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智

이성과 지혜, 사물을 분별하고 이해하는 슬기

by HERMI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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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몇 번이면 괜찮아질 줄만 알았다.



正體不明(정체불명)의 원인 모를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주 오래전 일이지만 그래도 그땐 작은 힘만으로 어느 정도 선에서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조금만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 스스로 위로했지만 한번 시작된 이상 멈출 수 없을 거라 모두가 입을 모아 말했다. 극히 일부분을 통제하면 오히려 가중된 반응이 나타나서 화를 나게 할 뿐이라고 했다. 근거 없는 말이었다. 어떤 것 하나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럴 것이라는 추측, 아마도, 어쩌면 같은 추상적인 것들이었다. 상황이 나아지리라는 믿음은 눈을 씻고 찾아야 겨우 보일 때의 이야기였고 이후에 그런 기대감은 사라졌다.



차라리 다행이었다.


諦念(체념) 단계로 들어서자 최대한 눈에 거슬리는 무언가를 애써 모른척하기로 마음먹었는데 어느 날, 집중된 조명 아래에선 그게 어려웠다. 보이는걸 안 보인다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신기하게도 타인의 시선에선 그게 걸리지 않았다. 다행이라기보다 安堵(안도)였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아서 일 테지만 생각보다는 얼마 지나지 않아 타인의 눈에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제는 예전만큼 혹은 그와 비슷한 정도를 상태를 유지하기란 불가능한 단계까지 왔다.



되돌릴 수 없는 일이다.


짐짓, 들쳐 올리고 파헤쳐 가며 탐구하듯 발굴해 내지 않고서가 아닌, 이제는 아주 쉽게 찾아볼 수 있고 또 멈춰 세우고 물으면 확인이 가능할 정도가 되었으니 말이다. 비슷한 위치에서 한 가지를 해결하면 하나로 되어있던 몸은 서너 개로 분리됐다. 주어진 순리를 거스르는 변형은 이내 고꾸라져 더 날카롭고 오히려 두꺼운 걸 만들어낸 사실을 확인했다. 감추고 싶었지만 애매하고 모호한 설명 중 일부는 사실이었다. 그건 어떤 자극을 동반해서 지속적으로 신경이 쓰이게 했고 반대로 덜미를 잡았을 땐 시원한 짜릿함이 있었다. 작은 쾌감은 중독으로 이어졌고 통제가 되지 않는 상황에 따라오는 불안이 계속해서 중독된 현상을 반복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하얗게 불태우다 결국엔 아무것도 남지 않은 상태가 되면 어쩌나 하기도 했지만 그마저도 잠시뿐이었다.



중독에서 헤어 나올 수 없다.


초과한 감정은 차분한 이성과 서로 모른척하는데 그 상황에서 겨우 차린 정신은 온전치 못했다. 스스로를 과연 자기 자신이라 냉철하게 판단할 수 있는지조차 의문이었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손을 떨었고 다리를 가만히 두지 못했다. 집중력이 그리 오래가진 못했지만 중독된 것만큼은 집착을 보였다. 반드시 있어야 했고 없으면 불안했다. 손에 잡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불쑥, 찾아왔을 때 생각지 않은 버튼에 손이 갔다. 불안은 또 다른 충동을 만들어냈고 이성(理性)의 초과를 가져왔다. 감정을 추스르고 이성을 되찾아, 멈춰야 했다. 그대로, 가만히 둔다기보다 지금은, 숨을 골라야 했다. 눈앞에는 쓰던 안경이 없는데 습기가 찼고 포장지를 뜯지 않은 K94-마스크 안쪽으로 숨이 막혔다. 몰아세우던 것들이 조금씩 빠져나갔다.



어느 한순간이었다.


심호흡을 하고 앞으로를 그리고 잠시, 뒤를 돌아봤다.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냈고 챙길 수 있는 만큼 챙겼다. 양손 가득, 짓누르는 무게감을 이겨내고 조금 더 충실해지기로 했다. 마음을 먹는데 다른 말은 필요 없었다.

차츰 뜨거웠던 몸은 식었고 아주 낮은 바닥까지는 아니었다. 숙연한 감정은 理性(이성)에 이끌려 힘을 냈지만 손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멈춘 줄만 알았던 시간은 돌고 돌아, 다시 원점(原點)에서부터 정체 모를 일이 원인을 파악하기도 전에 제자리로 돌아갔다. 지금 이 순간에도 꾸준히. 몇 번이면 괜찮아질 거라는 헛된 믿음만은 사라진 채로.


Hermitage

@big_be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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