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리뮤 Dec 29. 2020

뜬 눈, 커피의 유혹

잠깐 눈감으면 됐는데.

고개 돌리고 "아냐, 난 됐어" 단호히 말하면 됐는데.


그러기엔 이미 침이 고였다.

자판기에서 차가운 카페모카가 다 내려오기도 전에 아드레날린이 샘솟았다.


이게 얼마만의 커피냐.


카페에 가지 못한 지 한 달이 넘었다. 물론 테이크아웃을 하면 그만이지만 왠지 내가 지불하는 돈에 자릿세가 녹아있단 생각이 들어 삥 뜯기는 기분이 들었다.


볼일이 있어 들렸던 건물에 자판기가 보였고 남편은 물었다.


"자기 커피 마실래?"


남편은 아이스 아메리카노, 나는 아이스 카페 모카를 뽑아 들고 아무도 없는 구석자리에 가서 음료를 홀짝였다.


한 모금 목구멍으로 넘기자마자 식도를 타고 행복이 퍼져나간다. 늦은 저녁에 카페인 섭취라니. 결코 건너면 안 되는 강을 건너버린 것이다.


아이스 카페모카가 선사한 행복은 딱 10분. 이제 앞으로 10시간은 족히 뜬 눈으로 버텨야 할 터. 빈 종이컵을 손에 들고 무게를 가늠해본다. 이 10분짜리 행복이 과연 10시간을 충혈된 눈으로 버텨내야 하는 고통과 맞바꿀 만큼 가치 있는가.


화장실 들어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르다더니... 아직 내 손에 들려있을 때는 꽤나 묵직하게 느껴지던 그 행복감이 텅 빈 잔만 남았을 때는 허무하기 그지없었다.


잠깐의 유혹을 참아내지 못한 벌을 지금 받고 있다. 벌써 새벽 4시다. 술 마시기 전에 마시는 숙취 제거제처럼 커피 마시기 전에 카페인 흡수를 막아주는 알약은 개발 안되나?


괴로워 죽겠네...


이래 놓고 담에 또 커피의 유혹을 못 참을 것을 뻔히 안다. 내 브런치 새 글이 뜨면 저녁에 커피 마신 날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으이고 나약한 인간아....

매거진의 이전글 생일도 사랑처럼 무뎌진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