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무침 :성북구 동소문동 맛나순대국
“우리는 왜 매일 힘을 내야 하는 걸까? (취하지 않으려고) 힘내는 거 너무 지겹다, 연진아”
사장님이자 어머니인 이모는 전라남도 영광 분이다. 요즘 무엇 때문에 그렇게 영광을 좇는지는 모르겠지만 힐끗힐끗 보던 장면을 차근히 홀린 듯 정주행 하고야 만 걸 보니 대세는 대세인가 보다. 그보다 남도의 글로리에서 오신 사장님의 가게에서 된통 혼이 나고 오는 길이다. 아득해지는 정신을 붙잡으려면 좀 전보다 조금 더 많은 힘이 필요하다. 술과 함께 셀프인 물 한 잔 마셔야겠다.
왜 항상 이 같은 노포에는 크고 작은 소문들이 자자한 걸까. 대체 어떤 친절과 대화를 기대하는 건지는 조금의 의구심으로 남긴다. 물론 그것 때문에 발길을 주저했던 건 아니다. 어렸고, 진입에 장벽은 높았으며 선뜻 발을 들여놓지는 못했다. 멀찌감치에서 어쩌면 시장의 일부처럼 보이는 이곳을 언젠가는 마음속으로 동경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강제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아마도 어떤 부자연스러움을 정리해 주려던 건 아닐까. 불편과는 거리가 있는 주제처럼 들렸다. 주저하던 모습에 단지 영광스럽게 건넸을 제안을 떠올린다. 무엇을 진정으로 원하는지 화자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매일, 쉬는 날 없이 저녁 11시까지 가게를 가득 채우는 사람에게 하루 이틀 강제한들 크게 달라질 건 없어 보였다. 무엇이 그를 멈출 수 없게 만든 걸까.
나이가 들었다. 정성스럽게 담아놓은 김치가 잘 익어 아름답게 보관되어 있는 일이 얼마나 값지고 귀한 일이라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시간이 그걸 깨닫게 해 주었다. 언제까지나 최적화된 컨디션의 우리 할머니 김치를 얼마든지 맘껏 먹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조금씩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시간은 흘러 영광엔 가본 적 없지만 저 따뜻한 남쪽의 어떤 정열적인 맛의 기억들이 조각이 되어 퍼즐을 맞춰나간다. 고귀한 찬들이 하나 둘 자리에 올랐다.
파편보다는 완성된 조각 하나를 집어 들고 입에 넣으면 그곳이 고향이 아닌 사람조차 숙연해진다. 그쪽 방향으로는 가장 가까이에 닿아본 게 따지고 보면 북쪽인데 훨씬 캐주얼했다. 도시에서 맛보는 깔끔 좀 떨어 본 심플함, 비록 출장 갔을 때를 잠시 떠올리면 그때 찬으로 나오던 삭힌 홍어가 그렇게 입에 맞았던 건 결코 우연이 아니었으리라. 자네 부모님이 전라도 사람이냐는 질문을 받았던 조나단처럼 편견 없으리라.
동네라면 동네라서 그간 몰랐다는 것은 새하얀 거짓말이다. 그땐 지금만큼 국밥을 선호하지 않았다. 아버지와 단둘이 순댓국을 먹으러 갈 때에도 기울여야 하는 뚝배기와 그다지 소중한 줄 모르고 먹었던 뻔한 맛의 김치들에 그다지 설레지 않을 때였으니까. 지금은 다르다. 하얀 접시가 새빨개질 때까지 김치를 먹고, 말씀을 드리기 전에 한 번 더 올려주신다. 자리는 낯설어도 기분은 그렇지가 않다. 마치 좀 전에도 종종 왔었던 것처럼.
이 같은 감상을 치르기 전에, 계절 메뉴인 굴 무침을 먹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 가본 적 없는 자리에서도 이걸 먹기 위해 일 년을 기다렸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찬 바람이 불기 전에, 얼마든지 올 수 있었지만 지금 같은 환상을 충분한 겨울에 양보하고 또 기다렸다. 어리둥절했지만 이유야 어찌 됐든 ‘이렇게 하는 건 나밖에 없어’라고 자신 있게 부엌에서 너머로 말을 전해오는 그의 모습에서 확신은 깊어간다.
냉장고에 넣어둔 한 종류의 소주를 어느새 비운다. 종류가 무엇이든 크게 상관은 없지만 다음 메뉴가 무엇인지는 중요하다. 조금 비릴 수도 있다던 생선구이는 어린 시절 집에서 엄마가 구워주던 고등어자반 구이보다 솔직히 말해 더 담백하고 감칠맛이 났으며, 전이라면 투박하고 거친 질감에 대장부를 만난 기분이 들어 수긍했다. 입안에서 온전히 느껴지는 강강 약약이었다. 치우치지 않아 균형을 잡고서 입안에서 춤을 춘다. 흔들릴 때면 자신 있게 내와 주신 찬들이, 누구보다 솔직한 김치가 자리를 잡는다.
희열을 느꼈다. 있는 줄만 알았던 소문을 살아있는 전설로 마주할 때, 그간 이곳에 옷깃을 스쳤던 수많은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어느 날엔 감자탕 집에서 또 어느 날에는 족발과 그밖에 오래된 가게를 드나들며, 앞으로 사장님이자 어머니인 이모에게 신세를 많이 질 것 같다. 김치를 반 포기씩 먹어대도 어떻게 같이 먹어야 좋을지를 기분 좋게, 정확히는 영광스럽게 건네는 이모한테 말이다. 감동은 단번에 충격과 함께 씹어 삼켰다. 무쳐진 굴에도 김치에도 세상의 모든 선명한 맛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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