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함에 이르렀나?

*닭갈비 :용산 백빈건널목 오근내 닭갈비

by HERMITAGE

가장 자신 있는 분야였다. 먹을 만한 곳이 필요했고 적당한 곳을 골랐다. 그땐 여럿이었다. 호의가 당연하지 않은 여자와 자신 있는 남자, 모든 걸 새롭게 받아들이는 여자와 사연이 있어 보이는 남자였다. 순발력과 추진력이 필요했다. 저녁 메뉴를 정한다는 건 그런 일이다. 그런대로 앉을 만한 자리라는 알 수 없는 확신이 들었다. 건널 때마다 거대하다고 생각하는 장엄한 한강의 남단인지 북단인지 확실하지 않게 돌아오지 않을 다리를 건넜다. 달리던 택시에서 순식간에 내렸다. 새로 생긴 커피빈에서 막 나와 잡은 택시였다. 미루고 미루던 저녁은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야경으로 채워진 거리는 걸어본 적 없이 익숙했다.



가장 좋아하는 드라마 박해영 작가의 <나의 아저씨>를 촬영했던 백빈 건널목이었다. 철길이 깔린 골목에는 앞만 보고 달려 나가는 기차가 가로막고 서있었다. 홀리기라도 한 듯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원하는 장면을 화면에 담지는 못했지만 보기 드문 기차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는 게 얼마 만일까 놀라는 것도 잠시, 건너가도 좋다는 보행신호가 되었다. 마법에 걸린 것 같은 이 거리와 이미 익숙한 골목에 야경만큼 심취하기 직전이었다. 생각보다는 넓은 실내에 비해 좁은 입구로 어느 정도 기다린 다음에야 들어갈 수 있었다. 용산역을 등지고 언제부터 자리했는지 모를 만큼 오래되어 보이는 [오근내 닭갈비]다.


IMG_1753.jpg

누군가에게는 오랫동안 다닌 단골집으로, 숨겨진 요새 같아 보이는 이곳을 왜 이제야 왔을까. 처음 방문했을 때부터 줄 곳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닭갈비라는 메뉴를 서울에 동쪽에서부터 한 시간 남짓 떨어진 곳에서야만 울림을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고, 통나무를 들어 올리거나 ‘장인의 집’ 그릴 아래 낯 뜨거운 숯불 앞이 아니라면 납득할 수 없는 것이라 고만 생각 했던 걸까. 시내의 거리보다 춘천의 외곽의 줄지은 풍경을 떠올려야 비로소 맛을 그려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IMG_1763.jpg

그날 이후 꾸준했다. 어느 날은 한강을 그리고 서울을 지치는 줄 모르고 걷다 들렀고 그렇지 않을 땐 맛이 드문드문 떠올라 줄을 서기도 했다. 본점이 닫는 날이면 2호점으로 향했다. 그 길이 그 길처럼 보였지만 다른 곳은 조금 더 번화했다. 용산역 주변으로 새로운 장소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무언가 해낸 듯 만족스러워 보이는 거리였다. 편안함에 이를 만한 느낌은 아니었지만 호감이 갔다. 오래된 회색 건물은 카페가 되었고, 와인병을 줄 세우기 시작했고 종종 매체의 촬영지로 등장하는 것을 목격했다.


IMG_1803 2.jpg

한 마디로 담아낼 수 없는 매력이다. 담백하고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기본에 가까운 맛은 종종 근처를 지날 때만 아니라 문득 떠오른다. 질리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허기를 달랬어도 가까운 시일 내에도 물리지 않는다. 곁들이는 무언가로 승부를 볼 요량도 없어 보인다. 다만 움직여야 한다. 가운데로 몰아넣어 두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 너무 허기질 때까지 저녁을 미루고 미뤘다면 초조함을 각오해야 한다. 생각보다 더 오래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IMG_1810.jpg

이리저리 카메라를 움직였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잘 담아봐야지,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진지한 고민이 이어졌다. 맛이 제대로 담기지 않았다. 오해를 받을 수도 있겠다는 우려가 먼저 들었다. 기본에 가까운 이 맛을 어떻게 덤덤하고 담백하게 담아낼 수 있을까. 갈증에 목이 타지도 너무 자극적이라 안주 같은 느낌을 주는 것도 아닌 중도의 맛으로 오히려 그런 것을 기대하다가 반주 정도가 적당하다고 납득하게 만드는 얌전한 맛이었다. 서울에 중심에 가장 가깝다는 생각이 드는 용산의 한복판에서의 일이었다.


차곡차곡 담겨 나오는 기본 찬을 몇 번이고 집어 든다. 닭갈비가 제대로 익는 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니까. 바깥공기만큼이나 차가워지는 소주만으로도 충분하지만 제대로 버무려져 무거운 양념을 머금고 숨 죽은 부추와 양배추 샐러드는 기포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탄산이 확실한 맥주를 섞은 것과도 잘 어울린다.


IMG_1837.jpg


번갈아 가며 곁들이는 것도 심취하기에 유리한 전략이다. 닭갈비를 담은 널찍한 철판 위로 벌건 양념이 배어들어가는 야채와 그 사이에 기막히게 파고드는 마늘을 노릇노릇 익힌다. 고기가 드라마틱 해지기를 기대하며 주걱을 든다. 밑이 타지 않을 만큼 부지런을 떨고 목이 마르지 않을 만큼 찬 음료를 머금고 입을 적신다. 반찬으로 빼곡한 테이블 위해 올려놓은 육중한 불판 위에 닭고기가 가장 담백한 상태가 되기를 소원하면서 초조하지만 덤덤하게 다음 한 모금을 마신다.


EDITOR

:HERMITAGE

BY_@BIG_BEOM

keyword
이전 09화내가 먹으려고 만드는 한 그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