인리스 강판을 통째로 재단해 쓰지 않고 철사보다 얇게 가공해 뭉쳐놓은 것일 테다. 스테인리스의 가장 큰 장점은 반영구적인 사용일 것인데 몇 번 쓰다 버려지는 쇠수세미는 이러한 소재의 장점마저 살릴 수가 없다.
이런 모든 단점들이 스테인리스를 너무 잘게 가공해서 일어나는 것이라면 이렇게 가는 형태가 아니라 좀 더 굵은 모양으로 만들 수는 없는 것일까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다 이미 그런 제품이 있을 것 같다는데 생각이 미쳤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런 제품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사용 후기를 통해 링 수세미를 칭찬하고 있었다. 쇠수세미처럼 효과가 강력하다는 후기들도 많았는데 실제 사용을 해 본 결과 쇠수세미에 비해 오물을 제거하는 강도는 조금 떨어진다.
하지만 다시 쇠수세미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 탄 냄비나 프라이팬을 닦을 때 조금 더 힘을 줘 오랜 시간 설거지를 하면 그만이며 그것의 보상으로 얻게 되는 장점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스테인리스 제품 중에서 링 수세미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는 품목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물건이다. 소모품을 영구적으로 사용 가능한 물건으로 바꾼다는 발상의 전환은 칭찬받아 마땅할 것이다.
소비에 의해 쓰레기가 발생하고 그 쓰레기가 환경에 해를 끼치는 이 악의 고리를 이제까지는 소재의 문제라 생각했다. 그런데 쇠수세미의 사례를 통해 그 생각을 조금 바꾸게 되었다. 결국은 소재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가 문제라는 것으로. 알루미늄의 예를 들어보자면 알츠하이머를 유발하는 성분 때문에 음식물을 담는 용도로는 적합하지가 않지만 알루미늄 자체는 해로운 소재가 아니다. 그런데 이 소재를 얇게 가공하면서 알루미늄 포일과 알루미늄 도시락이라는 일회용품이 탄생하고 결국 환경에 해를 끼치는 쓰레기로 전락하게 된다.
딜레마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재앙은 플라스틱의 공업적 생산에 성공한 베이클란트의 탓일까. 그것을 이용해 일회용품을 만드는 사람들의 잘못일까. 아니면 그것을 소비하는 우리 모두의 책임인가. 쉽지 않은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