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빵 Dec 04. 2022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다

에크미 호루라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정식 학부모가 된 지 구 년째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당시만 해도 아기 티를 벗지 못하던 아이는 조금씩 조금씩 자라 어느 순간 엄마 아빠의 키를 웃돌게 되었고 이제 고등학교 배정을 앞둔 나이가 되었다.


아이가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등원하던 시절에는 스스로를 학부모라고 생각하기보다는 공동육아협동조합의 조합원으로 여겼다. 부모들이 조합원이 되어 어린이집을 운영했기에 어린이집의 재정을 책임지는 것은 당연하게도 조합원이었다. 시설의 관리와 청소도 조합원들의 몫이었고 교사의 연차 휴가 때 자리를 대신하는 것도 조합원이었다. 교육 소비자와 교육서비스 제공자의 역할을 함께 해야 했던 쉽지 않은 시절이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으로 학부모로서의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진짜 학부모의 역할은 어떤 것일까 조금 긴장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린이집 시절의 분주했던 시간에 비하면 할 일이 거의 없었다. 등교와 하교를 시키고 숙제를 조금씩 봐주는 것 말고는 아이의 학교 생활에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준비물도 거의 없었다. 리코더나 단소 같은 악기들도 학교에서 지급을 했고 줄넘기를 빼고는 돈을 들여 준비해야 할 것들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크게 기억에 남는 준비물도 없다.


내가 다닌 국민학교의 일층에는 작은 매점이 하나 있었다. 매점에서는 빵과 과자와 음료수도 팔긴 했지만 이곳의 주력 품목은 준비물이었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매점에서 준비물을 구입했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종이 한 장도 나눠주지 않았고 학습을 위한 도구는 모두 학부모가 부담해야 했다. ‘수강료 무료, 재료비 본인 부담’이라는 학원 홍보 문구를 떠올리게 되는데 사립이었던 우리 학교는 수강료마저 무료가 아니었다.


학교는 그 사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교사들은 커피 한 잔 도 학부모에게 얻어먹으려 하지 않았고 학교는 교육이라는 본연의 업무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자신들의 책임을 학부모에 전가하는 일도 없었다. 다만, 등하굣길 아이들의 안전을 보살피는 녹색어머니회만은 녹색어버이회로 이름을 바꿔 예전 방식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 저학년 학부모들을 제외한 고학년 학부모들이 돌아가며 등하굣길 아이들을 지켰다. 학부모 어느 누구에게도 열외가 인정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한 번은 아이 반의 공개수업에 참석했다가 얼떨결에 녹색어버이회 학급 대표를 맡게 되기도 했다. 공개수업을 끝낸 선생님이 교실 뒤편의 학부모들에게 다가와 학부모들이 맡아줘야 할 몇몇 자리를 언급하면서 도움을 청했는데 아무도 나서려 하지 않았다. 이때 아이가 회장을 맡고 있었던가 선생님이 내 쪽을 계속 쳐다봤던가 덜컥 녹색어버이회 대표를 맡을 수밖에 없었다. 녹색어버이회 대표라서 해서 크게 하는 일은 없었고 일 년에 한 번 교통 지도 순번을 짜는 일만 하면 되었다.


자기 차례가 된 학부모들은 학교에 비치된 모자와 조끼를 착용하고 깃발과 호루라기를 들고 학교 앞 횡단보도 앞에 서서 교통 지도를 했다. 학부모들이 주로 하는 일은 횡단보도의 신호등에 맞춰 깃발을 내렸다 올렸다 하며 차량의 횡단보도 침범을 방지하고 학생들이 횡단보도를 통해 안전히 건너도록 유도하는 것이었다.


돌발상황이 생길 경우에는 호루라기를 불어 주의를 줘야 했는데 교통 지도를 앞두고 이 호루라기가 왠지 찜찜했다. 당시는 코로나 시국도 아니었지만 남이 입에 물던 호루라기를 사용한다는 것은 꺼려질 만한 일이었다. 이때의 상황에 대한 아내와 나의 기억은 엇갈린다. 교통 지도를 위해 호루라기를 새로 구입했다는 것이 나의 기억인 반면 집에 있던 호루라기를 들고 갔다는 것이 아내의 기억인데 아내의 기억이 맞다면 호루라기는 언제 왜 구입했을까 하는 의문이 남긴 한다.


아이가 중학생이 되면서 앞으로 더 이상 교통 지도를 할 일은 없게 되었다. 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하고 거의 일 년을 학교에 가지 못하고 줌으로 수업을 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이때는 녹색어버이회 같은 것들에 대해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어느 날 문득 교통 지도라는 노역에서 해방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아이의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었을 때 아이를 대신해 교통 지도를 할 수도 있다는 게 현재로서는 유일하게 남은 가능성이다. 그때까지 이 호루라기는 건재할 것이다. 호루라기의 출처에 대한 기억은 여전히 엇갈리겠지만.


이전 23화 달그락달그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