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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뮤 May 14. 2020

나는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고요)

보이지 않는 아픔을 품고 사는 아픔에 대한 이야기








이 책을 읽는 동안 여러 번 멈춰야 했다. 눈물이 흐를까 봐 애써 마음을 다잡고, 아랫입술을 깨물기를 얼마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그녀가 담담한 어조로 들려주는 이야기를 읽다 보면 누구든, 몇 번이고,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녀의 유년시절을 병들게 했던 따돌림과 성폭력... 그녀를 끈질기게 따라다니던 우울증을 극복하고자 떠났던 세계여행에서 겪게 된 교통사고 그리고 그 사고로 가장 친한 친구를 떠나보내야 했던 지독한 삶의 농담. 한 사람이 모두 겪기에는 너무나 가혹했던 그 사건들을 온몸으로, 온 생으로 받아내고야 만 철의 여인의 고백이 담긴 책이다.


저자는 우울증으로 긴긴 시간을 고통 속에서 지냈으면서도 정작 스스로가 '아프다'라는 것을 인정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우울증은 마음이 병든 것이라서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매일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세상 사람들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흔히 두는 훈수를 답습한다. 내가 나약해서 그래, 내가 예민해서 그래, 내 잘못이야.  


하지만 호기롭게 떠났던 세계여행에서 버스 전복사고를 당한 저자는 버스 안에 깔린 순간 그동안 자신이 매일 마주했던 우울증이 크기의 실체를 적나라게 깨닫는다. 


고통의 정도는? 비슷했다. 놀랍게도 비슷했다. 멀쩡히 편안히 누워 있는 게 아니었다. 온몸이 구겨진 채 깔려 숨도 제대로 못 쉬는 엄청난 짓눌림의 고통 속에 있었다. 일 분이 한 시간처럼 느껴지는 고통 속에 있는데, 극심한 우울증으로 침대 위에서 몸부림칠 때의 고통과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았다.


나는 이 대목에서 이 책의 진짜 의미를 찾았다. 세상에는 현재에도 수많은 우울증에 관한 책이 서점에 나와있다. 하지만 그 저자들 중 마음의 고통과 육체의 고통을 모두 다 겪었던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우울증이라는 것이 이토록 구체적인, 실체적인 아픔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나도 그저 평범한 다른 사람들처럼 그들을 '나약한 사람'이라서 그래... 하고 속단해 버리지 않았던가. 


비록 살아온 삶의 궤적과 진폭은 다르지만 그녀의 삶과 나의 삶이 그리 다르지만은 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느꼈던 그 불안한 감정들, 우울한 마음, 삶이 버거워 내려놓고 싶었던 때... 나도 조금씩은 느껴왔던 감정이었기에 글을 읽는 내내 마음이 절절했다. 보이지 않는 아픔을 품고 사는 아픔. 그게 우울증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가시이다. 버스사고로 병원에 입원해서야 그녀는 '아픈 사람'으로 인정받았고, 그녀가 그토록 목말라하던 주변 사람들의 염려 어린 위로와 응원을 받을 수 있었다. 


보이지 않는 아픔을 품고 사는 사람들에게 꼭 한 번 읽어보라고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보이지 않아도 아픈 게 당연한 거라고, 버스에 깔린 고통과 견줄 만큼 당신은 아픈 거라고. 그리고 아픔을 인정해야만 그 아픔도 괜찮아질 수 있는 희망이 생기는 것이라고. 




저자의 소망처럼 왜 살아야 하는지 몰랐지만, 살고 있고, 살아 내고, 살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이 가닿기를 나도 조용히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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