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한마리 :종로 진옥화할매원조닭한마리
제법 찬 바람이 분다. 제철 음식으로 여러 가지를 고를 수 있겠지만 까칠해지는 피부를 스치듯 베어내는 바람에는 국물 만 한 것도 없다. 뜨끈한 국물에 퐁당 빠지고 싶을 땐 작은 뚝배기보다 잔뜩 찌그러진 은색 냄비가 제격이다. 거기에 끓일수록 맛있어지는 마녀 수프 같은 닭 한 마리의 계절이 도래했다.
분주하게 움직인다. 앉아서 사색할 틈이 없다. 곳곳에 바다를 건너온 여행자들의 테이블이 보인다. 김치는 단연코 셀프이고 중요한 사실을 빠트려선 안된다. 종지 위에 잘 다져 놓은 마늘 한 접시를 챙겨 오는 일이다. “이모 마늘 하나 가져갈게요” 회전을 위해 미리 준비해둔 초기 세팅 진영에 가면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렇다, 마늘을 사랑한다. 누군가는 마늘이 너무 많이 들어가면 칼칼한 마늘맛만 나지 않겠느냐고 할지 모르겠다. 한국인의 소울푸드를 만들어내는 중추에 있는 마늘, 그래서 셀프로 가져온 김치에 마늘이 빠져있다. 순서의 차이가 있겠지만 언제 넣든 ‘절대 마늘의 법칙’처럼 부족한 만큼을 채워낸다. 결국 마늘에서 마늘이다. 마늘이 국물을 타고 헤엄친다. 끓이는 동안 마늘의 향과 맛이 국물 전체에 퍼진다. 닭기름이 뜨기 시작했고 여전히 마늘은 우주 같은 국물을 별빛처럼 수놓는다. 닭고기 본연의 향이나 그 밖의 생각할 거리는 마늘로 덮는다. 이름을 ‘원조 마늘 닭 한 마리’로 했어야 했을까.
부대찌개를 먹을 때, 닭갈비를 볶아댈 때에도 되도록 사리를 추가하지 않는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밥을 볶는 일도 생략하곤 했다. 참 교육을 받고 그러지 않기로 했다. 종로 한복판, 조금 떨어진 뒷골목에 거대한 냄비 안에서는 조금 다르다. 파 사리를 추가한다. 초록으로 물든다. 가장 편안함을 주는 초록빛으로 노랗던 조금 전 보다 건강해진다. 닭고기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내어 주시는 테이블 위에서 닭고기가 익기만을 간절히 바라며 소스를 준비한다. 취향 따라 다른 질감, ‘색’다른 간과 모양으로 만들어진다. 심플하게 먹는 사람도 있고 장처럼 만들어 발라먹는 사람, 아무것도 없이 먹는 사람도 봤다. 소스를 만드는 건 어디까지나 자유다.
여러 해를 지나오면서 가격은 달라졌다. 물가도 교통비도 올랐고, 비슷하지만 너무 다른 치킨값도 올랐는데 늦가을부터 겨울까지 에이는 찬바람을 책임지는 국물 값이 변했다고 번호가 새겨진 칩을 받고 기다리기를 멈출 생각은 없다. 그렇게 코로나를 견뎠고 하늘 길이 열리면서 생기를 되찾았다. 골목을 구경하다 보면 생선 비늘이 구워지며 나는 바스락 한 비린내가 코끝을 자극한다. 골목에 사람들은 좀 전에 국물 안의 마늘처럼 가득하고 바글바글하다. 모두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열변을 토하거나 왁자지껄 시끌벅적한 모습이다.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테이블에서 각자 이야기에 취해있다.
닭고기가 어느 정도 익은 것보다 폭 익은 식감이 좋다. 질겨질 수 있어 타이밍이 중요하다. 기름이 뜨면 숨이 죽기 전 푸르기만 하던 파 사리와 노오란 마늘이 완성된 마녀수프가 되어 기름진 텍스처를 만들어내는 그때다. 진득하게 국자를 타고 앞접시에 올려지기 시작하면 먹어야 할 타이밍이 온 것이다. 슬슬 다음을 준비한다. 국수를 넣는다. 시기가 오기까지 어떻게 끓여 냈고 언제 넣느냐가 관건이다. 기본 육수를 너무 많이 넣지 않고 최대한 액기스를 보존해야 한다. 그래야 두꺼운 면에 국물이 먹기 좋게 베인다. 맑게 끓여 내기만 하면 집에서 먹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이모의 재빠른 손을 주의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저지해야 하고.
‘보해 복분자’를 주문해야 하는 장소가 아닐까. 차가운 바람과 닭 한 마리 골목의 국물 거기에 하루의 피로를 씻겨내는 복분자의 달달함은 그야말로 이 계절의 작은 사치이자 지친 하루를 그 자리에서 달래고 야 마는 보신의 현장이 된다. 약주 한 잔의 느낌으로 적당히, 달큼하게. 막걸리 같은 탁주보다는 물처럼 마실 수 있는 맥주나 소주를 곁들이면 편하다. 어느 날엔 안주같이 느껴지다가도 또 한 번은 식사 같은 날 반주가 되기도 했다. 자주는 아니지만 두 가지를 섞어서 날카롭지만 은은하게 취기를 올리는 방법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조금 더 뜨끈하게 하는 방법이다.
오늘같이 잘 어울리는 계절엔 더할 나위 없다. 한여름에 이열치열을 주장해 본 적은 없지만 스산한 가을 저녁에 쓰디쓴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잠시 들러 큰 냄비 안으로 잠시, 풍덩 빠져보는 건 어떨까. 어차피 내일은 오니까.
EDITOR
:HERMI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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