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어떻게 견뎠을까

울지도 않고

by 마리뮤

내가 기억하는 우리 엄마의 최초의 나이는 38살이다.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이었을 때였다.

누군가 "너네 엄마는 몇 살이야?"라고 물으면 대답해주기 위해

"응, 우리 엄마는 서른여덟살이야. 우리 엄마아빠는 동갑이래"라는 대사를

마음 속으로 꼭꼭 새겨두었던 기억이 난다.


서른 여덟살...




손가락을 세번 접으면,

그때의 엄마 나이가 된다.






서른이 넘어서도 이따금 울고 싶은 날이 생긴다.

나는 그때마다 엄마를 생각한다.


'엄마는 어떻게 견뎠을까? 울지도 않고...'




엄마가 우는 모습을 많이 보진 못했다.

외삼촌이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고 오열하던 모습,

아빠와 술문제로 싸울 때 훌쩍이던 모습.

아마도 그게 전부인 것 같다.






나는 그런 분명하고도 슬픈 명분이 없이도

이따금 눈물을 흘린다.




그냥 막연하게 어른이 되어버린 내가 안쓰러워서 눈물을 흘리고,

인정 받지 못하는 나의 무능함에 눈물을 흘리고,

미래에 대한 실체없는 두려움에도 눈물을 흘린다.


내가 유난히 나약한 걸까, 아니면 엄마도 이따금 혼자서 눈물을 흘렸을까.







현대인들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유난히 긴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는 형체없는 감정이 주는 공포에 맞서기 위해 그것들을 끊임없이 관찰하고 살펴보며

하나씩 이름표를 붙여준다.


정신의 질병을 세세하게 구분하고 이름을 붙일 수 있게되면서부터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 할 수 있는 말이 많아졌다.

그리고 그 감정들이 명확한 형체를 갖게 되면서부터

우리들은 더이상 그 감정들을 못본채하거나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엄마에게도 나와 비슷한 시기가 있었을 것이다.

막연히 미래가 두렵고,

이유없이 우울하거나,

내가 너무 보잘 것 없어보여 슬픈 날들이...

그런데 왠지모르게 엄마는 그런 감정들에 별로 눈길을 주지 않았을 것 같다.

굳이 그 감정들을 자세히 살펴보려고 애쓰지 않고

인생에 대단한 기대나 달콤한 환상없이

그냥 가는 날은 보내고, 오는 날은 맞으면서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지 않았을까.





곱씹으면 곱씹을 수록 엄마가 참 대단하게 느껴진다.

볼때마다 키도 점점 작아지고 얼굴에 주름도 늘지만

한결같이 강인한 우리 엄마.


절대 엄마만큼 강한 사람은 되지 못하겠지만,

너무 슬프고 나약한 마음이 들면

엄마를 떠올리며 아주 조금만 울어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가는 날은 보내주고,

오는 날은 기꺼이 맞이하며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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