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델 바틀 클리너
장난감이라는 것이 지금처럼 흔하지 않던 어린 시절 아이들이 자주 가지고 놀던 장난감은 구슬과 딱지였다. 유리 재질의 구슬은 동네 슈퍼나 문방구에서 팔던 공산품이었는데 딱지는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했다.
동그란 딱지는 상점에서 살 수 있었다. 둥근 형태의 딱지를 파는 것은 아니었고 A4 용지보다 큰 시트를 사서 절취선을 따라 오려내는 방식이었다. 여자 아이들이 가지고 놀던 종이 인형도 같은 방식이어서 커다란 종이 한 장에 어린 소녀의 몸과 옷, 구두와 가방 따위의 소품이 오밀조밀 자리 잡고 있었다. 종이 인형은 절취선이 있지는 않았고 가위로 오려내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반면 사각형의 딱지는 두꺼운 종이를 이용해 직접 접어야 하는 핸드메이드 제품이었다. 아이들이 가장 선호하던 재료는 누가 뭐래도 달력이었는데 빳빳한 달력으로 만든 딱지는 잘 뒤집어지지 않으면서도 상대편 딱지에는 위협적인 강력한 아이템이었다.
딱지와 구슬은 다른 아이들과 함께 놀기 위한 필수품 같은 것이었으므로 이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은 생각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이것을 제외하고는 다들 장난감이 변변치 않았는데 그 와중에도 요요를 가지고 놀던 아이들은 꽤 있었던 것 같다. 실을 감았다 풀었다 하면 요요가 위아래로 오르락내리락했고 실뜨기를 하듯 요요를 이리저리 움직이거나 강아지를 끌고 다니듯 요요 기술을 선보이는 아이들도 있었다.
딱지와 구슬이 예전부터 내려오던 놀잇감이었다면 요요는 최첨단 장난감이라 할 수 있었다. 실에 매달려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요요는 볼 때마다 마냥 신기했는데 그 움직임이 볼베어링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세월이 흘러 아이들 장난감 수준의 요요가 아닌 제대로 된 요요를 가지게 되었지만 아이는 이것에 별 관심을 갖지 않았다. 대신 스피너를 모으는 재미에 한동안 빠졌는데 멈출 듯 말 듯 오랜 시간 회전하는 스피너는 요요와는 다른 매력이 있었다. 이 스피너를 움직이는 것 역시 볼베어링 즉, 쇠구슬이다.
쇠구슬은 의외의 장소에서 사용되기도 한다. 작은 금속 부품이나 장갑차 같이 큰 차량의 도장을 벗길 때 쇠구슬을 이용하는 것을 티브이에서 본 적이 있다. 밀폐된 공간에서 쇠구슬을 높은 압력으로 뿌려주면 이것들이 금속에 가 부딪혀 도장과 녹 같은 이물질이 완벽하게 제거가 된다는데 그 원리가 신기하면서도 재미있었다.
이것과 같은 원리로 쇠구슬이 와인 용품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속이 깊고 주둥이가 좁은 호리병 모양이 와인 디캔터의 기본적인 형태다. 이렇게 생긴 디캔터도 닦는 것이 여간 불편하지 않은데 이보다 구조가 복잡한 제품들의 청소는 불가능에 가깝다. 디캔터나 와인잔 같은 용품들은 세제를 사용하지 말고 뜨거운 물로 헹궈낸 다음 리넨으로 닦아내라는 것이 제조사에서 권하는 방식이지만 그것도 리넨이 닿을 만한 구조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다. 이럴 때 유용하게 사용하는 것이 보틀 클리너라 불리는 작은 쇠구슬이다. 물과 함께 쇠구슬을 넣어 조심스럽게 흔들어주면 디캔터 안의 이물질이 깜쪽같이 제거된다. 솔이 끝까지 닿지 않는 속 깊은 유리병 역시 보틀 클리너를 이용하면 깨끗하게 청소를 할 수 있다.
아이들은 흙바닥에 구멍을 하나 파고 구슬치기를 시작했다. 아이들이 구슬을 굴릴 때마다 바닥에 선이 하나씩 생겨났다. 이 작은 쇠구슬 역시 디캔터 속에서 수많은 선을 그려낼 것이다. 쇠구슬의 유영이다. 달그락달그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