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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MITAGE Mar 08. 2024

신주쿠 밤거리로 가자 고우(ごう)

이태원 야키토리 고우 이태원본점



녹색창에 ごう(고우)를 검색하면 청담점이 가장 먼저 노출되던 때가 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야키토리 고우'로 검색해야 이태원 본점을 찾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아니다. 검색창 안으로 다채롭게 정돈된 지점 별로 뒤 따르는 이름들이 줄지은 모습이 자주 다닐 때와는 사뭇 다르다. 이렇게 다양해지기 이전에 기억은 경험의 종류 차이겠지만 주변에서 더 자주 들리기를 청담점이었고 아직 방문해 본 적 없지만 직영으로 운영된다는 사실만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렇게 별 탈 없던 그 시절 이태원 본점에만 방문했다. 지금은 자주 지나치는 마곡에도 지점이 생겼다. 꾸준히 방문 횟수가 쌓이면서 눈길을 끌던 기억은 늘 붐빈다는 것이다. 수기로 적어 내는 웨이팅 일지(지금이야 어플리케이션으로 원격 줄 서기 같은 걸 하겠지만), 분주한 직원들의 우렁찬 호출 소리, 삼삼오오 걸터앉거나 서성이며 차례를 기다리는 끊이지 않는 손님들. 이자카야라는 장르에 관심 좀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명 '맛도리' 좀 찾아다니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본 미식 세계 특유의 분위기와 가장 근접하다는 반응이다. 혼란 속의 코로나 시국을 지나 언급하기에 아직 조심스러운 통탄할 참사까지 어려운 분위기 속에 척박한 환경이지만 인근에서는 아직 붐빌 만큼 조용히 찾아가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고우는 일본에 8개의 지점*, 한국 이외엔 필리핀에 오픈을 한 이력이 있는 외식 브랜드다. 본토의 정통을 가져와 첫인상부터 철 지난 유행 프랜차이즈 브랜드처럼 가벼워 보이지 않았다. 

*21년 4월 기준(일본):고우 홈페이지 참조  


‘진짜' 냄새가 났다



팬데믹 특수로 한동안일줄 알았지만 잔열남은 혼술열풍과 해성처럼 다시 돌아온 스몰 이자카야의 유행 중에도 이렇게 다양한 안주와 한 잔 더하기 좋은 복합적인 공간이 제법 괜찮은 자리에서 살아남기란 힘들었다. 거기다 무분별해 보일 정도로 폭발하는 외식업계의 새로운 브랜드 풍파 속에 해제되는 그린벨트처럼 수도권 곳곳으로 퍼져나가는 '00점'을 새롭게 유치하기란 더욱 어려워 보인다. 아담하면서도 적지 않은 규모를 유지해야 하는 게 그랬다.


애써 외면하고 싶던 불황이 지속되면서 고질적인 문제로 보통의 업장보다 낮은 단가로 회전율만을 높이려는 어설픈 시도는 이자카야 본질적인 매력을 떨어트리고 있다. 다양한 형태가 있겠지만 한국에서 ‘양이 적어도 맛있는 걸 곁들여 마신다’는 해석할 수 있는 대표적인 공간인 이자카야에서 낮은 객단가에 회전율만을 좇다 보니 지금까지 남아있는 몇몇의 큰 브랜드를 제외하고는 있었는 줄도 몰랐던 유행의 철이 바뀌듯 지난 계절처럼 사라졌다. 



