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향족발 :가락동 오향가 가락본점
역사는 반복된다. 難攻不落(난공불락)의 성을 쌓았지만 남은 건 守禦將臺(수어장대)에 걸린 無忘樓(무망루) 扁額(편액)이다. ‘잊을 일이 아예 있을 수 없다’를 새긴 액자가 말하고 있는 진정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한 치 앞뿐 아니라 저 멀리 굳건하게 송파구에 뿌리를 내리고 치솟은 롯데타워가 희미한 어느 날 南漢山城(남한산성)에 올랐다.
누군가는 시련이라고 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과정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지나는 길의 모습이 이런 것이라면 마땅히 묵묵히 걸어야겠지만 무엇보다 아랑곳하지 않는 압력은 사방에서 계속된다. 진정한 고립을 맞이할 때를 기다리는 결코 간헐적이지 않은 압박이 그가 이곳에서 맞이했던 최후의 45일로 향해 가는 그날들과 닮아있을까. 시간이 없다. 가능한 멀리 도망친 장소가 지금 오르는 이곳이라니. 싸움이라기보다 궁지에 몰린 形勢(형세)인데 회피한 이곳의 공기는 그 어느 때보다 차분하고 평온하다. 마음을 멀리까지 내던질 수 없다면 가까운 곳에서라도 숨긴다. 인적이 드문 곳을 찾아 드문드문 걸어보니 바삭하게 마른 낙엽과 오래전에 떨어져 땅과 닮아가는 솔잎들이 고요함의 운치를 더하고 節槪(절개)가 느껴지는 고목들이 병풍처럼 늘어섰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지금이라도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 잊어버리고 싶은 유혹을 차마 뿌리치기 어렵다. 지금까지 해오던 묵묵히 걷는 일을 가깝고도 먼 처절한 길에서 무엇을 떠올리며 걸어야 할까. 뿌옇게 번진 하늘이 내다볼 수 없는 내일을 예측할 수 없는 하산 길을 연상하게 한다. 이가 없어 잇몸으로 길을 찾을 수 없다면 디딜 수 있는 곳으로 방향을 정한다. 적당히 그만두고 싶었지만 물러설 수 없다. 이만하면 됐다기엔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실은 별로 오르지 않은 높이에 지금의 주소가 미련 없이 아쉽다. 비슷해 보이지만 조금 다른 방향으로 한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높이에 우뚝 선 건축물을 바라본다. 언제 어느 때부터 저기에 서있었을까. 그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묵묵히 저 자리를 여러 시대와 역사가 사건과 사고들로 뒤범벅되었어도 누군가는 유지 보수해 오늘까지를 지켜 눈앞에 나타났을까.
도망치듯 오른 곳을 내려온다. 무엇보다 반가웠던 적막이 숨 쉬는 이곳을 이탈해야 하는 건 결코 비겁하지 않기 위해 달려온 길을 도로 돌아가는 일이었다. 자발적인 굴욕이었다. 세 번 절하는 일도 어딘가에서 알 수 없는 찝찝함이 느껴지는 손에 묻은 상처의 흔적 같은 것은 없었다. 여전히 바쁘게 돌아가는 대중교통과 퇴근길을 재촉하는 사람들 조금은 열기가 식은 시장 상인들의 평온한 거리만이 멀리 보이지 않는 산성 안의 모습과 對比(대비) 되었다.
목적지로 처음이지만 대중교통으로는 처음 내리는 이곳을 이제 막 도착했다. 간단한 리스트 업도 없이 감각에 의존해 무언가를 추진해 보는 일이 얼마 만인지 충동에 이끌리기로 한 이상 무리의 사람들을 따라 걷는다. 잔뜩 예약 손님들이 보이는 가게에 따라 들어가 가장 많이 주문할 것 같은 메뉴를 주문한다. 간단한 요기가 끝났으니 오르려던 길에 마저 오른다. 산세가 험난한 매력적인 길들이 많지만 마음은 行宮(행궁)에 머물렀다. 미세하게 보이지 않는 먼지는 눈과 입으로 화기를 엄금해야 할 것 같이 건조한 바닥이 스치는 모든 것에 얇게 코팅되어 갈증과 허기를 더했다. 오르면 오르는 대로 마냥 펼쳐진 내리막이라면 허리에 힘을 주고 걸었다. 식었던 땀이 마르고 젖기를 반복하고 벌겋게 익었던 살은 조금씩 따끔거리기 시작했다.
도망치듯 올랐던 길을 비슷하게 내려온다. 이번에도 역시 사람들이 많이 걷는 길을 따라 걸어볼 작정이다. 낯설기만 한 外間(외간) 동네에서 가장 비싼 웨이팅을 중식집으로 분류하는 족발집으로 결정했다. 이름만은 친숙한 오향의 감투를 쓴 족발과 갈증을 달래기에 충분한 최저 온도의 소주, 입가심으로 적절한 메뉴가 미처 오르기 전 먼저 한 잔 마시는 병맥주, 국물이 필요할 것 같아 준비한 보이는 미역국, 천연덕스럽게 중식집보다 마파두부가 맛있다는 말을 하며 가게를 나서는 얼큰한 방문객의 생생한 후기가 기다리는 동안 들려온다.
세심하게 걷고 무던히 해 오던 일들이다. 무엇 하나 이유 없이 결정된 일이 없다. 회피하기로 한 이곳에서 여러 가지 친숙한 위로를 만난다. 치이는 갈증과 압박의 먼지를 있는 힘껏 씻어내고 도망쳐 왔던 그 길로 기꺼이 돌아간다. 도망칠 수 있었다면 다시 오를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의 말처럼 잊을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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