治熱(치열)하게 保養(보양)

*육칼 :문배동육칼 본점

by HERMI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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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술이 부풀어서 애인하고 키스도 못하고 애매한 눈물까지 흘리리라’ [별건곤, 제24호]는 음식 육개장은 狗醬(구장)에서 由來(유래)했다. ‘구장’은 조선시대에도 식용 문제가 있던 개고기로 끓인 시뻘건 국이다. 1920년대 유행했던 잡지 ’별건곤’에서도 남도 지방에서 인기를 얻어 서울까지 올라온 메뉴를 이렇게 현장감 있게 전하고 있다. 종종 예명처럼 쓰여 낯설게 마주쳤던 대구탕반의 본명이 육개장이고 과거의 음식이 이야기들이 그렇듯 어디에서도 먹었지만 유래를 찾아가면 대구의 자랑으로 불리는 음식을 서울에서 경상도식, 대구식으로 마주하던 경험이 있다.


한때는 ‘’와 ‘’가 헷갈리기도 했다. 닭고기를 찢어 넣은 닭개장을 맛보고는 그 이름을 따라 계를 쓰는 게 아닐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은 생각하는 것만으로 힘이 나는 고기를 뜻하는 말이었고 유래를 따져보고 난 후에 모든 논란은 종결됐다. 콩고기도 고기라면 그렇고 果肉(과육)도 그런데 실은 ‘먹을 수 있으면서 맛있는’이라는 표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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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장’ 앞에 주된 재료를 어떤 것으로 쓰느냐에 따라 달리 부르고 지역별 각양각색의 유래만 같은 다양한 이름의 개장들이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채식이 필요하면 채개장을 끓이는 것처럼 말이다. 친숙한 메뉴로 불리며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건 1920년대이지만 역사가 기록한 육개장은 19세기말 조선 후기에도 여름철 補陽(보양) 메뉴로 등장한 기록이 정조 때 쓰인 것으로 보이는 京都雜志(경도잡지)를 비롯해 洌陽歲時記(열양세시기), 東國歲時記(동국세시기)에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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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운맛을 유난히 잘 느끼는 맷집 없는 입맛 때문인지 유구한 역사를 가진 이름의 메뉴를 오랜 시간 멀찌감치에서 지켜만 봤다. 프랜차이즈 매장이 전국 간판에 이름을 걸고 눈에 밟히는 와중에도 찾아가지는 않겠다고 여러 번 자리를 피했다. 그럼에도 특별히 이 음식을 소화해야 하는 날이 불쑥 찾아오면 어디를 가도 하나의 거대한 음식 공장에서 동일한 시간 一律(일률)적인 맛으로 전국으로 배송되는 그 맛을 종종 喪禮(상례)에서 만나면, 남기지 않고 잘 먹고 돌아가야 한다는 한국식 禮儀(예의)에서 비롯된 것이었는지 정신이 도착해야 하는 와중에 먹는 긴 텀의 식사에서 맛을 느낀 것인지는 여전히 헷갈리지만 분명한 사실은 시간이 지날수록 보양식으로 느껴진다는 점이다.


보양’의 民族(민족)으로서 지난 補身(보신)의 기록을 남긴다. 용산역 뒤편에 문배동에 가기 전까지 이곳을 언제 방문하면 좋을지를 지난날처럼 꾸준히 지켜봤다. 근처를 지날 일이 있을 때마다 눈으로는 이미 여러 차례 방문했다. 여전히 선뜻 먼저 다가가기에는 이르게 찾아온 더위의 계절이 다 와서야 아직은 조금 주춤하지만 찬바람이 불 때보다는 으레 더 생각나게 만드는 육개장의 힘이 以熱治熱(이열치열)의 호기심을 자아냈다. 거기에 국물에 밥을 말아먹거나 비벼 먹는 것을 선호하지 않아 국수를 넣어 먹을 수 있다는 방법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예쁨 점수가 있는 이름을 標榜(표방)하는 칼국수는 좀 전까지 조금 더 선호하던 하얗고 뽀얀 칼칼하거나 자극적이지 않고 맑은 맛일 테고 거기에 자극이라는 열정을 더했을 뿐이라 장벽은 낮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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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을 덜 서는 시간을 찾아 전략적으로 접근했다. 단일 메뉴의 단출하지만 확신으로 채워진 조합의 한 상은 음식의 이름이 가져온 오래된 역사만큼이나 가게가 지켜낸 세월을 오롯이 담아내어주는 듯 보였다. 기울어지고 맨들 거리는 테이블이 신뢰를 더해주는 이런 풍경은 별다른 걱정이나 막연한 기대 없이도 직관적으로 메뉴에 집중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 이런 순간을 최대한 즐긴다. 회전은 빠르고 메뉴판을 오래 들여다볼 필요도 없다. 단순히 한 끼의 식사시간이라기보다 지켜내야 할 문화를 체험해 보는 장이며 영겁의 시간 속으로 기꺼이 빨려 들어가는 도피와 思索(사색)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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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에도 방해받지 않아 오염되지 않은 純白(순백)의 흰쌀밥을 붉다 못해 시뻘겋다 말하는 국물에 입술이 부르틀 정도로 동시에 빠트리고 싶다. 처음엔 국물이 배는데 시간이 필요한 도톰하게 삶은 국수였고 그다음 단계다. 붉게 물든 국물은 그때, 歷史(역사) 속에서도 얼큰했고 지금도 못지않게 얼큰할 테지만 한여름의 무더위를 녹진한 열기로 마저 덮치고 嚴冬雪寒(엄동설한)에 부자연스럽게 얼어붙은 모든 것들을 ‘보양’을 더한 자극의 불 맛으로 녹인다. 불과, 한 그릇만으로. 무엇 하나 틀리지 않았다. 몇 세기 전인 그때도 맞고 지금도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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