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먹으려고 만드는 한 그릇

*순댓국 :양천향교 월송순대국감자탕

by HERMITAGE

가장 눈에 띄었던 건 은은한 미소였다. 마스크로 적당히 숨겨진 진심이 지나치지 않을 만큼 적당히 다가와 자리를 건넸다. 쭈뼛쭈뼛 들어오던 발걸음은 조금은 우스워 보였을지 모르겠지만 그날부터는 편안하게 언제든 들를 수 있게 되었으니 그날의 선택은 괜찮은 시도였다. 무엇이 될지는 아무도 몰랐지만 우선, 뚜벅뚜벅 문을 두드리고 걸어 들어가는 호기심은 서쪽 하늘 아래 진정성 있는 국물을 찾기란 쉬이 나타는 일이 아니기에 이미 수많은 체험을 둘러메고 들어가는 길이다. 지나친 기대를 하지 않는 편이 식사를 마친 후에 유리하고 근사하고 특별한 맛을 기대한다기보다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너무 늦지 않은 점심으로 자꾸만 들르고 싶은 밥을 한 끼 먹을 수 있는 곳을 찾고 싶었다. 가장 큰 동기부여이자 오랜 시간 고민해 오는 주제이기도 하고, 기왕이면 걸어서, 기운이 날 때는 뛰어서, 날이 좋은 때라면 자전거를 빌려 타고 전속력으로 달려가고 싶은 그런 곳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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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차이에서 오는 예쁨 점수인지 헷갈렸다. 유명하다는 집이, 누구나 맛있다고 하는 그래서 줄을 서 먹어야 하는 집이어서는 아니었다. 여러 가지 취향이야 경험해 보면 알 수 있는 것이고 나뉘는 선택지는 분명하다. 종종 떠오르는 맛과 그리고 싶어지는 감성은 흉내 낼 수도, 억지로 만들어 낼 수조차 없는 것이어서 아주 보편적인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그런 곳을 찾았을 때의 희열 또한 분명하다. 왜 이제야 나타나주었는지 그래도 이 근방에서라면 주저 없어도 괜찮다는 사실에 마음은 든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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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와 같은 핵심적인 찬은 오랜 칼국수집처럼 든든하게 담긴 통에서 직접 꺼내어 테이블마다 가위 실력을 보이며 접시를 채워야 했다. 가위는 좀처럼 작은 녀석이었고 집게 또한 알맞게 썰어 담근 김치를 들어 올릴 정도의 크기였다. 힘이 조금은 빠진 듯 보였지만, 그건 나이가 들어서였을까. 적당히 익은 때 들렀던 한 편의 운 같은 것이었을까. 아주 집과 같지만은 않은 맛이 먹기 좋게 맵지 않은 나머지 찬과 함께 인내심을 길러주었다. 오래된 가게임에도 세면대와 작은 주방이 밖으로 내어져 있고, 언제부턴가 그 자리를 지키다 못해 세월의 흔적마저 어제 열어 두고 기다린 것처럼 자연스러워 보였다. 잘 닦인 테이블 위에 오랜 시간까지도 정성스레 정리해 반질반질해진 그릇에 희미하게 비친 어렴풋한 모습을 들여다본다.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노포의 매력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헤아리기엔 어려운 시간을 어깨에 짊어지고도 아무렇지 않은 듯 제자리에서 다시 사람들이 앉아 주기를 기다리는 듬직함 같은 것 말이다. 그리고 멀리에서, 실은 좁은 주방에서 길게 젖은 앞치마를 두르고 대수롭지 않은 미소와 함께 어서 오라는 말을 건네는 풍경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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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온 사람이든 오랜 단골이든 누구에게도 돋보이려고 하지 않는 담백함이 이곳의 첫인상이었다. 따뜻해진 줄만 알았던 진부했던 겨울이 다시 참지 못한 추위를 뿜어대자 스멀스멀 슴슴한 한 수저의 국물이 또다시 피어올랐다. 간판에 불조차 들이지 않는 이곳이라면 편안한 한 끼 식사의 시간으로 제격일 것이다. 차가운 바람에 몸이 움츠러들고 자꾸만 따끈한 국물이 생각나면 으레 그런 마음이 스친다. 나이가 들어가는 것 같아 숨기고 싶지만 별 수없이 그렇다. 언젠가 국물 같은 건 그다지 선호하지 않아서 자주 먹지 않는다고, 더욱이 곱게 나온 집에서는 잘해주지 않는 오롯한 흰쌀밥을 그릇째 털어 넣어 망치는 일은 내게는 지나치게 파격적인 일로 느껴질 뿐이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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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여전히 따로 먹는 국밥에 마음이 가는 건 사실이다. 토렴으로 쥐여주는 믿음직한 그런 곳들이 아니라면 여전히 취향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국물이 있는 음식은 말아서 먹어야 진정 즐길 수 있다는 말을 종종 들어왔고 그래서인지 그때는 그 말들이 와닿기 어려운 주문쯤으로 여겼지만 여러 철이 지난 요즘은 다양한 방법으로 따뜻함을 즐긴다. 적어도 절반씩은 그렇게 하기로 했다. 처음엔 긴가민가할만한 외관을 지날 때 조금씩은 주저하고 선뜻 들어가기 어려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함으로 얼굴을 마주하고, 그런 고민을 하고 멈춰 섰던 누구보다 이미 제 자리를 하나씩 차지하고 앉아 바쁜 일상을 멈춰 세워두고는 적어도 반나절은 든든할 한 끼를 이곳에서 채운다. 때로는 갈증 가득한 저녁에 온몸이 시릴 만큼 차가운 소주 한 잔을 털어 넣으며 따끈한 밥 한 술을 편안하게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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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MI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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