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꼭 숨어라 오리탕이 보일라
제주도 제주시 넝쿨하눌가든
이것은 미나리탕인가 안쪽으로 깔려 숨어 있는 오리탕인가. 정체를 분간하기도 어렵지만, 아마도 이런 맛을 육지 어딘가에서 구현하고 있는 곳이 있다면 도플갱어일 것이다. 적어도 비행기로 이곳과 한 시간 남짓 떨어진 육지에서만큼은 말이다. 육지와 섬의 가깝고도 먼 거리 때문에 그 둘이 마주칠 일은 없겠지만 마주치면 한쪽은 소멸한다는 전설, 지금껏 보지 못했던 독보적인 존재 같다.
‘전설의 오리탕’
뜨끈한 국물에 붉은빛 오리기름이 유려하게도 배었다. 기름진 국물의 힘은 전날 꾸준히 토해내던 숙취를 잠시 내려놓게 만든다. 한 스푼 뜰 때마다 에너지가 차오른다. 머리를 두드리던 두통은 조금씩 옅어지고 뜨거운 숨을 몰아쉬던 갈증을 시원하게 해소한다. ‘오리를 이렇게 좋아했나’라는 의구심이 번뜩 떠올랐다. 오리라는 메뉴는 보통 몸보신 하기로 하는 날이라던가, 서울을 벗어난 근교 한적한 어느 야외의 해를 가리고 앉아 발목까지 차오른 물에 발을 첨벙이는 배경에서 마주하는 별미가 아니었나. 저녁 메뉴로 벌건 주물럭 정도였다.
치킨 보다야 건강한 닭백숙은 조금 식상하고 어쩐지 땀 한번 시원하게 빼고 싶은, 뜨거운 것을 넣고 싶을 때 고르는 필살기 같은 메뉴다. 능이버섯을 곁들이기도 하고 어쨌든 좋다는 건 전부 넣어 이렇게까지 끓여도 되나 싶을 때까지 불을 올려놓으면, 부추가 잔뜩 올라가 있다 숨이 죽어 퍼져있는 오리백숙을 만난다. 누군가는 제주도까지 가서 오리를 먹느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대부분 제주도 여행의 메뉴 선정 클리셰는 비슷한 흐름을 보이기 때문이다. 출발 전부터 필사적으로 데이터를 리스트 업을 하는 사람, 별생각 없이 도착해서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찾으며 동시에 목적지를 입력하는 사람, 마음을 정하지 못해 이리저리 흔들리는 사람까지.
'전화라도 해보고 가는 사람은 좀 났다.'
여행자의 떨리는 마음으로 불쑥, 충동적으로 예약 전화를 건다. 계획형 인간에게 순발력이란 장르에 어려움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동행이 있는 시간의 여행지라면 기어이 정해야만 하는 정착지에 도달하는데 까지 본의 아니게 설득력을 가져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여행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준비보다 공동의 동의가 결정되지 않았을수록 초조한 마음은 더욱 조급해 지기에.
‘가는 길에 심경의 사고를 당했다거나 하는 것’(실제와 다를 수 있다)
의견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각자의 방식으로 나름대로 심도 있는 고민을 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제한된 시간 안에서 대개 비슷한 것들을 고른다. 맛집이라 부르는 곳들을 여행 전에 살피고 저마다의 'DB'를 구축해 두고 현장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광경을 보고 있으면 구글 리뷰와 네이버 포스팅의 숫자와 비례하며 어느 정도 일치한다. 하지만 맛의 척도라는 것과 만족의 역치라는 게 사람마다 달라서 주위를 둘러봤을 때, 여행자만 넘쳐나는 곳 보다 음성인식이 곧바로 되지 않는 낯선 언어가 사방에서 튀어나오는 곳이야 말로 높은 신뢰감을 느낄 수 있는 안정감 마저 드는 장소다.
사람들이 즐겨 찾는 사진 잘 나오는 인서타그램 맛집들은 촬영용이고, 토속음식, 역사가 살아있는 메뉴 언저리를 기웃거리기도 해 보지만 누구에게나 최종 선정 대상이 되기는 어렵다. 익숙하겠지만 제주도 사람들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는 ‘색’을 따져가며 먹는 돼지고기는 검은색으로, 육지에서 맛볼 수 없는 등 푸른빛이 맴도는 기름진 감칠맛이 폭발하는 특별한 횟감을 떠올린다. 아니면 찰랑이는 실버톤, 육지에서 목격하지 못한 은은하게 빛나는 두껍고 하얀 빛깔의 길게 떨어지는 생선은 포기하기 어렵다. 좀 더 도전적이라면 말고기나 전갱이가 들어간 이름도 생소한 '각재기국’ 같은 것들이겠지만 호불호가 갈리기 때문에 신선한 돼지고기와 생선회 정도에서 그치는 게 일반적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가능한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조금 더 만족할 만 것을 고르기 위에 매 순간을 벼른다. 휴대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다 믿을만한 제보를 받아 고르고 고른 제주시 [넝쿨하눌가든]이다. 오타가 난 것 같은 착각이 드는 이름, 타이틀은 제주도, 거기까지 가서 먹는 오리, '로컬 맛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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