또 정통을 차용한 듯 보이지만 차선의 선택으로 구성한 한국 정서에 맞춰 재해석된 이자카야였다는 점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만든 실패의 요인으로 보인다. 얇아진 지갑에도 외식 수준은 하루가 다르게 높아졌고 소위 말해 어디서 고기 좀 먹어본 사람들은 꾸준히 늘어난다. 흉내 내는 수준에 그친다면 한 번 호기심은 동해도 재방문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사장님의 고유한 캐릭터 만으로 엄청난 매력을 갖는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면 미식 경험치가 늘어나고 있는 지금의 세대들에게 각광받기 어려워진 만큼 맛의 역치는 ‘매정 단계’다. 현지의 맛을 경험하다 못해 찬양하고 나누는 시대에 찾는 사람들은 기꺼이 적은 양에 비싼 값을 지불하더라도 만족도 높은 가게를 찾고 싶은 수요는 살아남았다.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입히려면 고우처럼 고유의 전통성을 강조하고 주어진 환경(식재료)에서 최선을 다하는 편이 찾아주는 사람들을 설득하는데 훨씬 유리해 보인다. 아무리 정통 브랜드라고 해도 프랜차이즈화 하는 브랜드에는 철과 같은 유행이 있어서 분위기나 흐름에 영향을 많이 받는 편임에도 고우의 내공은 13년 4월부터 10여 년째 그 기나긴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메뉴판만 봐도 현지에서 증명한 결과를 토대로 완성도를 높여 정착한 결과를 볼 수 있다. 사실 그곳 현지 분위기가 물씬 나는 결정적인 대목이기도 하다



한때는 핫하기만 했던 북적이던 이태원 거리는 지금 손바닥 뒤집듯 변하는 밤과 낮이 한 편의 체르노빌에서 일상을 왔다 간다. 밤새 식을 줄 모르던 상권에는 불이 꺼져있고 자리를 지키던 엄숙한 가게 곳곳에 임대 현수막이 붙었다. 명동 일대와 종로 거리만일 거라 생각해 오던 일이 언젠가 애정하던 동네에 벌어져 있는 모습이 새삼스럽다. 걸음을 더하거나 차로 조금 이동해 보면 흩어진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지만 이태원, 역 주변으로 뒷골목 일대에의 모습은 분명 많이 달라졌다. 



주말을 알리는 금요일 밤을 시작으로 골목골목으로 아는 사람들만 다닌다는 거리엔 그래도 사람들이 어느 정도 보이지만 그것도 이젠 잠깐, 반짝 몰려드는 시간을 제외하면 예전에 비해 파리 날리는 분위기다. 유난히 어두운 골목이 지금 상권의 침체 농도를 자세히 보여준다. 불 꺼진 거리에 오가는 사람마저 없으니 영화 레지던트이블의 한 장면이 떠오르기도 한다. 한적해진 거리를 찾아 걷다 보면 초록창이 제공하는 모바일 지도에 애매하게 표시되어 보일 수 있는데 큰 골목과 이어진 작은 골목 사이에 중턱에 있다. 한번 가본 사람이야 문제없지만 초행길에 흔들리는 GPS에 혼란이 오기도 한다. 아직은 혼란이 자리 잡은 골목 속에 고우는 이태원에 묵묵히 버티고 선 버뮤다 섬 같은 존재다. 


대부분 방문 시 웨이팅이 있었고 매장 안은 붐비며 칸막이를 사이사이에 두고 떨어져 앉아 작은 일본을 경험한다. 신발을 벗어야 하지만 다리 아래로 떨어지는 등받이가 있는 좌식 구조는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조금 더 오랫동안 편안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전에 망원동에서 일본 음식을 먹고 긴자를 떠올린 일이 있었다면 고우는 고질라가 영화관 뒤로 지키고 있는 도쿄 신주쿠 밤거리가 생각나는 곳이다. 우리만큼 늦게까지 술을 마시지 않는 일본에서 꺼질 줄 모르는 화력의 열기가 살아 숨 쉬는 신주쿠의 밤거리처럼 도쿄의 알코올인싸들이 지칠 줄 모르고 붓고 마시는 분위기를 재연한다. 


고우의 열기는 하늘길이 막혀 가까운 나라로 여행을 다닐 수 없던 그때도, 기다렸다는 듯이 다른 여러 나라로의 해외여행을 오가는 요즘에도 이웃나라에서의 시간으로 간접 체험을 하기에 충분하고 붐비는 주말이라면 한 번쯤 웨이팅을 각오해야 한다. 본점에서 시간을 보낼 때 한 가지 팁은 화장실을 미리 가라는 것이다. 여행지 신주쿠의 야심한 분위기에 취해 푹 빠진 줄도 모르고 대화를 나누다 차례를 미루다 보면 곤란한 상황을 맞이할지도 모르겠다. 곤란하기 시작했다면 이미 늦었다




EDITOR

:HERMITAGE

DAYTRIP_

BY_@BIG_BE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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