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상한 걸까’라는 질문에서 벗어나기

'이상'의 정의와의 사투

by 담은

지금이 힘겹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이상'한걸까?


나는 사실 이상(abnormal)이라는 이름의 기준을 정해두고 누군가에게 낙인을 찍는 그 행태가 싫어 병원에서 뛰쳐나온 임상심리학자다. 이상한, 곧 정상이 아닌, 그러니까 비정상적인 상태. 우리는 정상의 반대를 그렇게 규정한다.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이 '이상함'의 정의라고 보아야 맞는걸까?


결국 가장 쉬운 방식은 통계적인 확률을 따져보는 것이다. 그 보편성! 그렇게 종 모양의 곡선을 하나 그려서 정상분포라고 이름 붙인다. 곡선의 가운데, 그 종의 통통한 배 안에 속해야만 보편적인 인간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양 끄트머리에 속한 이들은 이상한, 비정상적인, 어딘가 잘못된 존재가 된다. 그리고 그 배불뚝이 종의 일부로 들어서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된다. 이것이 어쩌면 강력한 '교정'이나 '치료'의 이름이 될지도 모른다. 이렇게 정의해보면 '이상'이라는 그 규정이 싫어 병원을 떠난 나도, 결론적으로 '이상'에 속하지 않을까?


그러니 상담을 받는 사람, 마음이 아픈 사람은 이렇게 '이상한' 사람이라는 인식이 여전히 들어차있는 것이다. 왜냐면 마음이 건강하지 않은 것이나, 상담을 받는다는 행위가 충분히 보편적이고 일반적이지 않다고 여겨지니까. 대부분의 사람은 마음이 건강하고 편안하여 그 숫자에 속하지 못할테니까. 특히나 동양문화에서 보편적인 존재가 되어야만 한다는 압박감이 얼마나 높은지 상상해보면, 이상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고통을 억누르고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쪽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 충분히 이해된다.


최근에 AI가 우리 삶에 속속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챗 gpt 사용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물론 AI는 정리하기 힘든 자료들을 대신 정리해주고, 정보를 나열해주며 우리의 업무 효율성을 올려준다. 나도 그저 그런 줄만 알았다. 훌륭한 비서 역할을 하기 위해 gpt가 열심히 일하고 있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실제로 챗 gpt가 어디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지를 조사했을 때, 가장 많은 사용 목적은 '상담'이었다는 말을 듣고 꽤 놀랐다. 그리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상담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 조금 더 알려져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gpt는 아직(적어도 아직은... 발전하는 속도를 바라보고 있으면 수십년 뒤는 장담을 못하겠다) 상담을 원활히 진행하기는 어렵다. 상담에서 인간과 인간의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과정과 미묘한 순간들을 포착하고, 비언어적인 단서들을 활용하며 상담을 진행해나가기에는 많은 한계를 보인다.


하지만 대신 gpt는 가까이에 있고, 외부에 내가 gpt와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지 않아도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러니 상담이 필요하지만, 상담을 시작하기 망설여지는 많은 이들에게 첫 대상이 되어주는 모양이었다. 그러면 이제는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두 '이상'하다고 해야할까? 하지만 이번에는 이쪽이 종의 배를 차지할지도 모르겠는데!


일전에, 한국인의 방어기제 중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조사했을 때 '억제'라고 밝혀진 연구를 읽은 기억이 있다(박경화, 1991). 우리는 힘들고 지쳐도 누구에게 도움을 구하기보다, 전부 억누른다. 마치 감정을 잘 통제하지 못하는 사람은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니까, 스스로 억누르고 통제하는 것이 옳은 일처럼 꼭꼭 누르고 혼자 감당하려 한다. '이상'이 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이처럼 억눌린 감정은 대부분 내가 원하지 않던 방식으로 분출된다. 내가 스스로 이해하기 어려운 갑작스러운 눈물이나 화, 두려움, 신체의 통증과 같은 방식으로 어떻게든 외부로 나서려 한다.


상담은 이상을 교정하기 위한 자리가 아니다. 상담은 사실 헬스의 퍼스널 트레이닝(PT)가 굉장히 흡사하다. 내담자(상담을 신청하고 상담실에 방문한 사람)가 대부분 해나가고, 상담자가 그것을 돕는 것에 더 가깝기 때문에. 우리는 왜 꾸준히 운동을 할까? 당장 몸에 힘이 부족해 힘을 기르기 위해서, 체력이 부족해 쉽게 지쳐 체력을 키우기 위해서, 혹은 꾸준하게 관리하여 추후에 덜 아프기 위해서. 상담도 그와 아주 같은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상'하기 때문이 아니라, 내 자신을 관리하고 성장하고 조율하기 위해 마음의 근력을 키우는 방식의 하나가 된다. 그를 통해서 몸이나 마음이 보내는 신호를 더 잘 알아차리게 되고, 어떤 방식으로 조절하면 더 잘 조율해나갈 수 있을지를 알게 되고, 내가 원하고 지향하는 바를 알아차리게 되고, 타인과의 관계에서 내가 주로 느끼는 것들과 그것들을 원하는 방식으로 표현해나갈 방법을 찾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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