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된 善(선)과 自己嫌惡(자기혐오)
얼마나 남아있는지 모르는 채로도 괜찮을까. 결국 뚜렷하게 남기지 못하고 도움될 만한 걸 만들지 못한 부끄러움만 남았다. 그 정도면 됐다는 걸로 조용히 마무리 지으면 될까. 언제 쏟아질지 모르는 비처럼 우중충하기만 했던 하늘에 어느 날, 우연히 무겁게 머금은 구름에서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다 끝이 정해진 바닥 아래로 떨어져 나가기를, 급류에 휩쓸리는 것 한 번이면 정말 끝이 날까. 아쉬운 순간들을 돌이켜봐도 쉽게 정리되진 않는다.
정해진 깜깜한 길을 뚫고 달리는 열차를 타고, 앞이 아닌 옆을 곁눈질했다. 그건 맞고 틀리고의 문제라기보다
오래전에 주어진 하나의 노선을 선택하고 곱씹으며, 도착만을 바라면서 묵묵히 기다리는 일이었다. 때로는 아무도 타지 않은 칸이었던 순간이 더 많았다. 지루한 소음에도, 소화하기 어려운 이야기 소리가 들려도 회의감이나 빠져나오기 어려운 후회 대신, 지독하게 완성시킨 가면을 쓰고 철저하게 심취했다. 다른 무언가가 짚어 삼킨 모습이 완성되었을 때 차라리 이젠, 더 맞을 거라는 확신에 찬 길에서 더 멀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혼자만 괜찮아도 되는 건 아주 잠깐이었고, 시간이 더 지나면서 선택사항은 아니었다. 적어도, 고르기만 한다고 골라지는 것도 아니었다.
自意識(자의식)과 他意(타의)로 점철된 이름 모를 감정. 선택받아야 하는 강박들. 어설프기만 했던 가짜 감정은 흉내 내기에 쉬운 것들은 아니었다. 해야만 했고, 맞다 설명해야 했다. 충돌이 생길 때면 유연하게 되묻고자 힘썼다. 속에선 끓어오르던 에너지가 어딘가에 도달해 얼음처럼 증발했다. 단단했던 모습은 녹아 흐르는 물이 되었고 서리가 미처 생기기도 전에 미련 없이 작은 구멍으로 부어 버려졌다. 보다 나은 표현이, 의식 어디쯤에 머물러 있는지를 정리해 따져 봐야 했다. 몰입은 어려웠지만 그렇다고 동화될 수 없는 건 아니었다. 테두리 안에 속하지 않는 自慢(자만)이 건방진 傲慢(오만)으로 눈에 밟혔다. 무언가를 가르치려 들 때면 흩어진 이성을 끌어모아 한곳에 집중했다. 그 싸움에서 어느 쪽에 손을 들어줄 것인지는 오롯이 타인의 몫이었다.
결과를 기다려야만 할 땐, 적어도 그때만큼은 비치는 거울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깎인 이성에 비스듬히 서서, 곁눈질을 해야 했고 고를 수 있는 것들 중에서 가장 작은 걸 골랐다. 한여름, 금과 납으로 된 옷을 입고
목적 없는 거리를 떠도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방황. 아이와 어른의 논쟁, 부서지는 창과 뚫리기도 하는 방패, 모순으로 가득 차 있는 동시에 확신에 찬 생각, 사지 않고 당첨을 바라는 복권. 꾸준한 알코올을 거스를 수 없는 정신과 이성만을 앞세운 감정. 검은 거짓말 뒤에 숨긴 가짜 善意(선의), 어둠이 모여 만든 빛을 흡수하는 일련의 과정. 단단한 거인과 왜소한 난쟁이의 싸움이다. 물리적인 힘만으로는,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닌 체하면서도 당사자만 모르는 많은 것들에 쉽게 動搖(동요) 했다.
어디에도 同調(동조) 하진 않았지만 불안정한 다수의 틈에서 빠져나온 완전한 소수, 독립적인 존재가 되지 못해 결국 속하지 못한 반강제적 소수는, 어디에도 선택받지 못한 이기심만 남았다. 열등과 불안을 끓이자 부끄러울 만큼 붉고 뜨거운 민낯이 드러났다. 응고되지 않은 피가 제자리에서 무게를 실어 올린 나머지 저리기 시작해, 묵혀둔 부자연스러운 순환은 곧 절름발이를 만들었다. 어렵게 쓸어 내딛는 무거운 발자국이 힘겨운 싸움으로 스치는 치명상이 되어 주저앉을지 모른다. 주저앉기보단 멈춰서 똑바로 보기 위해 그만큼의 용기가 필요하다. 무겁다고 만 할 수 없는 납과 대신 찬란한 금을 포기할 용기. 양손과 두 팔, 어깨에 모두 짊어지고 밖으로 나선다.
Hermitage
@big_be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