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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뮤 Feb 27. 2021

뼈속까지 통제 유형입니다!

끓어오르는 질투를 느꼈다. 정확한 대상이 있다기보다 불특정 다수에 대한 감정이었다. 내가 놀던 물(?)에선 내가 짱이고, 내가 최고고, 내가 1등이었는데... 내가 속한 곳보다 더 윗물에선 나는 한낱 피라미에 불과하다. 


나는 내성적이면과 외향적인 면을 비슷하게 갖추고 있으나 대체로는 내성적인 사람이라고 여겨진다. 차분하고 조용히 말하고 (아, 물론 낯선 사람들 앞에서)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나를 처음 만난 사람들은 내가 격렬하게 움직이고 땀을 흘리는 스포츠를 즐긴다는 것을 알게 되면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마, 내가 이 고백까지 했으면 그들은 더욱 소스라치게 놀랐을 것이다.


'나는 내가 리더 역할을 맡을 때 가장 마음이 편하다'


그렇다. 사실, 나는 리더의 옆에서 조용히 정체를 숨기고 있을 뿐 뼈 속 깊이 '리더'의 자리를 원한다. 누군가 억지로 감투를 씌어주면 못 이기는 척 리더의 자리를 맡기도 하는데 실은 은근히 그런 통제권이 나에게 넘어오기를 바란다.


요새 나의 최애 프로그램은 오은영 박사님의 <금쪽같은 내 새끼>라는 프로그램이다. 친모보다 더 우는 장영란 씨보다 더 울며 매회 빠짐없이 챙겨보고 있다. 그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아이들의 모습, 혹은 부모의 모습에서 나를 발견한다. 오은영 박사님이 나의 일상을 들여다보셨으면 아마도 이렇게 진단 내리셨을 것 같다.




"뼈속까지 통제(control) 유형입니다!"




티는 안내지만 나는 모든 상황이 내 통제 안에 있을 때 편안함과 안정을 느낀다. 아마 그래서 남편에 대한 불만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것일 테다. 이 인간은 내 통제 영역 밖에 있기 때문에 표면적으로는 '네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라'하면서 속으론 답답해 속이 터진다. 


누군가 나에게 '이래라저래라'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기 때문에 나도 되도록 타인에게 혹은 나와 가까운 지인에게 통제하는 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상황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을 때는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으며 내가 이 상황을 정리하고 통제하는 상상을 한다. 


내가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오늘 또 한 번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렸기 때문이다. 


작년 말부터 더 실력 있는 영어 선생님이 되기 위해 고가의 영어 발음수업을 듣게 되었다. 나와 같은 마음으로 그 수업을 신청한 다른 영어 선생님들도 있었고, 의사, 주부, 대학원생, 엔지니어 등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이 한데 모였다. 


정해진 스크립트를 연습해 읽고 녹음을 하면 수업시간에 바로 체크를 하고 교정하는 식으로 진행되는 수업이었다. 나름 준비를 한다고 해도 새는 구멍이 있었고, 그렇게 또 배움을 얻었다고 스스로를 다독여보지만 수업이 끝난 후에는 항상 속이 쓰렸다. 


지금까지 내가 속한 그룹에서는 그래도 내가 가장 잘했다. 그래서 다음 등록할 때는 그 선생님의 직속 강사가 될 수 있는 반에 올라가는 영광을 거머쥐었지만 마냥 행복하지 않았다. 그 반에 올라가면 더 실력이 쟁쟁한 분들 사이에서 나는 조용히 바닥을 기고 있을 것이다. 그 생각을 하니 답답했다. 귀로는 원어민의 그 완벽한 발음이 들리는데 나의 발음은 잘 굴러가다가도 꼭 나사가 한 두 개 빠지니 화가 난다. 


내가, 통제가 안된다.


나는 더 잘하고 싶고, 최고가 되고 싶고, 1등이고 싶은데 그게 안 될게 불 보듯 뻔하니 속상하다. 




갑자기 아이들에게 미안해진다. 


"여러분, 영어 공부에 있어서 창피함이 가장 큰 적이에요! 우리는 다 배우기 위해 이 자리에 온 거죠? 그러니 잘 못하는 게 당연해요. 스스로 부족함을 인정하는 것부터가 성장의 시작이에요! 틀리는 것에 개의치 말고 열심히 노력해서 어제의 나보다 더 나아지려고 해 봐요!"


내가 항상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다. 정작 나도 그게 안되는데 아이들한테 이런 틀에 박힌 소리나 하고 있었구나. 미안하다, 얘들아. 선생님도 틀리는 게 너무 싫어. 잘 못하는 걸 인정하기도 부끄러워!!!


 



속이 쓰려 잠이 안 오는 데에 글만 한 명약은 없다. 내 불편한 감정을 실타래 풀듯 하나씩 늘어놓고 나니 속이 좀 풀린다. 왠지, 어쩌면, 아마도 내일은 이 감정을 극복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들에게 덜 미안하려면 내가 먼저 극복해봐야겠지. 겸허한 마음으로 바닥부터 다시 올라가는 거다! 지금 당장은 내 마음처럼 움직여주지 않는 혀가 야속하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을 컨트롤할 수 있는 건 또 나밖에 없다. 연습하고, 또 연습하고 어제의 나보다 더 나아지려고 하다 보면 다시 그 통제권을 움켜쥘 수 있겠지.


그럼 실력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더 당당한 선생님이 되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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