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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뮤 Oct 25. 2020

생일도 사랑처럼 무뎌진다

남편의 코골이를 배경음악 삼아 새벽에 몰래 일어나 글을 쓰는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내가 자발적으로 브런치 어플을 누르고 글을 쓴다는 것은 말로 하기는 어려운 마음의 불편이 있다는 뜻이다.


오늘은 내 생일이다. 생일을 서른 번 넘게 지나다 보니 이것도 사랑처럼 무뎌진다. 생일을 생각만 해도 짜릿하고 기뻐서 어쩔 줄 몰라했었는데 이제는 무릎이 툭 튀어나온 트레이닝 바지를 입고 나온 배를 긁적이는 남편을 보듯 아무런 감흥이 없다.


아, 그래도 그 무릎 나온 바지를 즐겨 입는 그 남자로부터 서프라이즈 책 선물을 받았다. 결혼 전부터 우린 서로의 생일날에 책 선물을 해주자고 했는데 그걸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말도 못 하게 감동했는데 문득 이 감동도 무뎌질까? 생각을 하니 좀 씁쓸해졌다.


내 생일에 좀처럼 흥분이 되지 않는 게 슬프다. 하긴, 20대 초반에는 어떤 썸남이 내 생일 정각에 문자를 보내올까 기대라도 됐었지만 이제 그 썸남 중 한 명이 내 옆에서 코를 골며 자고 있다. 이선균 코골이 테이프로 유명한 입막음 테이프를 붙이고 자는데 효과가 날로 날로 떨어진다. 처음엔 정말 그 반창고 같은 테이프 하나에 절이라도 하고 싶을 정도로 효과가 좋았는데 이제 적응이 된 것인지 코 고는 소리가 예전 피치를 되찾는 중이다.


이 옆으로 샜는데 어쨌든 결론적으로 생일인데 기분이 썩 좋지 않다. 코로나가 아니었더라도 남편과 둘만의 조촐한 생일이 되었겠지만 가족들이 그립고, 이젠 연락도 잘 안 하는 친구들이 문득 그립다.


빨리 자야 내일 홍대에서 맛집 체험단 예약에 늦지 않고 갈 수 있을 텐데... 걱정이다. 맞다, 요새 브런치에 완전히 소홀해진 이유는 블로그 때문이다. 브런치는 익명을 보장받으며 속 시끄러운 이야기를 배설하는 비밀공간이라면 블로그는 왁자지껄 소통의 장터다. 브런치에서 쓴 글이 여러 번 포털에 뜨는 영광을 누렸지만 글을 읽은 사람들 숫자는 많아도 허기가 졌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블로그로 수익을 창출한다는 사람들이 유튜브에 나와하는 이야기가 나를 솔깃하게 했다.


이왕 글을 쓸 거면 100원이라도 돌아오는 글을 써볼까? 하고 말이다.


블로그로 돌아간 지 3 달 정도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소소한 수익화를 실현하며 재밌게 글을 쓰고 있다. 옆에서 코 고는 남편의 엄청난 도움의 공이 컸다. 블로그에 블자도 모르던 남편이 한 달 전부터 나를 서포트해주고 있는데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성과가 좋았다. 지금은 우리 부부의 대화 절반은 블로그에 대한 것으로 바뀌었다. 남편이 도와주고 난 후로 블로그에 엄청난 재미를 느낀 나를 보며 그가 물었다. "이게 그렇게 재밌어?" 그래서 내가 대답했다. "어 ㅋㅋ 이거 게임 같아. 다른 게임은 돈을 써야 하는데 이건 게임을 하고 돈을 버니까 미치는 거지!"


아. 이렇게 말하니 오해의 소지가 좀 있다. 그 돈 ㅋㅋ 정말 푼돈이다. 하지만 0원과 비교하면 1000원이라도 감사한 게 아닌가.


아무튼 요새는 체험단에 눈을 떴다. 그래서 가보고 싶은 곳이 있으면 다 신청했는데 생각보다 당첨이 많이 되었다. 그래서 당첨된 곳들 중 가장 마음에 든 두 곳을 내 생일날에 맞춰 예약을 해두었다. 남편과 나는 공짜로 하루 종일 외식하고 생일을 보낼 수 있을 거라며 방방 뛰었다.


그러나 체험단도 엄연히 비즈니스. 사진 찍고, 글 쓰는 수고가 뒤따른다. 그래도 지금은 얼마 안 돼서 그런지 마냥 즐겁다. 글을 쓰다 보니 생일이라고 센티해진 내가 더더욱 이해가 안 된다.



왜 이 시간까지 안 자고 징징 거리는지. 그냥 잠이 안 와서인지... 아님 목적 없이 의식의 흐름대로 막글을 쓰고 싶었던 것인지.


전혀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는 생일이지만 그래도 한숨 자고 일어나서 제대로 만끽해보자! 생일 축하한다, 마이셀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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