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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뮤 Sep 13. 2020

나는 우울한데, 하늘은 너무 예뻐!





 우울을 어깨에 이고 지고 공원에 왔다. 아차, 오늘이 주말이란 사실을 잠시 잊었다. 코로나로 2주간 학원 문을 닫아서 집에만 있다 보니 요일 감각이 사라졌다. 공원에는 아이들 손을 잡고 놀러 나온 가족들로 인산인해다. 한참을 돌아다니다 겨우 구석진 곳에 빈 벤치를 발견했다.


나는 우울한데, 하늘이 너무 예쁘다!



이건 좀 반칙 아닌가 싶은 수준이다. 청명한 파란 하늘을 본 게 이 얼마만이냐.


하늘이 맑으면 내 똥폰으로 사진을 찍어도 작품이 나온다. 반칙 맞다.


이런 하늘을 바라보고 어떻게 내 우울을 곱씹을 수가 있겠어. 나도 모르게 자꾸만 마음이 춤을 춘다.  아직은 내 우울한 감정을 놓아줄 준비가 안되었는데... 날씨가 안 도와주네.



내가 앉은 딱 이 자리에 자리 잡은 나무가 되고 싶다. 땅에 뿌리를 깊게 내리고 어디에도 가지 않고 여기서 살고 싶다. 나는 나무니까 일도 당연히 안 할 거고, 요리도, 청소도 다 안 할 거다. 당연히 결혼도 안 할 거고 집 산다고 저축 따위도 할 필요 없다.


가 비치면 햇빛으로, 비가 오면 비로 배를 채우고 봄이면 살을 찌웠다가, 겨울이면 자동 다이어트를 할 거다.


와, 상상만 해도 행복한 삶이로구나.


짓궂은 어린아이가 나무를 발로 차거나 괴롭히지 않는 이상 인간 때문에 우울하거나, 인간 때문에 상처 받을 일도 당연히 없겠지.


아 부러워.


나무가 될 수는 없지만 오늘은 배가 고플 때까지 여기에서 나도 너의 삶을 베껴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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