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상황에서 심리상담이 의미가 있을까?
일단 내 마음의 어려움을 인식하게 되었다고 해도, '나'에게 적합한 도움을 선택하려면 여전히 관문이 여러 가지 남아있다. 그 중 첫번째 관문은 이제 어디에 갈지를 선택하는 일이다. 마음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기관은 정신과와 심리상담센터가 있다. 그러나 아직 둘 모두 가본 일이 없는 입장에서는, 양쪽에서 각기 무엇을 하고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속속들이 알 방법이 없다. 이 낯선 두 가지 선택지 중에 무엇을 선택해야 지금의 내게 적절할지 알기가 어렵다.
그래서 과연 언제 정신과를 선택하는 것이 좋을지, 언제 심리상담센터를 선택하는 것이 좋을지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임상심리학자라는 정체성 덕분에, 정신건강의학과에 오래 소속되어 있었지만 현재는 심리상담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그 혜택으로 이 사이 미묘한 틈을 여러번 들여다볼 기회를 얻게 되었다. 둘 모두를 오가면서 각자의 한계를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이었다.
누가 심리상담센터에 가고, 누가 병원으로 가야할까? 사실 가장 보편적이고 좋은 방법은 둘을 동시에 병행하는 것이다. 실제로 다양한 증상과 어려움을 호소하는 분들을 만나뵐 때마다 느끼는 것은, 둘 모두를 꾸준히 병행하는 경우 가장 치료 효과가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아마 이 두 가지 방식이 나에게 작용하는 방식이 서로 다르기 때문일테다.
먼저,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무엇을 할까? 정신과에 방문할 때는 무엇을 기대하면 좋을까? 아무래도 정신과의 주요 목표는 '지금 불편한 증상을 약물을 통해 경감시키는 것'이 된다. 대체로 일반 병원보다는 진료 시간이 길지만, 그래도 10분 정도의 진료가 가장 많은 것 같다. 그 동안 환자의 상태를 파악해서 약물 처방을 내리고, 이후로 증상의 변화도를 보면서 약물을 조정하는 것이 주된 치료 과정이 된다. 방문한 사람이 해야할 일은 내 증상에 대해 최대한 전달하고, 돌아가서 처방받은 약물을 빠지지 않고 꾸준히 복용하고, 부작용이나 증상의 변화가 있는지 관찰하면서 주기적으로 다시 병원에 내원하여 약을 조절하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조현병과 같이 '없는 존재의 목소리가 들린다'거나, '존재하지 않는 것이 내 눈에만 보인다'거나, 혹은 실제가 아닌 생각에 깊게 빠진 '망상'과 같은 것들이 있을 때에는 무조건 약물을 복용해야만 한다. 이런 증상은 상담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특정한 진단을 할 수 있고 이름붙일 수 있는 '증상'이 있을 때는 정신과에 방문해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약물을 통해서 그 증상을 다스리려 할 테니까.
센터를 운영하다보면, 이미 오래 정신과 진료를 보고 계셨던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그분들이 상담을 병행하기로 결심하기까지의 이유는 보통 유사하다.
"계속 병원 다녔는데, 언제까지 이렇게 약만 먹어야하나 싶은 마음이 들어요."
"약을 먹으면 나아지는 것 같다가도, 결국 다른 사건이나 문제가 생기면 똑같이 반복이 돼요."
"힘든 것들이 계속 쌓이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르겠고, 뒤죽박죽해서 정리하고 싶어요."
"의사선생님이 상담을 같이 받아보는게 좋겠다고 권유해주셨어요."
상담도 물론 약물치료와 같이 '지금 불편한 증상으로 인한 고통을 경감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을 때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상담의 목표는 내담자(상담에 방문한 사람)에 따라 변화한다는 사실이다. 상담의 목표는 단일하게 정해져 있지 않다. 내담자에 맞춰서 각 내담자와 상담자가 함께 정하게 된다. '우울이나 불안을 경감하고 분노를 잘 조절하고 싶어요' 가 목표가 될 수도 있지만, 누군가는 '관계에서 쉽게 상처를 받는 이유에 대해 알고 싶고, 거절에 두려워하지 않고 제 마음을 전달하고 싶어요"가 될 수도 있다. 후자는 약물로 해결할 수 없고, 상담에서 주로 다루게 되는 내용들이다. 게다가 표면적으로는 우울로 표현되지만, 그 우울의 작동기제는 현저히 다를 때도 많다.
[A]라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지금 굉장히 우울하다. 요즘 자꾸만 눈물이 나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 매일 가만히 앉아서만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래서 심리상담을 시작했다. 그런데 상담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며 들어가 살펴보다보니, 이 사람의 우울의 시작에는 가족의 죽음이라는 큰 상실이 있었다. 적절히 애도하는 과정을 거치지 못했기 때문에 계속해서 슬픔이 올라오며 일상이 잘 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니 A와는 이제 애도상담을 시작해야 했다.
[B]라는 사람도 있다. 이 사람도 지금 매우 우울하다. 자꾸만 눈물이 나고, 무기력하여 멍하니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리고 똑같이 심리상담을 시작했다. 그런데 상담을 진행하다 보니, 이 사람에게 '완벽주의'와 '자기비난'패턴이 강하게 고착되어 있고, 이것 때문에 실패가 있을 때마다 강한 우울이 뒤따라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 이것에 대해 다루는 상담을 시작하게 되었다.
표면적으로는 동일하게 '우울'이라는 증상으로 표현되지만, 그 작동 과정과 기제는 사람마다 이렇게나 다르기도 하다. 상담은 같이 그것들을 조금 더 면밀히 들여다본다. 당장의 증상의 경감 뿐 아니라, 근력과 체력을 키워 같은 상황이 닥쳤을 때 이전보다 더욱 잘 대처할 수 있도록 돕고, 그래서 증상으로 발현되지 않거나 증상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있도록 나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재활치료나 PT처럼 꾸준한 시간 투자와 노력을 필요로 하고, 상담자가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내담자 스스로 열심히 함께해야하는 부분이 많은 작업이다.
그러니 처음에는 상담을 선택하기 부담스러운 마음도 이해가 간다. 내가 에너지를 투입하여 상담에 참여해야한다는 부담감이 들거나, 그냥 빠르게 치료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약물치료를 먼저 시작하게 되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순간을 지나다가 동기가 쌓이면 상담을 시작하게 되기도 한다. 혹은 지금처럼 이렇게 상담과 관련한 글을 접하거나, 아니면 미디어에서 상담의 과정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면서, 그렇게 천천히 마음을 열어가다가 이제는 새로운 시도를 해보자는 마음으로 움직이게 될 때가 상담을 시작할 타이밍이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