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정말 위험했다. 하마터면 55일간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뻔! 평온하고 기분 좋은 하루였는데 저녁을 먹고 운동을 나서기 바로 직전 남편과 싸웠다. 나는 큰 생각 없이 한 일을 그렇게 안일하게 하면 나중에 작은 실수가 큰 일을 만드는 거라며 한숨을 푹푹 쉬며 잔소리를 해대는 통에 기분이 확 상해버렸다. 알겠다고 몇 번을 말해도 예전 일까지 꺼내며 계속 잔소리, 잔소리...
자세한 이야기는 하기 어렵지만 나는 상황을 봐서 좋게 좋게 해결하거나 내가 손해 봐도 이해해주려는 편이고 그렇기 때문에 남들도 나의 입장을 그만큼은 배려해 줄거라 생각하는 사람인 반면, 남편은 남에게 작은 것 하나라도 책잡힐 일을 만들지 않으려는 극도로 조심스럽고 철저한 타입이라 내가 허술하게 일 처리하는 꼴을 못 본다. 그냥 말 한마디 정정하면 될 일을 가지고 바가지를 긁히니 운동할 맛이 뚝 떨어졌다.
그렇게 답답하면 본인이 다 하던가 결국 일처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다 나서서 하는데 뒤에서 훈수만 두는 남편이 아니 꼬아서 분통이 터졌다. 내가 엉엉 울면서 운동이고 나발이고 다 때려치우겠다고 했더니 남편은 또 한 5분 지나서 갑자기 얼굴색을 싹 바꾸고는 나를 어르고 달랜다...
내가 당신이 지킬 앤 하이 드냐며 처음부터 다정하게 걱정해주며 하고 싶은 말을 했으면 얼마나 좋냐고 속에 쌓인 말을 퍼부었다.
남편은 내가 정말 걱정돼서 그런 거라며 작은 것 하나 대충 넘기는 게 습관이 될까 봐 그랬다는데... 그 의도는 알겠지만 그걸 전달하는 태도에는 확실히 문제가 있다. 그의 말투와 표정을 보면 내가 세상 바보 천지에 머저리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한다. 글로 다시 쓰면서도 열 받네...
정말 다 때려치우고 싶었으나 그 위기의 순간을 참아내고 못 이기는 척 집을 나섰다. 남편은 계속 기분을 풀어주려 노력했지만 기분은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내가 "운동 인증 사진 찍어야 하는데 이제 어쩔 거냐"며 남편한테 따졌더니 얼굴이 안 보이게 본인이 멀리서 찍어주겠다고 해서 흥, 하고 모자를 푹 눌러쓰고 나왔다.
음악을 들으며 걸으려고 이어폰을 꽂았더니 남편이 기어코 하나를 빼서 자기 귀에 꽂았다. 음악 취향도 안 맞으면서 '자기랑 같이 들으며 걷고 싶어'라나 뭐라나... 뻔히 속내가 보이는 알랑 방귀 뀌는 짓이다.
아니나 다를까 한 바퀴를 다 돌 때쯤 "근데, 이런 노래들이 좋아?"라고 묻는 남편.... 이 인간은 아무리 얘기를 해도 언어 실력이 늘질 않는다. 같은 말이라도 기분 안 나쁘게 할 수 있을 텐데 듣다 보면 '이게 무슨 멍멍이 같은 질문이지?'싶다. 그럼 매일 나와서 걸을 때 듣는 음악이 좋으니까 듣지 싫은 걸 억지로 듣냐?"여보는 걸으면서 이런 노래를 듣는구나?" 정도로 부드럽게 넘어갈 수 있었을 텐데...
내가 뭔 질문이 그러냐는 식으로 물었더니 "아니 난 아무리 들어도 내 취향이 아니라" 이러면서 본인이 좋아하는 음악을 듣어보겠냐는... 그러니까 애초에 나 혼자 듣겠다고 했는데 기어코 뺏어서 듣더니 이렇게 초를 친다. 나는 남편이 듣는 여자 솔로 발라드 노래가 전혀 내 취향이 아니란 말이다!!!
게다가 운동만 나오면 다리 아프다, 피곤하다 얼마 걷지도 않고 들어갈 생각만 하는 남편이라 정말 같이 나오면 걸을 맛이 안 난다. 오늘도 두 바퀴 걸으니 바지에 허벅지가 쓸려 아프다며 집에 가잔다. 하...
나는 한 바퀴만 더 걷고 오겠다며 혼자 나섰다. 증말 애증의 남편이다. 가끔은 나만의 시간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