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회비빔밥 :광장시장 창신육회 본점
시장은 명절이었다. 조그맣기만 하던 어린 시절에는 ‘시장'을 오가며 동네를 누볐지만 언제까지나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 일 년에 두 번, 되돌아보면 그 같은 순간이 한때의 한정이었다는 사실이 조금은 애처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땐 몰랐다. 그게 마지막 여정이라는 사실을. 할머니의 손을 잡고 이끌려 가던 때부터, 시장은 낯설게 거대한 장소였고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그리고 번화한 상점과 노상의 좌판을 구경할 수 있는 다채로움이 섞인 곳이었다.
다른 지역에서 친척들이 오면 서울의 시장을 궁금해했다. 처음엔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란 조금 난해했지만 이내 수긍했다. ‘핫플레이스’보다 도시의 문화와 분위기를 담아 놓은 장소가 본능적으로 궁금했던 탓이었으리라. 무슨 이유에서인지 반대의 상황에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낯선 여행지를 가게 될 때면 숙소 인근의, 이동하기에 무리 없는 선에서 가장 큰 시장을 찾았다.
번화했고, 활기찼으며 시끌벅적했다.(딱 한 곳 대전의 거대한 시장만큼은 고요했다) 사람들은 어깨를 피해 상행과 하행을 오갔고 하나라도 더 사기 위해 경쟁하는 것 같이 분주한 사람들과 다급하게 불러 세우는 상인들의 우렁찬 목소리, 생기 있는 에너지가 공기를 가득 메우고 있는 신비로운 곳이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곳들 앞에는 ‘전통’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시장의 이미지는 더 강렬해졌다.
그들은 전통을 계승하고, 유구한 역사를 견뎌내었으며, 영겁으로 불릴 거대한 시간을 담았다. 사방팔방으로 뻗은 입구에 들어서기만 하면 잠재력을 확인했다. 백종원 선생님만큼 전국의 방방곡곡의 시장을 다녀본 경험은 없기에 대체로 서울에서, 출장지와 여행지에서만 경험했던 짧은 순간들이 조각이 되어 전통시장에 대한 이미지와 환상은 그렇게 차곡차곡 쌓아 올렸다.
서울에만 살았던 나와는 달리 서울 생활이 태어나 자랐던 고향의 시절보다 길어진 아버지는 종종 시장에 대한 향수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가고 싶어도 갈 사람이 없어서 못 가”라는 한탄으로 아쉬움을 드러내는가 하면 북적이는 사람들 틈에서 나란히 앉아 국수를 말아먹고, 김밥에는 마약으로 통하는 겨자 소스를 한사코 찍어 중독되고야 마는, 목장갑만으로 저걸 잡을 수 있을까 싶을 만큼 뜨겁게 삶아 두툼하게 썰어내는 돼지의 부속과 순대를 아무렇게나 앉아 먹는 정겨움이 그립다고 했다.
시장은 추억이 있는 사람에게는 이제는 사라진 마음의 고향이요, 없던 사람에게도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이색적이 장소다. 전통시장에서의 경험치는 사회생활 이후에 조금씩 다양하게 적립되고 있었다. 길거리 음식에서 분식, 간단하게 막걸리 한잔할 수 있는 전집에서의 깔끔한 탁주 한 잔에서 이제는 식사 자리의 반주, 공복을 지나 제대로 한 잔이라거나, 가맥집, 못 본 척 지나칠 수 없는 마성의 기운으로 앉을 수밖에 없게 노포까지 선택지는 다채로워졌다.
‘광장시장’ 좀 가본 사람으로 최소한의 시장 경력을 쌓아 올렸다. 차가운 소주 한 잔으로 체온을 상승하게 만드는 일상과 하루를 말끔하게 씻어내고 싶다. 육회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시절부터 다녀서인지 어느 계절이나 부담 없이 이곳이 생각난다. 북적이는 사람들로 골목을 찾아도 멀리서부터 어떻게 들어가는 게 가장 효율적 일지를 떠올리며 들어서기도 전에 골목의 모습을 상상한다.
줄 서있는 사람들도 골목은 가득 채워졌다. 오가며 서로의 터치를 최소화하기 위해 애쓰는가 하면 진정,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아웃도어룩에 가방까지 짊어진 사람들의 여행가적인 호기로운 발걸음 공격에 유난스럽게 몸을 피해 가며 줄을 선다. 이 정도면 기다릴만하다 싶은 날이 있는가 하면 미리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에 안도하는 날도 더러 있다.
가슴까지 시원해지는 소주 한 잔을, 그것도 정신없이 이야기를 나누며 제대로 시장 감성을 체험하기 위해 본점으로 향한다. 입구 앞에서 이모는 쇼케이스 냉장고에서 포장 손님들을 응대하고 ‘아이컨택’이 성공하는 순간 입장 여부는 판가름 난다. 어느 자리에 앉게 되든 합석에 가까운 실내에서 최대한 옆 사람과 앞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시원해 짐을 온전히 느끼고 조용히 빠져나가야 한다.
해가 쨍한 여름날보다 찬바람이 살살 부는 요즘 같은 가을 날씨가 이 메뉴를 더 생각나게 한다. 그건 근처에 있는 닭 한 마리 칼국수의 마녀수프 같은 국물 때문에도 아니고 을씨년스러움 때문에도 아니다. 기본 찬으로 테이블 위에 오르는 소고기 뭇국의 중독성 때문이라고 확신한다.
EDITOR
:HERMI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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